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트로이카 -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누비던 그들이 되살아온다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재유는 1903년 함경북도 삼수군 별동면 선소리에서 이각범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이각범은 일제에 순응해 그럭저럭 밥벌이를 하는 면서기였는데 동네에서는 어느 정도 인심을 얻고 살았던 듯 하다. 삼수의 보통학교에 잠시 다니던 이재유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 자퇴한다. 1919년 이재유가 열 다섯 되는 해에 '삼일만세운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한 동리에 살던 사회주의자 박기춘이 처형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두 사건은 이재유에게 큰 영향을 미쳐 그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사회주의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만든다.

더 배우고 싶은 욕심에 무작정 서울로 향한 이재유는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한편 도서관에서 독학을 시작한다. 이 당시 접한 책이 일본의 사회주의자 가와카미 하지메가 번역한 <유물사관>이었다. 신선한 충격을 받은 이재유는 이후로 사회주의 서적을 집중적으로 탐독하였고 열여덟 살 생일날 아침 스스로 사회주의자가 되었음을 선언한다.

 

보성고보 입학시험에 붙었으나 돈이 없어 몇 달 다니다 그만둔 이재유는 중병으로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간청에 따라 고향 이웃 마을의 나이 많은 처녀와 반강제로 결혼식을 올린다. 1924년의 일이다.

이듬해에 개성의 송도고보에 입학하지만 사회과학연구회를 만들어 동맹휴학을 주동했다가 1926년 11월에 퇴학당한다. 이재유는 인천을 거쳐 동경으로 떠난다. 

 

일본에서 노동을 하는 한편 공부를 한 이재유는 두 번 낙방한 끝에 일본대학 전문부 사회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역시 석 달 만에 학비가 없어 그만둔 후에 동경대학교 신인회가 주최하는 노동 야학에 다닌다. 사토 마나부, 후쿠모토 가쓰오 같은 유명한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직접 사회주의 강연을 듣는 한편 '전국무산자평의회' 같은 일본인 노동조합에도 가입해 집회와 교육에 참석하여 활동한다. 이러한 활동이 인정되어 얼마 뒤에는 좌우익 진보 지식인의 총집결체인 '신간회' 동경지회 위원으로 피선되고, '동경조선노동조합' 같은 몇 단체의 중요한 핵심 인물로 추대된다. 이때부터 이재유는 경찰서를 내 집 처럼 드나드는 인물이 되었는데 삼 년 동안 일본 경찰에 일흔 번이나 연행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그가 송도고보에 들어간 1926년 결성된 '조선공산당'은 와해와 재건을 되풀이하고 있었는데 1928년 네 번째로 조선공산당이 재건되고 그 하부 조직으로 일본총국이 세워졌을 때 이재유는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어 '고려공산청년회' 일본총국의 선전부장을 맡게 된다. 이 일로 검거가 반복되다가 급기야 경성으로 압송되기에 이른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이재유는 그곳에서 김삼룡과 이현상을 만나 사귀게 된다. 이재유는 이들과 함께 '경성트로이카'를 결성한다. 

 

김삼룡은 소탈한 성품을 가진 대중조직가 스타일로 해방 후에는 남로당의 실질적 남한 총책임자로 일하였다. 전향한 남로당원의 제보로 은신처가 발각되어 도주하다가 체포되어 함경도 지역의 전설적인 운동가 이주하와 함께 전쟁 발발 직후 처형 당한다. 

이현상은 고지식한 성격에 지독한 원칙주의자였는데 혁명에 관계되지 않으면 농담조차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해방 후 지리산 빨치산 총대장으로 활약했는데 그가 이끈 부대가 바로 '남부군'이다. 북한은 남한과 휴전협상에 들어가면서 이현상의 '남부군'을 매우 껄끄러워했고 그런 이유로 방치되다시피 하다가 국군의 매복에 걸려 총에 맞아 죽는다.

 

한편 동덕여고 출신의 자생적 운동가들이 이재유를 찾아오는데 이관술, 이순금, 박진홍, 이효정이 그들이다.이관술은 동덕여고 교사로 원래는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으나 민족주의자들이 일제에 순응하고 변절하는 과정을 지켜본 후 한계를 느껴 사회주의로 전향한 케이스였다. 사심없이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선택하는 성향이었기 때문에 화려한 면은 없었다. 그래서 일본경찰들은 이관술이 마지못해 이재유에 동조한다고 보았으나 이재유 검거 후에도 이관술은 '경성꼼그룹'을 결성해 '경성트로이카'의 활동을 계승한다. 후에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이라는 조작에 휘말려 달러를 위조했다는 혐의로 사형당한다.

