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하성란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2002년에 발간된 하성란의 세번째 소설집으로 시작은  씨랜드 참사를 다룬 <별 모양 얼룩> 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1주기가 되어 전세 버스에 나눠 타고 참사 현장을 다시 방문한다. 우연히 들른 밥집 주정뱅이가 화재가 일어났던 그 날, 옷에 별 모양 브로치를 단 어린아이가 가게 앞을 지나갔다고 말하자 부모들은 너나 없이 한조각 희망을 부여잡으려 한다. 참사가 일어난 원인과 책임 소재, 그리고 분노에 촛점을 맞추지 않고 아이들을 기억하며 슬픔을 삭이는 부모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표제작인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는 프랑스 동화를 모티프로 하여 씌인 소설인데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가 죽기 전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작가 나름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쫓기다시피 결혼하여 뉴질랜드로 이민간 주인공은 남편이 사실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혼 후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삶을 충족시켜줄 상징물인 오동나무 장롱을 해갔는데 거기에 갇혀 죽을 뻔한 위기를 겪는다.

<파리>와 <밤의 밀렵>은 목가적인 농촌의 이면에 어떠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는지 보여준다. 어떤 사건에 휘말려 시골로 전출간 순경이 우체국 처녀와 하룻밤을 보냈는데 다음 날 시골 주민들은 몸가짐이 헤픈 여자와 잤으니 책임을 지라며 닦달한다. 모두가 공범이었다. 순경은 총을 꺼내 마을 주민들을 응징하려 한다. <밤의 밀렵>에서는 한 사내가 사망하고, 보험회사 직원이 조사를 위해 마을로 간다. 사건은 깊이 파헤칠 것도 없이 한 사내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마을 주민들은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다.

<오, 아버지>는 '바람이 난 아버지'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대비시킨 작품이다. 아버지가 샛집에 계집애를 데리고 간 후에 계집애의 어머니가 아이를 내세워 샛집을 찾아간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작품이다. 약혼남의 생일 날 친한 친구 넷이 찾아와 함께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한 주인공은 설핏 잠이 드는데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이 심상치 않다. 그들은 과거에 한 여성을 윤간한 것 같다. 윤간당한 아이는 투신자살했고, 넷은 그 비밀을 숨긴 채 지내오고 있다. 그날 밤 약혼남과 관계를 가진 주인공은 아이가 들어선다. 하지만 약혼남은 그날 밤 관계를 가진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나머지 남자들도 전부 부인한다. 주인공은 성당에 들어가 아이를 사랑한다고 되뇌며 낳아 기를 것을 결심한다.

<와이셔츠>는 실직 후 집나간 남편과의 화해를 '연'과 '와이셔츠'라는 소재를 이용해 엮어낸 작품이다. 과거 살던 집이 보이는 옥상에 올라 보는 풍경은 쓸쓸하면서도 고즈넉하다.

<저 푸른 초원 위에>는 사랑의 대상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한게 노력하고 직시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날 기르던 개가 사라지자 남편과 아내는 개를 찾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 마치 개가 행복을 담보해줄 모든 것이라도 된다는 양. 마침내 개를 찾지만 불구인 아이가 어떤 여인을 따라 집을 나가고 없다. 하멜의 피리 부는 사나이 모티프로 씌여진 <고요한 밤>과 맥이 통하는 것 같다. <고요한 밤>은 베스트 극장으로 제작되어 TV에서 본 기억이 있다. 윗집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하던 남편은 윗집에 대해 교묘하게 복수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사라져 버리고, 남편이 평소 '피리를 불고 싶다'고 말한 발언이 문제시 되어 경찰 조사까지 받는다.

<새끼손가락>은 택시를 탄 여자가 손가락이 없는 기사와 한밤중에 추격전을 벌인다. 택시 기사는 추격전을 마치고 자신이 마술 중 잃어버린 손가락을 찾으러 가겠다고 말한다.

<개망초>의 화자는 이미 죽어버린 여자아이이다. 어느 날 과속하던 차량에 치어 숨진 아이가 강물을 떠가며 바라보고 생각하는 내용인데 점퍼가 찢어져서 어머니에게 혼날 것을 걱정하는 대목이 안쓰럽다.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병리적인 현상과 사건 사고들을 소설적인 형상화를 통해 함께 호흡해보려는 작가의 의식적인 노력이 긍정적으로 읽힌다.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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