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잠복 ㅣ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 내용에 결말이 포함되어 있음
o 얼굴(顔)
소규모 극단에서 8년간 열심히 연기하던 이노 료키치가 거장 이시이 감독의 눈에 들어 비중 있는 조역을 맡게 된다.
지난 번 영화 촬영 때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클로즈업 신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촬영에서는 이시오카 사다부로의 눈에 뜨이지 않을 리 없다. 이노 료키치는 다시 한번 이시오카 사다사부로에 대한 흥신소의 보고서를 읽으며 회상에 잠긴다.
9년 전 좋아지내던 미야코가 자신의 아이를 밴 후 책임을 물어오자 이노 료키치는 그녀를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를 속여 기차에 태워 시골로 가던 중 미야코가 알은 척 했던 이가 바로 이시오카 사다부로이다. 미야코의 사체가 발견되어 수사가 시작되고, 신문에는 그때 마주친 이시오카 사다부로가 범인으로 짐작되는 이의 얼굴을 기차에서 봤다고 적혀 있었다. 이노 료키치는 이시오카 사다부로와 생활권이 다른 곳에서 산다면 별 일 없으리라 생각하고 흥신소에 의뢰해 그의 거주지를 수소문해 왔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영화에 나온 자신의 모습을 이시오카 사다부로가 볼 것이 틀림 없다. 그를 살해해야 한다.
이노 료키치는 꾀를 내어 이시오카 사다부로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은 미야코의 친척이다, 범인으로 짐작되는 이를 찾아냈으나 확신이 서지 않으니 이시오카 사다부로가 직접 와서 확인을 해줬으면 한다, 그런 내용을 편지에 적고 기차삯을 소액환으로 바꿔 동봉해 보낸다. 편지를 받은 이시오카 사다부로는 고민하다 경찰에 편지를 들고 찾아간다.
경찰들은 긴장한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 범인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신문 기사에는 이시오카 사다부로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고, 이시오카 사다부로의 소재지 역시 계속적인 관찰이 아니라면 알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형사 둘이 이시오카 사다부로와 함께 약속 장소로 향한다.
운명의 장난인지 이노 료키치와 이시오카 사다부로가 식당에서 합석을 하게 된다. 이노 료키치는 이시오카 사다부로가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챈다. 그는 해방감에 눈물마저 흘린다. 약속 장소에는 나가지 않는다.
얼마 후 이시오카 사다부로가 이노 료키치가 나오는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된다.이노 료키치가 기차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클로즈업 된다. 9년전의 기억이 일순 떠오르며 그가 범인임을 알게 된다.
o 잠복(張込み)
도쿄 메구로에서 일어난 강도 살인 사건의 공범 이시이 규이치가 어디로 도주할 것인지에 대해 경시청 내에는 두 개의 의견이 있었다. 하나는 형제와 친척들이 살고 있는 고향으로 도주할 것이라는 의견이었고, 다른 하나는 과거 헤어진 여인을 만나러 갈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유키 형사는 이시이 규이치가 분명 헤어진 여인을 만나러 갈 것이라 생각했다. 이시이가 최근 그 여인에 대한 꿈을 꾸었다고 공범에게 말한 점과 폐병을 앓고 있어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 등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다.
유키는 이시이의 과거 애인 사다코의 집 앞 여관에 숙소를 정하고 관찰하기 시작한다. 사다코의 일상은 지루했다. 아이가 셋이나 딸린 홀아비에게 재취자리로 들어간 사다코는 자신보다 스무살이나 많고 인색하기까지한 남편과 살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며 무미건조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매일매일이 똑같았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참하고 온순한 아내도 드물거라고 칭찬한다.
닷새째 되는 날, 세일즈맨이 집에 들어가는가 싶더니 잠시 후 사다코가 외출을 한다. 유키는 퍼뜩 그 남자가 이시이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뒤를 쫓는다. 잠시 그들의 행방을 놓쳤다가 간신히 따라잡은 곳은 가와기타 온천의 한 여관이었다. 주인은 남녀가 온천욕을 하러 들어갔다고 했다.
