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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0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평점 :
30대 중반의 신문기자 제이크 반스는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는다. 이 부상으로 그는 성적인 흥분은 느낄 수 있지만 성행위를 할 수는 없는 장애를 입게 된다. 제이크는 부상 중 입원했던 병원에서 브렛이라는 유부녀를 만나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장애로 인해 둘은 맺어지지 못한다. 그녀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마이크 캠벨과 약혼하는데, 파산한 마이크와의 관계가 견고해보이지는 않았다.
한편, 제이크의 친구 로버트 콘은 유대인으로 대학 시절에는 권투를 배웠고 졸업한 후에는 결혼을 했는데 곧 이혼한 후 프랜시스라는 여자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유럽으로 건너온 로버트는 그저 그런 소설을 한 편 썼는데 평단에서 괜찮은 반응을 얻자 프랜시스를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고 싶어 했다.
어느 날, 제이크와 만나는 브렛을 본 로버트는 즉시 그녀에게 반해 사내답지 못한 행동을 하며 그녀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제이크가 친구이자 작가인 빌 고턴과 함께 스페인으로 투우를 보러 떠난다. 투우 축제가 시작되기 전 둘은 송어를 낚으며 평온한 한 때를 보내게 된다. 브렛과 잠깐 불장난을 한 로버트는 브렛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마이클과 브렛의 주변을 맴돌다가 그들이 제이크 등과 합류하자 스페인까지 따라온다.
축제가 시작되고 온 도시가 열기로 달아오른다. 열아홉의 신예 투우사 로메로가 그들의 눈을 끈다. 그의 기술에는 거짓이 없었고 소를 대하는 자세도 과거의 전통 그대로였다. 브렛이 로메로에게 반해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를 쓰자 마이클은 로버트에게 화풀이를 한다. 브렛이 싫어하는 것도 모르고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파렴치한으로 몰린 로버트는 제이크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브렛이 보는 앞에서 로메로 역시 묵사발을 만들어 놓는다. 굴하지 않는 로메로에게 심한 창피를 당한 로버트는 모든 것을 체념한 체 떠난다.
파산한 마이클이 술 한잔 값도 없이 떠나가고, 홀로 여행을 계속하던 제이크에게 브렛이 전보를 보낸다.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는 브렛을 찾아가니 로메로는 없고 브렛만이 호텔비도 없이 홀로 남겨져 있었다. 그녀는 로메로를 더 이상 얽어매고 싶지 않았다면서 자신은 '화냥년이 될 수는 없다'고 반복해 말한다. 택시를 잡아 타고 드라이브를 하던 중 브렛이 제이크와 자신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하자 제이크가 맞장구를 친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27세에 완성한 첫번째 장편 소설이다. 소설 초입에 두 개의 제사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당신들은 모두 길을 잃은 세대요.
- 거트루드 스타인의 대화 中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고 저리 돌아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 전도서
비평가들은 이 두 개의 제사가 미묘하게 다른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리얼리즘에서 탈피하여 미국 모더니즘의 막을 연 이 작품이 과거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에서 벗어나 방향성을 상실한 젊은이들의 시대적 불안과 상실감을 그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길을 잃은 세대' 에 관한 보고서라는 해석이 가능한 반면, '땅은 영원히 있도다' 라는 두 번째 제사를 통해 이 작품이 사실은 제이크라는 육체적 불구의 주인공이 정신적 견고함을 바탕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서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그렇다.
제이크는 성적 기능의 상실로 사실 무언가를 생산해낼 수 없는 불임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런데도 그가 주인공으로서 삶에 굳건히 뿌리 박고 통제 되지 못하는 자신의 친구들, 브렛과 마이클 그리고 로버트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이유는 거세된 숫소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투우가 시작되기 전 분노에 찬 소들 앞에 거세된 숫소가 나타난다. 거세된 숫소는 분노에 찬 소의 뿔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 죽거나, 아니면 그들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신이 정한 규범을 차분하게 지켜 나가며 흔들리지 않으려 하는 제이크의 모습은 이후 수많은 소설들에서 차용된다. 왜냐면 언젠가 사라진 그 '길'은 앞으로도 다시 우리 앞에 펼쳐질 날이 요원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