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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리는 날
김한수 지음 / 창비 / 199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o 성장(1988년, 창작과비평 겨울호)
창진의 아버지는 전화기 수리공으로 일하며 악착같이 생계를 이어가려 하지만 빚만 늘어가고 급기야 자식 학비마저 대지 못하자 술에 의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의처증 때문에 아내를 구타하기 시작한다. 아내가 집을 나가 식모살이로 들어가자 마음을 다잡아 먹고 다시 일을 시작하지만 가난의 수렁은 그의 발목을 놓아주지 않았고 또다시 술을 먹고 돌아온 아내를 때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창진은 아버지에게 패배자라며 악을 쓰고 학교를 때려 치운다. 아버지는 유서를 남긴 채 실종된다. 공장에 들어간 창진은 어떻게든 학업을 이어가려 하지만 대학교에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기계처럼 일하던 창진은 어느 날 자신의 얼굴에서 패배자라고 비난했던 아버지의 얼굴을 본다.
사장이 눈물을 흘리며 회사가 적자라며 노동자들의 이해와 희생을 호소하던 날, 창진은 사장의 통화내용을 듣게 된다. 사장은 노동자들을 멋지게 속여넘긴 자신의 기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창진은 마루봉을 주워들어 사장의 머리를 내려친다. 창진이 사고를 친 날, 집이 강제 철거 당한다. 보상비는 사장과의 합의금으로 고스란히 들어간다.
이사가는 날 창진은 짐과 함께 트럭에 몸을 부린다. 눈발이 거세지자 창진은 세상에 죽은 것은 없다. 죽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라고 생각하며 웃는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뒤덮이고 있었다.
o 봄비 내리는 날(1990년, 문예중앙 가을호)
만삭인 아내가 한 장의 통지서를 받아들고 울적한 심사를 감추지 못한다. 통지서는 입주안내문이었다. 만석과 아내 영란은 강제 철거를 당하면서 입주권을 받았지만 입주에 필요한 보증금을 구하지 못해 입주권을 삼백만원에 투기꾼에게 팔았었다. 그런데 이제 입주안내문이 날아왔으니 백만원이 없어 내 집 마련의 꿈을 날려버린 부부에게는 씁쓸한 심사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입주권은 이제 프리미엄이 붙어 천만원에도 거래된다 했다. 투기꾼들은 재개발 예정지에 하룻밤 사이 무허가 주택을 여러채씩 지어 나갔고 심지어는 동사무소 옆에도 지을 지경이었다. 그들은 원주민들에게는 입주권을 사고, 자신들이 지은 유령 주택에서도 입주권을 뽑아내어 열 채 이상을 소유한 후 팔아치웠다. 주공과 투기꾼들만 배가 부를 뿐이었다.
입주권을 사간 자가 만석에게 오십만원을 내밀었다. 대리 입주할 때 말썽을 부리지 말라는 부탁과 함께였다. 만석은 부탁을 뿌리치고 입주권을 되찾겠다고 마음 먹는다. 어짜피 입주권을 사고 판 사실이 알려지면 둘 다 처벌 받을 것이고, 자신은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심사 때문이었다. 하지만 입주에 필요한 돈은 결국 아무도 빌려주려하지 않는다. 만석은 남의 집이 되어버린 아파트에 남의 짐을 싣고 이사를 간다.
만석은 프레스기에 팔이 잘린 강대석 형에게 대리입주의 대가로 받은 돈을 주어 포장마차라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강대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구걸밖에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자살하고 만다. 그날 봄비는 한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거세게 내린다.
o 그 무더웠던 여름날의 꿈(1992년, 신작중편소설집 <그 무더웠던 여름날의 꿈>)
한때 건달 생활을 했던 덕배는 손을 씻고 공장에 들어가 기술을 배운다. 4년여를 착실히 일한 끝에 반장이 된다. 그가 사는 집 주인은 황영감님이라는 분인데 남원댁이라는 이와 늘그막에 함께 살다가 지금은 뇌출혈로 운신을 못했다. 영감의 아들들은 검사에 사장에 출세들을 했다고 하는데 찾아와보는 법도 없는 불효자들이었다.
그 집에는 술집에 나가는 아가씨, 평생을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아이들을 먹여살리려고 고생만 직사하게 하는 복길이네, 장가를 들어보려고 서울에 와서 공장에 나가는 정구씨, 그리고 무당 보라네와 이제 사장님이 되어 형편이 펴지자 남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은비네, 그리고 수상쩍은 연하남과 사는 현주네 등이 함께 살고 있었다.
휴가비 때문에 사장과 면담을 한 덕배는 사장이 연마기를 한 대 사면 하청을 주겠노라는 약속에 동료들을 배신하고 현민을 쫓아내는 데 앞장서기까지 한다. 현민이 쫓겨나면서 보낸 눈빛이 덕배의 마음에 아로세겨져 못내 부끄러워진다. 현민은 형사들에게 팔이 꺾여 연행된다.
황영감이 죽자 아들들이 찾아와 남원댁을 쫓아내려 하고 얼마 후 남원댁이 자살한다. 정구씨는 술집 아가씨에게 연정을 품지만 뜻대로 진행되지 않고 복길이네는 자궁암에 걸리고 만다. 현주네는 동생이라 부르며 쉬쉬하던 연하남과 정식으로 결혼한다.
연마기가 들어오기로 한 날 덕배는 전화를 걸어 기계 들여오는 날을 일을 며칠 미룬다. 그는 현민을 면회가기로 한다.
김한수의 초기 중편 모음집으로 노동자의 운명이 되물림되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 소설 <성장>, 주택재개발과 투기꾼들의 잔치 이면에 피눈물을 뿌리는 도시 빈민을 그린 <봄비 내리는 날>, 한 지붕을 이고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과 아픔을 그린 <그 무더웠던 여름날의 꿈>이 실려 있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성장>은 계절적 배경이 겨울이고, <봄비 내리는 날>은 봄, 그리고 <그 무더웠던 여름날의 꿈>은 여름이니, 결실을 맺는 가을은 빠진 셈이다.
<성장>은 그의 데뷔작인만큼 거칠고 직선적이다. 인물들의 생각과 대화 이외의 소설적 장치들이 빈약하여 마치 무대 설명을 뺀 희곡을 읽는 느낌을 준다. 소설적인 완성도는 90년에 발표된 <봄비...>와 92년에 발표된 <그 무더웠던...> 쪽으로 갈 수록 높아진다.
목요일 밤부터 금요일까지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많이 내렸다. 이 책은 2008년도 겨울에 인천중앙도서관 1층 책꽂이에서 뽑아온 책이다. 필요한 사람 가져가라고 책꽂이에 줄줄이 꽂아놓은 책 중에는 폐기처분해야 할 책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유독 이 책이 눈에 띄어 들고온 것이다. 지금도 그 책꽂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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