복도에서 유키와 이시이 규이치가 맞닥드린다. 이시이 규이치는 이내 체념한 듯 수갑을 받는다. 유키 형사가 방으로 들어가 기다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다코가 들어온다.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 요염한 분위기마저 풍기고 있다. 유키는 지금 돌아간다면 남편의 귀가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사다코에게 얘기한다. 계곡을 내려다보며 유키는 '이 여자는 겨우 몇 시간 동안 생명을 불태웠을 뿐이다......그리고 내일부터는, 그런 정열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평범한 얼굴로, 손뜨개질을 할 것이 분명하다' 고 생각한다.
o 귀축(鬼畜)
다케나카 소키치는 각 지방 인쇄소를 전전하며 기술을 배우던 중 스물 일곱에 오우메라는 여공을 아내로 얻는다. 둘은 열심이 돈을 모아 마침내 인쇄소를 차린다. 형편이 나아지자 소키치는 술집을 드나들게 되었고, 거기서 기쿠요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정을 통하던 밤 기쿠요가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지 묻자 소키치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에서 그렇다는 대답을 한다. 관계는 8년간 지속되고 아이도 셋이나 낳는다.
어느 날 인쇄소에 불이 난다. 주변에 최신 설비를 갖춘 인쇄소가 들어서는 악재까지 겹치자 소키치는 기쿠요에게 돈을 가져다 줄 수 없었다. 기쿠요는 생활비를 졸라대고 소키치는 이에 응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기쿠요가 마침내 인쇄소에 아이들을 데리고 와 담판을 짓고자 한다. 하지만 담담하게 응대하는 오우메의 서슬에 질려 기쿠요는 아이들을 내팽개친 채 가버린다.
오우메는 아이들을 키울 생각이 전혀 없다며 모든 육아를 소키치에게 맡긴다. 막내 쇼지가 영양실조에 걸려 앓는다. 어느 날 2층 방에 올라가보니 쇼지의 얼굴에 담요가 떨어져 있었다. 저절로 떨어졌더라도 쇼지의 얼굴에 떨어질 위치는 아니었다. 소키치는 오우메가 쇼지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알 수 없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었다. 홀가분함을 느낀 것이다. 그날 밤 오우메가 집요하리만치 소키치를 유혹하여 둘은 정사를 나눈다. 절정의 순간에 오우메가 요시코를 도쿄에 내버리고 오라고 시킨다. 소키치는 오우메가 시키는 대로 하고 돌아온다.
오우메가 가장 싫어하는 아이는 큰애인 리이치였다. 리이치는 종이나 석판석의 파편에 그림을 그리고 놀 뿐 말도 별로 하지 않고 오우메를 슬슬 피했다. 오우메는 소키치를 시켜 리이치에게 청산가리를 조금씩 먹이라고 한다. 하지만 리이치는 청산가리 맛을 느꼈는지 먹은 음식을 뱉어내곤 했다.
바다에 빠뜨리려던 계획도 실패하자 이번에는 잠이 든 리이치를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린다. 소키치는 리이치가 자신과 조금도 닮지 않았으므로 기쿠요가 부정한 짓을 해서 낳은 아이라 생각하며 죄책감을 덜어내려 한다.
다음 날 낭떠러지 중간에 걸려 있는 흰 물체가 어부들에 의해 발견된다. 아이는 탈진 상태였다. 경찰은 아이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지만 아이는 아빠와 놀러 왔다가 잠에 든 후 떨어졌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아이의 주머니에서 나온 돌을 마침 경찰들의 명함을 전해주러 왔던 인쇄업자가 알아본다. 석판석을 복원해 인쇄하자 거기에 소키치가 인쇄했던 라벨이 찍혀 나온다. 경찰은 살인미수사건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한다.
o 투영(投影)
다무라 다이치는 도쿄의 일류 신문사에 다녔지만 부장과 불화를 일으켜 사직하고 세토 내해에 있는 S시로 이사한다. 처음 얼마간은 퇴직금으로 그럭저럭 버텨냈지만 점차 형편이 곤란해지자 아내 요리코가 호스티스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다무라 다이치도 계속 낚시나 하며 태평하게 지낼 수만은 없어 <요도신보>라는 지방지에 면접을 보러간다. 말이 신문이지 병석에 누워 있는 사장 한 명에 기자도 한 명뿐인 신문사였다. 하지만 더운 밥 찬 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S시에는 시장파과 보좌파가 다투고 있었다. 보좌파는 시의원과 공무원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부정 부패를 일삼고 있었다. 그렇다고 시장파가 청렴한 것도 아니었다. 히타나카 사장은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도 신문이 시정의 정의를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취재를 위해 시청을 어슬렁 거리던 다무라 다이치는 우연히 미나미 토목과장이 덩치 큰 사내에게 곤경을 치루는 장면을 목격한다. 같은 신문사 동료인 신로쿠에게 물었더니 덩치 큰 사내는 이시이 엔키치라는 시의원으로 보좌파를 좌지우지 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는 항만 한쪽에 철사 공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에 항만 확장 공사가 확정 됨에 따라 철사 공장의 보상비 명목으로 400만엔을 요구했다. 그런데 미나미 토목과장이 한푼도 줄 수 없다면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내막을 캐보니 철사 공장의 토지소유주는 이시이 엔키치가 아니었고, 공장 건물 자체도 무허가 건물이었다. 이시이 엔키치는 항만 확장 계획을 미리 입수한 직후 남의 땅에 무허가 건물을 지어 시청의 돈을 우려내려고 했는데 미나미 토목과장에 가로 막힌 것이다.
