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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온 편지 - 개정판 ㅣ 작가정신 소설향 10
장정일 지음 / 작가정신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부소는 자신의 가문에 비밀이 있는데, 진시황이 사실은 부소의 할아버지 이인(異人)의 아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인은 진나라 소왕(昭王)의 차남 안국군(安國君)의 아들로 왕손이기는 했으나 숱한 처첩이 낳은 20여 명의 아들 중 하나였을 뿐으로 안국군의 총애를 받지도 못했다. 따라서 이인은 어려서부터 전국시대의 강국 조(趙)나라의 인질로 보내졌다. 당시 희대의 무역상 여불위(呂不韋)가 그런 이인의 가치를 알아차려 간계를 꾸민다. 여불위는 안국군의 정부인이면서도 아들이 없었던 화양(華陽)부인에게 접근하여 이인의 효성스러움을 설파하는 한편 그를 양자로 삼았을 때의 이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를 옳게 여긴 화양부인이 이인을 양자로 삼고 이름을 자초(子楚)라 바꾼다.
한편 여불위는 절세 미녀를 얻어 그녀에게 자신의 씨앗을 심었는데 이인이 그 여자를 탐내며 양보해달라고 채근한다. 여불위는 다 된 밥에 코 빠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여인을 양보하고, 여인이 낳은 아들이 바로 진시황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인은 진시황이 자신의 아들이라 끝내 믿는다.
이인이 사망하고 진시황이 즉위할 즈음 여불위는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러나 진시황의 친모와 예전의 음탕한 짓을 잊지 못하고 붙어먹고 있었으니, 이를 눈치챈 진시황은 여불위를 압박한다. 여불위는 참수가 두려워 스스로 독주를 마시고 죽고 마니, 진시황은 자신의 친부를 죽인 패덕자가 되는 것이다.
사실관계야 어찌 되었건, 진시황은 전국시대 칠웅 가운데 후진국에 속한 진나라를 부흥시킬 계책으로 공맹의 도를 따라서는 가망이 없다 보고 법치주의를 치세의 근본으로 삼는다. 승상 이사(李斯)가 그 역할을 맡는다. 진시황은 기원전 221년 38세의 젊은 나이에 중국 천하를 통일한다. 진시황은 예(禮) 대신 법(法)을 내세우고, 봉건제(封健制) 대신 군현제(郡縣制) 국가를 수립한다. 공맹의 도를 외치는 반대세력을 생매장하는 한편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통해 국가의 통치 이념을 하나로 정립해나간다.
그 즈음 진시황은 부소가 자신의 정책에 반하는 발언을 했음을 이유로 몽염 장군을 감독하라는 애매한 명과 함께 북쪽 변경으로 쫓아낸다. 이 충격으로 부소는 눈이 멀고 만다. 진시황은 부소를 언젠가 자신의 권력을 이을 승계자로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룩한 것을 빼앗을 또다른 라이벌로 간주한 것이다.
북쪽 변경으로 쫓겨간 부소는 만리장성을 축성한 몽염 장군의 지극한 정성과 간호로 1년여 만에 시력을 회복한다. 그러나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더니 급기야 비역질을 하는 사이가 되고, 부소와 몽염은 서로를 부자지간, 누이지간, 연인지간으로 생각하기에 이른다.
진시황이 급사하자 환관 조고가 진시황의 사망을 숨긴 채 이사를 충동질하여 호해를 태자로 세운다. 부소와 몽염에게는 자결하라는 황제의 위조 칙령이 당도한다. 부소는 자객의 칼을 맞지만 몽염이 준 불사의 약을 먹고 기사회생한다. 핍박에 못이겨 자결한 몽염의 넋에 부소가 나타나 둘은 아슴푸레한 재회를 한다.
역사에 있어서 빈구멍을 소설로 형상화해내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장정일은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의 모든 유산을 상속할 적법한 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끝내 역사서에 두 줄 나오는게 고작인 부소의 입을 빌어 진시황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장정일은 영악하다.
들어보십시오. 나는 부소(扶蘇)입니다. 나는 부소이자, 나는 부소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가면입니다. 그러니 이건 소설도 아니고 평전도 아니고 역사는 더욱 아닐 겁니다.
소설의 초입부터 진시황의 첫째 아들 부소의 입을 빌어 언설을 풀면서도 면책조항을 깔아놓은 것인데, 결국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라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모두 할 수 있는 요술지팡이가 생긴 것이다.
장정일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무리짓는 것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아버지(혹은 절대자)에 대한 결락감이다. 독학자에게서 흔히 보여지는 그 모습이 언제나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