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사 이청준 문학전집 장편소설 3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1998년 4월
평점 :
절판


'나'는 잡지사 편집 사원으로 일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율'에 만족하고 있는데, 이 '조율'이라 말이 그들 사이에만 통용되는 일종의 은어이다.  

글쟁이들 여럿이 <기적>이라는 다방에 모여 문학에 대한 이야기들을 활발히 나누면서 정작 글은 쓰지 못하는 것을 본 한 시인이 '연주는 못하고 악기만 녹슬까봐 조율만하는 조율사들'이라고 비아냥댄 사건에서 연원한 말인 것이다. 

얼마 후 평론가 지훈이 '지식인은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남쪽으로 잡았다면 그쪽으로 가도록 배를 유도해야 한다. 서쪽으로 가려는 세력이 있을 때에는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이 남쪽이라는 이유로 그쪽으로만 배를 저으며 알리바이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동쪽으로 배를 저어야 할 것이다' 라는 요지의 글을 발표한다. 마치 조율사들에게 금기가 되어버린 한 음을 되찾아 연주한 것과 같았다. 그후 지훈은 미치고 만다. 

'나'는 글을 못 쓰는 것 외에도 여자친구 은경과 이별 일로에 있었고, 술주정을 하다 끝내 세상을 뜬 형님의 권속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위장병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 때때로 '단식'을 생각하고 있으며, 전쟁통에 잃어버린 외종사촌형을 꼭 찾아야하리라는 강박도 갖고 있다. 

은경과의 관계가 끝내 파국을 맞고, 형수님이 아이들 중 하나를 '나'에게 맡긴 후 재가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힌다. '나'는 엉뚱하게도 부산으로 외종사촌형을 찾으러 떠난다. 하지만 형님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되돌아온 서울에는 형님의 맏아들 신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45일간의 단식에 들어간다. 단식에 들어가 점차 음식물을 줄여갈 때 느끼는 고통이 '죽음'을 의사체험하는 과정이고, 15일간의 단식 후 다시 음식물을 섭취하기 시작할 때 찾아오는 고통은 '환생'의 과정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친구 팔기는 단식조차도 조율의 한 방편이 아닌지 의문을 나타낸다. '나'는 단식 과정 중 사실은 우리 모두가 출구가 없는 조율실 안에 갖혀 죽어가는 악몽을 꾸게 된다. 

 

1973년에 발표된 <조율사>는 이청준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구조가 산만하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평론가 정과리는 이러한 산만함이 어쩌면 의도된(혹은 필연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조율사>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소설이 아니라, 삶의 문제의 근원을 찾아가는 소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르는 문제에 대한 대답은 거짓 대답이니 작품의 골격이 곁 이야기들의 변주에 따라 꺽이고 휘어지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정과리는 4.19 혁명이 이승만 정권은 붕괴시킨 후 시간이 지날수록 혁명의 이념이 퇴색되고 참여자들 중 다수가 혁명의 외양적 승리에 자족할 때에 '자기 정립에 실패한 시민의 소시민 의식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작가 이청준은 작품 속에 '민중청부업'이란 제재 하에 우화를 하나 마련해 놓았는데 내용은 이렇다. (1) 민중청부업자들(지식인)들은 민중의 호응을 얻어 민권 옹호를 위해 싸운다. (2)권력은 위장과 변신을 거듭하고, 민중은 청부업자들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고 만다(혁명 이념의 승리) (3)편한 잠에 빠져든 민중들 위에 권력이 새로운 지배를 시작한다(혁명의 붕괴) (4) 이제 잠이든 민중에게 화살을 돌려 그들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게끔 해야 한다(지식인의 배반)

 

<조율사>는 '나'의 개인적 사건들을 병치, 나열하며 두서 없이 전개되고 있는 듯 하지만 그 이면에는 4.19 이후 지식인 사회에 만연해 있던 침묵의 분위기와 이를 탈피하고자 하는 작가의 고민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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