얼마 후 미나미 과장의 부하 직원 야마시타가 새로 신설된 항만 과의 과장으로 승진한다. 야마시타는 이시이 엔키치의 충복이었다. 승진을 축하하는 술자리가 끝나고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던 미나미 과장이 절벽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다무라 다이치와 신로쿠는 철사 공장 보상비가 600만엔이나 항만과에서 지급되었다는 사실을 입수한다. 미나미 과장은 살해당했다고 전제하고 둘은 조사를 시작한다.
미나미 과장이 죽던 날 밤 가로등을 야마시타의 아들이 공기총으로 쏴 깨뜨렸다는 사실, 사진을 좋아하지도 않던 이시이 엔키치가 촬영회를 연다며 사진사들로 하여금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다는 사실에서 다무라 다이치는 미나미 과장이 그들에 의해 살해되었음을 밝혀낸다. 미나미 과장이 한밤중에 이정표로 삼는 불빛을 이들은 거꾸로 만들어내어 자전거가 집과 반대편에 위치한 절벽으로 향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도쿄로 돌아가게 된 다무라 다이치는 의기에 넘치는 히나타가 사장과 신로쿠를 생각하며 가슴 뜨겁게 눈물을 흘린다.
o 목소리(聲)
다카하시 도모코는 모 신문사의 전화 교환원이었다. 어느 날 기자의 요청에 따라 전화를 연결하다가 실수로 엉뚱한 번호에 연결한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그곳이 화장터라며 장난을 친다. 곧 누군가 억지로 수화기를 내려놓는 기색과 함께 전화가 끊긴다.
그런데 다음 날 세타가야에서 주부가 살해된 강도 살인 사건이 보도된다. 도모코가 전화를 잘못 건 곳이 범행 장소였다. 도모코의 제보 덕택에 두 명 이상이 범행했다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목소리만으로는 범인을 잡아 낼 수가 없었다. 도모코는 시게오와 결혼하면서 회사를 그만 두게 된다.
시게오는 결혼 전부터 낭비벽이 심하고 책임감이 없었는데 결혼 후에도 그 습벽은 여전해서 금새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다. 그 후 시게오는 6개월을 빈둥대더니 수상한 회사에 취직을 한다. 월급은 가져왔지만 봉투에 회사명이 적혀 있지 않았고 명세서도 없었다. 그리고 마작을 한다며 수시로 회사 동료를 데려왔다.
어느 날 하마자키라는 자가 마작에 올 수 없다며 전화를 걸어오는데 목소리를 들은 도모코는 경악하고 만다. 도모코는 평소 하마자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아무런 느낌도 갖지 못했었는데 전화기를 통해 목소리를 듣자 그가 3년 전 범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도모코는 무서운 마음이 들면서도 하마자키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들어 모든 것을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한편 시게오의 동료들도 도모코의 태도 변화를 통해 그녀를 의심하여 뒷조사 하게 되고 결국 3년 전 목소리를 들은 교환원이 도모코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도모코를 유인해 살해한다.
경찰은 도모코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 폐와 코에서 석탄이 나왔다는 점과, 저탄고 인근에서 그녀의 핸드백이 발견된 점을 알아낸다. 유력한 용의자로 시게오의 동료들을 조사했지만 저탄고 까지의 거리를 왕복하기에는 그들의 알리바이 공백 시간이 너무 짧았다.
석탄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 봉투에 담아가는 것을 본 한 형사가 용의자들이 저탄고에서 범행이 일어난 것처럼 꾸민 후 사다코를 밀폐된 공간에 가두고 석탄 가루를 흡입시켰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o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地方紙を買う女)
시오타 요시코가 <고신신문> 앞으로 선금을 보내 구독을 신청한다. 연재중인 <야도전기>라는 소설이 재미있는 것 같아서 받아보려 한다는 내용과 함께.