이순금은 이재유의 이복동생으로 활달하고 의리있는 성격이다. 감옥에서 운동을 하려면 이재유에게 가라는 말을 듣고 친구들을 이재유에게 소개시킨다. 한때 이재유의 아지트키퍼를 하는 짧은 기간 동안 이재유와 동거를 하는데 이 때문에 언론에서는 이순금과 박진홍, 이재유를 삼각관계라 보도하며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한다. 김삼룡에게 연정을 느껴 그와 동거하기도 했고 경성꼼그룹이 해체된 후에는 박헌영과 함께 광주로 잠적해 그의 연락책을 맡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월북 후에 박헌영이 미제국주의 첩자로 몰려 사형을 당하는데 그 증인으로 이순금이 채택되었다는 점이다. 이순금이 정확히 어떤 증언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순금이 살아남아서 요직을 꿰찬 것으로 보아 박헌영에 불리한 진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박진홍은 좌우익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머리를 지니고 있는 재원이었다. 문학에 소질이 있었으나 조국의 현실 앞에서 한가롭게 문학을 할 수는 없다며 사회주의 활동에 투신했는데 후에 이재유와 사랑에 빠져 그의 아이를 임신한다. 박진홍은 임신한 상태에서 검거되어 고문을 받다가 감옥에서 아이를 출산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아이는 일찍 죽고 만다. 이재유를 끝까지 지키다가 그가 옥사하자 김태준과 함께 연안으로 떠나 항일무장독립투쟁을 준비한다. 해방 후 남한에 들어온 뒤 김태준이 검거되자 월북하는데 그 이후의 행적은 알 수가 없다.

 

이재유는 일본인 공산주의자로 경성제국대학 교수인 미야케와도 교분을 쌓는다. 경찰에 쫓겨 그의 집에 은신하게 되었을 때 미야케는 자신의 집에 지하 토굴을 파고 이재유를 숨겨 주었고, 경찰에 검거된 뒤에는 하루 동안 은신처를 발설하지 않고 고문을 버틴다. 

 

이재유의 '경성 트로이카'는 대중적인 토대를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전위를 조직하려는 분파와는 종종 충돌이 있었다. 또한 국제선과도 원만하게 지내지 못했는데 정태식은 이재유를 '분파주의자'로 낙인 찍고 그가 제안하는 '투쟁을 통한 자연스러운 통합'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다. 

'경성 트로이카' 맴버들이 저마다의 강인한 의지와 활동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인 활동을 일정하게 펼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갖은 검거와 구속으로 이재유, 이현상, 김삼룡이 함께 활동한 시기는 거의 없었고, 이관술과 이순금, 박진홍 등도 감옥과 바깥을 교대로 드나드는 식이었기 때문에 정세를 분석하고 통일된 강령 하에 행동하기란 상당히 어려웠다. 이재유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고무받아 NPN의 발간을 지향하며 팸플릿을 유포하고 이를 통해 조직을 강화하려 하였으나 발간은 3회에 그치고 말았다. 

 

1936년 12월 4일 체포된 이재유는 6년의 형량을 언도받고 복역하였으나 예비검속제도 때문에 출소하지 못하고 1944년에 옥사한다. 폐결핵과 각기병 때문이었다. 

 

이재유는 해외에서 학습받은 사회주의 사상으로 국내에 돌아와 학자연하는 활동가들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들을 신뢰하지도 않았다. 정세가 불리하고 탄압이 거세진다고 해서 해외로 망명하지도 않았고 언제나 자신이 발 딛고 선 자리의 대중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서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는 국제선과의 연대도 형식적인 통합이어서는 안되고 '투쟁을 통한 연대'의 형태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경성 트로이카>는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 안재성이 우연히 이효정과 끝이 닿아 시작된 소설로 <일제하노동운동사>, <이재유 연구> 등의 저서를 집필한 김경일 교수의 도움을 받아 1930년대 '경성 트로이카'를 중심으로 한 혁명가들의 운동과 사랑을 소설로 복원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비전과 전망을 내려놓은 작가는 어쩐지 흔들린다. 흔들리는 작가는 이재유를 부여잡고 집요하게 파고들기를 저어한다. 그래서 이재유는 소설 속에서 감옥에 들락날락하는 전설적인 인물이되, 그의 사상의 요체는 무엇이고 활동 양상은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 점에서는 김삼룡과 이현상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활동은 권두에 사진에 부연된 설명이 거의 전부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88519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