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임무를 마치고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3
하인리히 뵐 지음, 정찬종 옮김 / 책세상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작은 마을 비르글라르의 가구수선공 요한 그룰과 그의 아들이자 연방군 병사인 게오르크 그룰이 연방군 지프를 방화한 죄목으로 기소되어 재판이 열린다. 그들은 구류 기간 동안 가혹한 대접을 받지도 않았고 심지어 식사를 날라다 주는 아가씨는 게오르크의 아이를 임신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순순한 태도로 자신들의 범행을 시인했고 재판과정에도 협조적이었다. 증인으로 소환된 마을 주민들은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으며, 시골 법정은 사건의 핵심에서 벗어난 증언들로 시장터를 방불케 한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게오르크 그룰이 사실은 이미 제대했어야 옳다는 증언이 나온다. 그가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얻은 휴가가 잘못 계산되었으므로 연방군 지프를 불태울 당시에는 이미 민간인이었어야 맞다는 것이다.

신부와 경제학자, 집달관 등이 차례로 어수선한 증언을 계속한다. 경제학자의 증언으로 요한 그룰이 왜 파산에 처하게 되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요한 그룰은 잘못된 조세 정책 때문에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자의 날카로운 분석은 곧 판사에 의해 제지되고 만다.

지프를 태운 행위가 차츰 예술적 행위가 아니었는가 하는 방향으로 재판이 진행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교수가 증언을 한다. 그는 그룰 부자가 지프를 태운 행위가 하나의 '해프닝'이었고, 그 행위를 충분히 예술행위로 볼 수 있다고 증언한다. 점차 사건이 축소되는 분위기 속에서 검사가 마침내 '못해먹겠다'면서 뒤로 나자빠지기까지 하지만 결국 그룰 부자는 6주간의 구류와 벌금형이라는 가벼운 처벌만을 받게 된다.

 

요한 그룰은 전쟁에 참가하여 적들과 싸운 것이 아니라 독일군이 빼돌린 가구 수선에 골몰했고, 그의 아들 게오르크 그룰 역시 자동차 점검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동차 운행 킬로수를 조작하는 일이 주임무였다. 잘못된 조세 정책으로 그룰 부자는 소득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뜯겨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지는 상태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룰 부자가 군용 지프를 불태우자 국가는 그룰 부자의 행위가 국가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될 것을 우려하여 그들의 행위가 예술적 표현인양 포장하여 얼렁뚱땅 재판을 처리하고 만다. 먼저 날짜 계산이 잘못 되었다며 게오르크가 사실은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라고 우기고, 그들이 군용 지프를 태운 행동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예술적 표현의 한 형태라고 어거지를 쓰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예술 행위의 소재를 적법한 절차를 통해 입수하도록 충고하며 가벼운 처벌로 재판은 마무리되는데, 이러한 블랙코미디를 통해 작가는 예술작품을 통한 저항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90757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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