신문이 도착하자 요시코는 자신이 찾는 내용이 있는지 꾸준히 신문을 읽는다. 구독한지 한 달 정도 지나자 찾던 기사가 발견된다. 동반 자살한 남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다.
<고신신문>에서 구독기간 연장 여부를 묻는 엽서가 도착한다. 요시코는 아무 생각 없이 <야도전기>가 재미없어져서 구독을 종료한다는 답변을 보낸다.
<야도전기>의 작가 스기모토 류지는 불쾌한 생각이 든다. 소설이 점차 흥미 진진해 지려는 판국에 재미 없어졌다는 여성 독자의 엽서가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가지 생각해보니 그녀는 도쿄에 살면서 <고신신문>을 구독한 것으로 보아 소설 때문이 아니라 특정 기사를 찾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19일부터라고 명토 박아 신청한 점을 보면 18일 즈음 일어난 어떤 사건이 신문에 나는지 보려는 것 같았고 한 달이 종료된 시점에 구독을 중지했으니 그녀가 찾던 기사가 신문에 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과연 신문에는 동반자살한 남녀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흥신소를 시켜 조사해보니 죽은 남자는 요시코와도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스기모토 류지는 여러가지로 요시코를 떠본다. 요시코는 스기모토 류지가 무언가 눈치 챘음을 알고 그에게 접근해 친한 척을 하더니 함께 놀러가자고 권한다. 친한 여자 한 명을 더 데려오라면서.
스기모토 류지와 요시코, 그리고 또 한 명의 여자가 산 속으로 놀러간다. 요시코가 초밥을 꺼내 스기모토 류지와 다른 여자에게 권한다. 스기모토 류지는 초밥을 못 먹게 하면서 청산가리로 두 남녀를 죽인 후 동반 자살로 위장했을 거라는 추리를 말한다. 요시코는 말도 안된다면서 초밥을 모두 자신이 먹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얼마 후 요시코의 유서가 스기모토 류지에게 날아든다. 죽은 남자는 백화점 경비원으로 여성에게 도둑질 했다는 누명을 씌운 후 농락하는 사내였고 거기에 걸려든 요시코는 몸은 물론이고 돈까지 빼앗기고 있었다. 남편이 시베리아에서 곧 돌아오게 되자 요시코는 그로부터 벗어나야 겠다고 결심하여 살해한다. 초밥에는 독이 없었다. 초밥을 먹으면 목이 마를 것이니 주스에 타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시코는 주스는 자신이 마실 것이라면서 유서를 마친다.
o 일 년 반만 기다려(一年半待て)
29세의 스무라 사토코가 남편을 살해한 죄로 구속당한다.
사토코는 전쟁 중 여전을 나와 회사에 취직했다가 스무라 요키치를 만나 결혼한다. 스무라 요키치는 학벌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에 구조조정이 닥쳐오자 해고되었고, 그 후로도 신통치 못한 회사를 전전하다가 결국 백수가 되고 만다.
사토코가 보험외판일을 하여 생계를 꾸려가기 시작한다. 밉지 않은 외모와 지적인 말투 덕분에 보험은 잘 팔린다. 경쟁이 심화되자 댐 건설 현장으로 가서 남들보다 발빠르게 마케팅을 성공시키기도 한다. 점차 벌이가 좋아진다.
하지만 남편이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고 여자에 빠져들더니 급기야 사토코와 아이들을 구타하기 시작한다. 매일 밤 구타가 반복되던 어느 날 아이들을 때리는 남편을 사토코가 장대를 휘둘러 살해하고 만다. 사정이 알려지자 여론이 들끓는다. 사토코는 징역 3년, 집행유예 2년의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된다.
어느 날 사토코의 변호를 맡았던 다카모리 다키코에게 오카지마 히사오라는 남자가 찾아온다. 그는 사토코 사건에 관해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오카지마 히사오는 사토코가 남편과의 잠자리를 6개월간 거부한 뒤 술집을 운영하는 자신의 친구 집에 남편을 보내 성적 불만을 해소하도록 유도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토코는 댐 건설 현장에 찾아와 자신이 미망인이라고 말했다고도 했다. 건설 현장의 건장하고 정렬적인 사내와 무기력한 남편이 비교되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자신이 하는 말은 모두 추측이라고 했다. 다카모리 다키코는 그렇다면 더 들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오카지마 히사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떠난다. 스무라 사토코는 히사오가 청혼하자 일년 반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정확히 일년 반 후에 사토코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녀의 유일한 오산은 일 년 반을 기다리게 한 남가자 도망갔다는 것이다.
o 카르네아데스의 널(力ルネアデスの舟板)
사학과 교수 구무라 다케지는 은사 오쓰루 게이노스케로부터 사사받았다. 오쓰루 게이노스케는 대정익찬회라는 우익 단체에 참가하는 등 우편향 사학자였고 국가주의적 역사론을 강의하고 저술했다. 그리고 그 이유로 학계에서 추방당했다.
