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환상문학전집 20
헨리 라이더 해거드 지음, 이영욱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케임브리지에서 특별 연구원으로 일하는 루드윅 호레이스 홀리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여성들과 거리를 두고 진리 탐구에만 매진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친구가 철궤와 함께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유언의 내용은 자신의 아들 레오 빈시의 후견인이 되어 줄 것과, 빈시가 스물 다섯이 되는 해에 철궤를 열어 그 안에 담긴 빈시 가문의 유지를 실행해달라는 것이었다.

빈시는 아름답고 수려한 외모의 청년으로 자라났고, 홀리는 그를 친아들처럼 애지중지하며 키운다. 어느덧 빈시가 스물 다섯이 되자 둘은 철궤를 연다. 그 속에는 도편과 양피지들이 들어있었고 거기에는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씌여 있었다.

 

이시스의 사제 칼리크라테스는 파라오의 왕족 아메르타스를 사랑한 탓에 신에 대한 서약을 깨뜨리고 함께 아프리카로 도망친다. 그곳에는 이방인의 머리에 항이리를 씌워 죽이는 족속이 있었는데 그들을 다스리는 여왕은 불멸의 생명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었다. 여왕은 칼리크라테스에게 한눈에 반해 만약 그가 아메르타스를 죽이고 자신에게 온다면 불멸의 힘을 주겠다고 유혹한다. 하지만 칼리크라테스가 이를 거부하자 여왕은 그를 창으로 찔러 죽이고, 아메르타스를 추방한다. 아메르타스는 아이를 낳는데 그 아이가 바로 빈시의 오랜 선조이다. 아메르타스는 아이에게 불멸의 여왕을 찾아가 복수를 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빈시의 선조들은 불멸의 여왕을 죽이기 위한 갖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그 결과를 도편에 남겼다. 도편에는 힘이 미치지 못하여 실패하였다거나, 의지가 부족하여 일을 성사시키지 못했다는 빈시 가문의 유언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레오는 도편과 양피지에 기록된 것들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홀리와 레오, 그리고 하인 조브는 불멸의 여왕을 찾기 위해 아프리카로 향한다. 항해 도중 폭풍을 만나 그들이 타고간 다우선이 침몰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일행은 아프리카의 부족들에게 사로잡히는데, 그들이 바로 이방인의 머리에 항아리를 씌워 죽이는 족속임에 분명해 보였다.

아마하가 부족의 족장 빌랄리는 여왕이 그들을 해치지 말고 보호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말한다. 부족은 모계 중심 사회였는데 여성이 마음에 드는 남성을 발견하면 키스를 하고, 남성이 이를 거부하지 않으면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고 했다. 아름다운 우스테인이 레오에게 키스를 하고, 레오가 그들의 관습을 잘 알지 못해 거부하지 않는다. 우스테인은 레오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생각한다.

아마하가 부족의 식인 관습 때문에 레오 일행은 위기를 맞는다. 아마하가 부족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레오가 상처를 입게 되고, 여왕을 만나러 가는 길에 열병까지 얻게 된다.

홀리가 여왕을 먼저 알현한다. 여왕은 자신의 이름이 아샤이며 2천년을 넘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얼굴을 베일로 가리고 있었는데 홀리는 자신도 모르는 욕망에 사로잡혀 그 베일을 벗어달라고 간청한다. 여왕은 베일을 벗은 자신의 얼굴을 본 남성들은 이룰 수 없는 욕망 때문에 심장이 갉아먹힐 것이라 했고, 과연 그녀의 말대로 되었다. 홀리는 여왕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그녀의 사랑을 얻을 수 없는 것에 괴로와한다.

열병으로 신열에 들뜬 레오를 치료하기 위해 온 아샤는 레오의 얼굴을 본 순간 희열에 달뜬 표정으로 그가 바로 칼리크라테스의 환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방부처리된 시체를 보여주는데 시체의 얼굴은 정확히 레오의 얼굴이었다. 아샤는 시체가 더 이상 필요치 않다며 한 줌 재로 화하도록 만들고 레오를 치료한다.

레오를 헌신적으로 간병하던 우스테인이 아샤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이를 본 레오가 아샤를 비난하지만 그녀가 베일을 벗자 레오 역시 그녀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고 만다.

아샤가 레오에게 영원한 삶을 주겠다며 그들을 험준한 산맥의 비밀스러운 통로로 데리고 간다. 신비스러운 불꽃이 타오르는 동굴에 이른 그녀는 불을 쏘이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며 직접 불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불 속을 나온 그녀는 점차 온 몸이 늙어가기 시작하더니 작게 쪼그라들어 결국 죽고 만다. 영원한 삶을 주는 불을 두 번 쏘이면 그렇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불의 속성이 바뀐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레오와 홀리는 아샤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심장을 베인 채 아프리카를 떠나 영국으로 돌아오고 남은 평생 동안 아샤에 대한 기억을 떨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1887년에 발표된 <그녀(She : A History of Adventure)>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로부터 '아주 기묘하면서도, 숨은 의미로 가득한 책'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정글북>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은 해거드를 '비유와 상징, 그리고 한 가지를 다른 하나에 반영하는 데 대단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 외에도 C.S.루이스, D.H.로렌스, 그레이엄 그린, J.R.R.톨킨, 조셉 콘레드 등이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 특히 <암흑의 핵심>은 <그녀>의 분위기를 온전히 차용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남성이 성년이 되기 전 품게 되는 여성에 대한 욕망은 그 욕망의 강력함 때문에 완전무결한 이미지를 갖게 되며, 자신이 감히 그러한 완전무결함을 취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상상 속의 여성은 상냥하고, 아름다우며, 세속적인 오염과 무관하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사람' 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 속의 신격화된 그 무엇이다. 신격화된 그 무엇을 취한다는 것이 끊임없이 경고음을 울려댄다. 그들은 여성을 두려워하고, 다가설 수 없으며, 환상 속에서만 관계를 맺는다.

아샤는 그러한 남성 욕망의 현현이다. 미지의 대륙인 아프리카는 바로 다른 성(性)에 대한 남성의 무지함을 비유하고, 그곳의 여왕인 아샤는 남성 욕망의 대상을 상징한다. 불멸과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아샤는 남성을 무릎 꿇게 만들고, 그녀를 두려워하면서도 욕망하게 만든다. 두려움이 없는 상태에서의 욕망은 진정한 욕망이 아니고, 기껏해야 욕구의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남성 욕망이 실현 단계에 접어들면 이번에는 아샤의 이미지가 깨어진다는데 있다. 금기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모든 환상은 깨어진다. 레오가 아샤의 구애를 받아들인 직후 그녀가 2천년 세월을 온 몸에 아로 세긴 채 죽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90268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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