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날을 위한 우산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5
빌헬름 게나치노 지음, 박교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화자인 '나'는 46세의 중년으로 구두를 신어본 뒤 착화감을 보고하는 것으로 푼돈을 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구두를 신고 도시의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사람과 사물을 관찰하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를 돌아다니며 어렸을 적 친구들을 만난다. 친구들의 모습은 영락한 '나'의 모습, 혹은 영락할 수 밖에 없는 그 나이대의 인간을 표상하는 것 같다. '나'는 사소한 사물들과 영락한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나'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하고 분열의 예감에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여자친구 리자는 얼마 전 '나'를 떠났다. 리자만이 유일하게 '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2년간 모은 통장의 잔액을 나에게 맡겨둔 채 어느 날 집을 나갔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녀에게 연락하고 싶지만 함께 사는 친구가 전화를 받아 원치 않는 대화를 해야 할 것만 같아 그만둔다. 대신 '나'는 방에 낙엽들을 흩뿌려 놓는다. 어렸을 적 낙엽을 한쪽으로 모으면서 느꼈던 그런 아늑함을 다시 맛보며 리자를 잊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미장원에 간다. 그곳은 60년대 이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 실내장식과 집기들을 갖추고 있다. 그곳에서 마르고트와 관계를 갖는다. '나'는 미장원에서만 그녀에게 관심을 갖는다.
구두 테스터 일의 임금 조건이 나빠진다. 상황이 달라졌다며 사례금이 1/4로 삭감된 것이다. '나'는 구두를 벼룩시장에 내다 판다. 그리고 착화감에 대한 보고서는 순전히 거짓으로 작성한다.
경제적 위기가 눈 앞에 닥쳤는데도 '나'에게는 별다른 대비책이 없고 적극적으로 타개해 나갈 만한 의지도 없다. 그 즈음 연극배우로서의 삶을 꿈꿨으나 현재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수잔네와 우연히 만나 점심을 함께 한다. 얼마 후 저녁에 초대받은 '나'는 수잔네의 손님들에게 허황된 말을 지껄인다. '나'의 그럴싸한 말에 발크하우젠 부인이 반응을 나타내자 한술 더 떠 기억술과 체험술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내뱉고 만다. 손님들은 강렬한 인상을 받은 눈치다. 손님 중에는 힘멜스바흐도 있었다. 그는 대학 시절 친구로 사진작가를 꿈꿨으나 재능과 끈기가 없어 실패했고 꿔간 돈을 갚지 않은 자였다.
힘멜스바흐는 '나'에게 신문사 사진 작가 자리를 따내는데 힘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청탁을 위해 신문사를 찾아간 '나'는 엉뚱하게도 기자 자리를 제의 받고, 힘멜스바흐의 부탁은 거절된다. 그에 대한 미안함은 미장원의 마르고트를 힘멜스바흐가 집적거리는 것을 본 것으로 상쇄된다.
발크하우젠 부인이 권태를 이기지 못해 '체험술 연구소'를 운영하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시덥잖은 잡담을 나눈 댓가로 200마르크를 벌고, 그녀는 자신의 치유 효과를 다른 이들에게 광고까지 해준다. 경제적 배경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는다. 리자에게 전화를 해서 얼마나 건실한 삶의 배경이 생겨났는지 얘기해 주고 싶을 지경이다.
신문사에서 원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축제에 참가한다. 그곳에서 한 아이가 담요로 자신만의 동굴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본다. 강렬한 자극이 넘치는 축제와 아이의 동굴이 대비된다. '나'는 어쩐지 그 아이가 '나'를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같다고 생각한다. 기사를 신문사에 넘겨준 후 '나'는 동굴이 무사한지 확인하러 그곳에 다시 간다. 소년은 보이지 않았고, 그녀의 어머니는 동굴이 망가질새라 조심조심 발코니를 지나다녔다. 축제의 흔적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내 교육 수준으로 보자면 나는 중요한 사람일 수 있고 내 지위를 보자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진짜로 중요한 사람들이란 오직 자신들의 학식과 지위를 삶 속에서 서로 융화시켜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단지 교육만 많이 받은 나 같은 아웃사이더들은 어디에 몸을 숨겨야 할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현대판 거지에 불과하다.
'나'의 자조적인 고백이다. 일제 강점기에, 지식을 써서 밥벌이를 할 곳이란 일제에 부역하는 곳 외에는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 지식인들이 스스로 룸펜을 자처한 것이 역사적 타의에 의한 것이라면, 빌헬름 게나치노는 '자기 내면의 동의'라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개인(주체)과 사물(객체)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인식한 화자는 그 원인을 '자기 내면의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분열 상태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하면서도 끊임 없이 타인의 삶과 사소한 이웃들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곧바로 이를 부정하기도 하는 등 혼란스러운 양태를 보인다.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주던 여인의 부재, 자신이 유일하게 돈벌이하고 있는 직업을 박탈 당할 위기에 직면해서도 화자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
연인의 부재를 이겨내기 위해 낙엽을 주워다 방에 늘어놓는 행위와 전화를 걸지 않으려 이유를 대는 화자의 행동은 영화 <중경삼림>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중경삼림>이야 말로 의사소통에 관한 가장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금성무는 통조림 유통기한에 의미를 부여하고, 임청하의 구두를 닦아준다. 왕정문은 양조위의 집을 몰래 청소해주고 양조위는 비누와 대화를 나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대조는 금성무가 무선호출기를 버리는 행동과 양조위가 잉크가 번진 냅킨 항공권을 간직하는 행동이다. 금성무는 끝내 계속 달리기를 해야 할 운명이고, 양조위는 액면이 날아간 수표일지언정 통용에 성공할 것이다.
<이날을 위한 우산>의 화자는 금성무의 운명이 될 공산이 크다. 그는 끝내 리자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93423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