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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네즈 - 제2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전혜성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8월
평점 :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사흘돌이로 전화를 걸어와 여러가지 것들을 하소연 하기 시작하더니 아정의 입에서 '올라와 함께 지내자'는 말이 나오자 그제서야 멈춘다. 함께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 아정의 온 신경은 엄마로 인해 예민해진다.
아정이 새 일감을 맡는다. 보험판매왕의 삶을 대필해주는 일이었다. 자세한 설명이 번거로워 엄마에게는 책을 쓰는 일이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엄마는 딸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엄마 친구들에게 책을 쓰는 큰딸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었다.
상념은 과거로 치닫는다. 아버지는 거대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이북에서는 생물 선생을 했었고, 남쪽에 내려와서는 무허가 약방을 차려 운영하였다. 아버지는 '술독을 깔고 앉은' 사주 팔자였다. 술을 먹고 들어오면 소리 안나는 물건부터 때려부수기 시작하여 급기야 온 집안을 들어엎었고, 엄마가 마실을 나갔다가 늦게 들어오기라도 할라치면 불꺼진 약국으로 데려가 엄마 위에 올라타 묵묵히 주먹질을 해댔다.
딸만 내리 셋 낳은 죄로 엄마는 그런 아버지의 주먹질과 패악을 참아냈고, 그럴수록 아정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엄마는 아정이 천재라고 믿고 싶어했고, 그런 바람이 어느 날부터인가는 확신으로 변했다. 아정은 엄마의 과도한 기대와 확신에 숨막혀한다. 엄마는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변비약 등 각종 약꾸러미를 달고 살았고 담배를 배웠으며 '점잖은' 신사들을 만나러 다닌다.
의사나 판검사가 되라는 엄마의 기대를 배신하고 아정은 서울로 대학을 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 대학원에 다닐 즈음 가세가 기울어 취직하여 돈을 벌기 시작한다. 동생 아라와 살던 방의 허물어진 벽지를 지금의 남편이 새로 발라준 날 아정은 그와 결혼하기로 맘 먹고 아라를 그곳에 남겨둔 채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엄마가 가벼운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아버지는 발빠르게 대처하고 열부 노릇을 했다. 그 덕에 의사들의 예상보다 빨리 엄마는 회복된다. 얼마 후 아버지가 같은 병으로 쓰러진다. 아버지는 만 하루를 집안에 방치된다. 앰뷸런스라도 부를 생각을 못했느냐는 아정의 타박에 엄마는 심상한 말투로 앰뷸런스도 못 들어오게 좁은 길목을 탓했다. 마치 아버지라는 원수가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투로 들린다. 아버지를 보러간 어느 날 와병중인 아버지가 변을 놓치고 만다. 엄마는 변을 치우는 일을 온전히 도우미 아줌마에게 쓸어 맞겨놓는다. 아버지의 변냄새에 끼어든 시큼한 냄새에 아정은 비위가 상한다. 시큼한 냄새의 정체는 엄마가 머리에 뒤발해놓은 마요네즈였다. 아정은 토악질을 하고, 얼마 후에야 아이가 들어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험여왕의 삶을 대필하는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요통이 겹쳐 짜증이 극에 달한 어느 날 돌아와보니 엄마가 화장실에서 변을 놓치고 쓰러져있었다. 머리에는 예의 마요네즈를 뒤발한 채. 콜택시만 타고 다녀야 한다고 고집하고 방에서 담배를 피워대며, 아이들에게 사소한 것조차 양보하지 못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엄마에게 아정은 급기야 더 이상 함께 살기 어렵다는 말을 뱉고 만다.
엄마는 꼭 해야 할 말이 있다면서 아정의 외할머니 이야기를 해준다. 아정의 외할머니는 몰락한 양반가의 딸로 씨받이로 들어가 육십 먹은 노인네를 수발하다가 엄마를 낳는다. 얼마 후 아들을 낳지만 남편과 아들 모두 죽고 만다. 집안에 드나들던 총각과 야반도주를 했다가 한 달 뒤에 돌아온 외할머니는 엄마를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간다. 그때 엄마가 아버지를 만나 시집을 간다. 하지만 아버지는 못말리는 술꾼이었고 외할머니가 빌려간 돈을 갚지 않는다며 엄마를 닦달한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가서 패악을 떤다. 결국 견디다 못한 외할머니가 서울로 재취자리를 얻어서 떠나버린 후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사과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얼마 후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엄마는 끝내 외할머니에게 패악을 떨었던 것이 한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와 이혼하고 싶었지만 아버지 없는 설움이 어떤 것인지 알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아정은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를 견디지 못한 딸'이 되었다는 사실이 못내 불편했고 어떻게든 자신의 말을 되돌리고 싶었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엄마가 젊었을 적 만났던 '점잖은 신사'들 중 한 명이었다. 그 신사는 당시 몰려다니던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엄마는 아정에게 크리스마스 이브때까지는 어쨌든 집에 머물러야 겠다고 말하고, 아정은 엄마와 화해할 시간을 벌었다는데 안도한다.
제2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수상작이다. 신인작가가 쓴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쓰여진 소설이다. 헌신적이기만 한 어머니,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책임감 강한 큰 딸은 소설에 나오지 않는다. 자신을 학대했던 남편을 미워하며 남편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머리결을 살리기 위해 마요네즈를 뒤발하는 어머니, 동생을 남겨둔 채 음습한 방에서 결혼을 통해 탈출하고 엄마를 못 견디겠다고 소리치는 딸이 나온다. 그들의 모습은 불편하다. 왜냐면 그들이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어떤 '전형'에서 많이 멀어진 그들을 화해시키고 작품을 갈무리하는 솜씨도 훌륭하다. 맘 속에 있는 것들을 다 내지르고 난 연후 '아차'하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끼어든 전화. 분명 작위적인 사건임에 분명하지만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둘은 화해를 위한 사건을 만들어냈을 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던 세 자매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중매 섰던 아줌마 아저씨야 말로 모든 사단의 시작이라며 키득대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장례는 슬픔이 켜켜이 쌓여 삶을 까라지게 하는 과정만은 아니다. 분명 그 사이에 웃음이 끼어든다.
나의 할아버지는 구십이 넘어서 돌아가셨다. 시간이 흐른 후에는 '호상' 이니 하는 말이 나올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장례가 주는 그 무거움과 혈육이 돌아가셨다는 슬픔의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작은형님의 문상객이 향을 피우기 위해 영전에 다가섰을 때였다. 촛불은 영전 위쪽에 있었고, 문상 경험이 적은 그 객은 고개를 조아리며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영전 아래쪽만 연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치 영전 위쪽으로 시선이 올라가면 큰 불경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도무지 향에 불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 몰라 난망해하던 그 객은 식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기왕에 꽂혀 있는 향 끝 부분의 빈약한 발간 점에 새 향의 끄트머리를 접촉시켜보려는 안타까운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향 끝은 부들부들 떨려 발간 점에 접촉되지도 않았지만, 오른쪽 손목을 왼손으로 받치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 발간점에 접촉시켜도 불이 붙을리 만무였다. 객은 상주들 모르게 발간 점에 바람까지 불어넣고 있었다. 그때 우리 삼형제는 분명 웃었다. 웃으면 안되니까 앙다문 입은 폭발하기 직전이었고 얼굴은 벌개졌으며 작은형의 그 어리숙한 객이 우리에게 웃음을 불러일으켰음을 탓하듯이 작은형 옆구리를 찔러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가장 숭고하고 엄숙해야 할 시기에도 인간은 웃도록 되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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