이를 본 구무라 다케지는 마르크스주의적 유물사관으로 발빠르게 전향하여 교과서, 참고서를 집필해 큰 돈을 번다. 구무라 다케지는 은사를 찾아가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고 싶었다. 은사는 생각보다 영락해 있었고 제자에게 비굴했다. 비굴한 이유는 그의 추방이 곧 끝날 것이고, 6개월 뒤에 학교로 복귀하도록 힘을 써달라는 청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시큰둥한 구무라 다케지의 운동에도 불구하고 오쓰루 게이노스케는 대학에 복귀한다.
오쓰루 게이노스케는 구무라 다케지의 집과 벌이를 보더니 자신도 좌편향으로 돌아선다. 그리고 구무라 다케지를 열심히 쫓아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즈음 교과서의 검정 체계가 바뀌더니 좌편향 인사들의 교과서가 무더기로 탈락한다. 구무라 다케지는 더 이상 좌편향 저술은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노선을 바꿔타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오쓰루 게이노스케가 한 발 먼저 우편향을 선언하고 나설 참이었다.
구무라 다케지는 오쓰루가 먼저 우편향을 선언하고 나서면 자신의 전향이 두드러져 보일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이 날아올 것이 겁이 났다. 그 때 카르네아데스의 널이라는 형법 학설이 떠올랐다. 물에 빠져 널판을 잡고 있는 두 명 중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을 바다에 빠뜨리고 살아남더라도 무죄라는 학설이었다. 구루마 다케지는 자신의 정부 류게쓰를 사주하여 오쓰루에게 강간 누명을 씌워 고소하고 그를 학계에서 쫓아낸다.
얼마 후 구무라 다케지가 류게쓰를 살해한 혐의로 입건된다. 그는 류게쓰와 오쓰루의 관계를 사주했으면서도 그 후로 류게쓰가 다른 남자와 관계했다는 점을 견디지 못했고 결국 다툼 끝에 모든 것을 폭로하겠다는 류게쓰를 살해한 것이다.
------
마쓰모토 세이초를 흔히 사회파로 분류하는데, 작가 자신도 그러한 분류에 동의했는지는 차치하고 여기 소개된 8편의 단편은 그의 초기작들로 미스터리이면서도 수수께끼 풀이보다는 범죄의 동기, 혹은 범죄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조건이나 배경에 천착한 작품이 많다.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잠복>은 사실 미스터리 작품이 아니라고 봐도 무방한 스토리이고, 작가 자신도 이를 미스터리 작품으로 여기지는 않았다고 한다. 지루하고 틀에 박힌 일상에서 잠시나마 생의 활력을 얻어 탈출을 꿈꾸던 여자는 상대 남자가 검거됨과 동시에 다시 박제와 같은 삶으로 돌아간다. 담담한 묘사가 일품이다.
<얼굴>과 <목소리>는 인간의 기억에 관한 관찰이다. 직접 얼굴을 보았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다가 영화 속 특정 행동을 하는 얼굴은 알아본다든가, 육성을 식별하지 못하다가 전화기 속 목소리는 식별해낸다는 설정이다.
아이를 살해한 후 극도의 욕정을 느끼는 <귀축>의 오우메나 치밀한 계획을 세워 남편을 살해하고 형벌을 가볍게 받는 <일 년 반만 기다려>의 사토코를 통해서는 남녀 관계의 미묘함과 인간 존재의 악마적 속성을 그리고 있는데, 마쓰모토 세이초는 이러한 악마적 속성이 특정 조건 하에서 발현되는 과정을 정묘하게 보여준다.
마쓰모토 세이초를 처음 접한 것은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드라마를 통해서였다. 기타노 다케시의 팬임을 자처했으므로 드라마 <점과 선>은 고대하던 작품이었다. 허름한 모자를 쓰고 지겹게도 걸어다니며 사건의 단서를 수집하는 형사 주타로 역이 기타노 다케시였다.
더운 여름, 여덟 편의 단편을 읽으며 행복을 느낀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지독히도 많이 써냈고, 나는 지금까지 <잠복>을 포함해 그의 책을 세 권 읽었을 뿐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93535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