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雅歌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70년대 말, 산업화의 그늘에서 뿌리뽑힌 자가 되어 도회로 끌려나간 '우리'가 어느새 저마다 귀밑머리 희끗한 중년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 초등학교 동창회 초대장이 날아든다. 다시 모인 그들 중 누군가가 '당편이'에 대해 묻는다. 

당편이는 신체적으로는 곱추에 다리를 저는 불구였고, 정신적으로 온전하다고 할 수 없었다. 어느날 마을에 버려진 당편이를 문중의 녹동어른이 거두었는데, 그날부터 당편이는 그럭저럭 마을에서 더불어 살았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전쟁을 겪고,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당편이가 스며들 수 있는 곳은 점점 사라져 간다. 당편이는 결국 적극적인 걸식에 의하지 않고는 생존마저 어려운 지경에 처하기도 한다. 함께 살던 건어물장수 영감이 죽자 당편이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자들을 수용한 시설로 떠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우리 곁에서 하나둘 사라졌다. 정신병원과 각종 수용소, 재활원, 보호소 같은 시설들이 그들 중 생산 능력이 없으면서 사회의 미관과 편의만 해치는 이들을 먼저 골라 데려갔다. 그리고 예전의 환유 대신 구호 대상자, 정신병자, 심신미약자, 장애인, 지체부자유자 같은 전문화되고 기능적인 호칭을 그들에게 부여한 뒤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감추어버렸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 적힌 글이 아니다. 이문열의 <아가>에 쓰여진 글이다. 

<감시와 처벌>을 통해 푸코가 개인이 원자처럼 분리되고, 타자와의 관계가 파괴되며, 공동체의 연대의식이 붕괴된 끝에 합리적인 예속화에 길들여지는 과정을 분석해냈다면, 이문열은 비슷한 경로를 거쳐 과거를 향수한다. 이문열은 끝내 시대와 불화할 것이다. 그가 믿는 이상향은 언제나 두고 떠나온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문열이 진보를 조롱하는 것은 유별난 행동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일관되게 반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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