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뽀로 여인숙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진명은 어느 날 인도를 덮친 트럭에 의해 쌍둥이 남동생 선명을 잃고 만다. 진명은 고등학교 3학년의 남은 시간을 달리기와 문제집 풀이로 보내며 상실감을 달랜다. 김동휘라는 남학생은 선명의 별명이 '달리는 아이'라고 알려준다. 

무난히 합격하리라던 담임의 장담과 달리 대학에 떨어진 진명은 작은 무역회사의 경리가 되어 차를 타고 은행 심부름을 한다. 은행 마감시간을 넘겨 은행 안을 들여다보던 진명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함께 은행을 털자는 엉뚱한 제안을 한다. 그는 진명이 다니는 무역회사 건물에 사무실을 갖고 있고 이름은 김정인이라 했다.

진명은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나면 텔렉스를 읽으며 영어 약자를 외워보기도 하고 다른 이의 책상에 앉아 하릴 없이 서류를 읽어보기도 한다. 직원들이 모두 외근 나간 날, 브라운이라는 미국인의 전화를 잘 응대한 덕분에 그의 호감을 사고 미스캣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한편 김정인은 진명에게 호감으로 대하고 그녀에게 일자리를 제안한다. 김정인과는 해와 달처럼 거의 만나지 못했고 서로 메모를 주고 받으며 일처리를 해나간다.

주워온 개 토마와 함께 조용히 살아가는 진명의 삶에 가끔 알 수 없는 환영과 환청이 끼어든다. 진명은 그의 이름이 고스케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만난적도 없었고 그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진명은 선명이 남긴 유품을 정리하다가 선명이 기념 삼아 산 종이 모두 네 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는 자신이, 다른 하나는 선명이 가졌으니 나머지 두 개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선명이 남긴 편지를 통해 미래라는 이름의 고등학교 동창이 선명을 좋아했음을 알게 된다.

윤미래가 진명을 찾아온다. 그녀에게 또 하나의 종이 있었다. 윤미래는 진명에게서 죽은 선명을 본다. 윤미래는 차츰 진명의 삶 속으로 스며들지만 어느 날 진명이 자신의 이름을 똑바로 불러보라는 요구에 주춤한다.

 

사무실에 놓여 있던 구두의 임자가 찾아온다. 그녀의 이름은 최태경이었고 김정인과 격하게 다툰다. 그녀는 김정인의 몸에 상처를 내서라도 자신을 기억하도록 만들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최태경을 피해 떠난 길에서 김동휘를 다시 만난다. 김동휘와는 끝내 우연한 곳에서 우연한 시간에 만날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김정인과 최태경의 다툼이 격해지고 급기야 최태경이 진명에게 상처를 내는 사건이 벌어진다. 진명은 사무실을 떠나면서 아주 잠깐 자신이 김정인을 사랑했었는지 궁금해한다.

 

토마가 어느 날 죽은 채 발견된다. 토마를 예전에 김정인과 찾아갔던 모텔 부근에 묻어주기 위해 떠난 길에서 윤미래를 만난다. 그녀는 바로 어제 헤어진 것처럼 7년 간의 공백을 무시하고 진명을 대한다. 그녀는 곧 외국으로 갈 것이라 했다. 얼마 후 신문에 윤미래가 안나푸르나 제1봉에서 실종되었다는 기사가 난다.

 

진명은 마침내 삿뽀로로 떠난다. 그녀는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날 것이라 생각했다. 윤미래를 닮은 여자를 따라갔다가 삿뽀로 여인숙에 묵게 된다. 그곳에서 진명은 고스케로 짐작되는 남자를 본다. 고스케의 방에서 선명의 편지를 발견한다. 편지에는 선명이 불길한 꿈을 꾸었다는 것과, 곧 하늘을 속이는 일을 할 것이라는 것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네 번째 종이 바로 고스케에게 전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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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삿뽀로 여인숙>은 어느 모로 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선명의 죽음에 호들갑스러워 하지 않으며 달리기를 하는 진명의 모습이나, 상실감을 드러내지 않으며 삶 자체가 조용하게 진행되는 분위기, 하찮은 일을 하면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처리하고 그런 모습 덕택에 좋은 평판을 얻게 되나 정작 자신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 태도 등이 그렇다.

그러한 분위기만으로 소설을 계속 끌어나갔더라면 어땠을까? 최태경과 김정인의 다툼, 그리고 김정인의 도피 장면이 전체적인 분위기에 잘 들어 맞지 않는다.

<고스케는 누구인가?> 에 대한 대답은 끝내 명확하지 않다. 선명의 편지에 쓰여 있는 '하늘을 속이는 일을 할 것이다'가 키워드이겠는데,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주관하는 것이 인간의 목숨이라 했을 때, 불길한 꿈을 꾼 선명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고 따라서 자신이 사고사로 죽었다고 모두를-심지어 하늘까지도- 믿게 만들지 않는다면 죽음을 피해가지 못하리라 느꼈을 수 있다.

고스케가 곧 진명인가 라고 물었을 때는 별도의 인물인 것으로 생각된다. 선명은 고스케를 상대로 편지를 보냈고, 고스케의 성장기 사진을 보고 진명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자신의 사진이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스케와 선명의 접점은 어디인가 라는 질문이 추가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

다른 가능한 해석은 선명이 꿈에서 본 것이 진명의 죽음이라는 것이다. 하늘을 속인다는 의미는 진명이 아닌 자신이 차에 부딪혀 죽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이쪽이 여러모로 설득력이 있으나 작가는 확실한 답을 독자에게 제시하지 않는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8713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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