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 3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97년도에 묶여 나온 작품집으로 김영하의 비교적 초기 단편소설들이다. 소설에는 90년대 중반의 '길 잃은 세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이념적인 나침반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투신해야할 새로운 가치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자본은 사회 곳곳에 투사되어 각종 이미지로 현현되는 자기 논리를 구축하였다. 전태일과 쇼걸이 등가로 취급되어 단지 혼자 보기 좋은 영화 이상의 가치판단은 거절하는 시대. 그 논리에 순응한 자들은 변명하기 급급했고, 순응하지 못한 자들은 배신의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야할지 어리둥절해 했다.

그래서 소설 속 주인공들은 '탈출'을 꿈꾼다. 그 탈출은 진정한 의미의 해결책이 되지 못한 채 '일탈'의 수준에 머물거나, 비극적 종말로 치닫는다. <내 사랑 십자드라이버>에서는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성을 사물화하여 십자드라이버로 '분해' 해버리고, <총>의 주인공 탈영병은 총이 주는 안온감에 취했다가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삼국지라는 이름의 천하>에서는 현실에 대한 어떠한 개선 노력도 보이지 않으면서 시뮬레이션 게임 속에서 가상의 복수만 되풀이하는 무기력한 자동차 세일즈맨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꿈꾸고, 행동을 하지만 그 꿈은 현실 극복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행동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호출>은 왕가위의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여자에게 주인공은 호출기를 주며 연락하겠다고 말한다. 여자는 정사씬만 대신 찍는 배우였는데 호출기를 받는 순간부터 남자에게서 올 연락을 기다리며 공상을 한다. 남자와 여자는 실제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연락이 온 이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상상을 한다. 소설의 말미에 호출기를 준 적도 없다는 것이 밝혀지고 그 모든 것이 소설가의 공상임이 밝혀진다. 의사소통의 단절과 왜곡에 대한 짧은 소설이다.

서로 다른 사람을 갈구하며 이루어지지 못할 삼각구도를 도드리와 절묘하게 배치한 작품 <도드리>와 베가르기 춤을 추었고 학생회장과 연애를 했던 여주인공이 이제는 작두를 타고 있다는 <베를 가르다>는 배신과 극복에 대한 탐구다. 그 밖에 성에 대한 원초적 욕망과 타인의 시선에 관한 <도마뱀>, 이미지와 기호로 소비될 뿐 그 가치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하는 상품사회를 그린 <전태일과 쇼걸>, 죽음이라는 다소 감상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나는 아름답다>, 김영하의 데뷔작인 <거울에 대한 명상> 이 실려 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19481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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