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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스트리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2
V.S. 나이폴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평점 :
미겔 스트리트는 서인도제도의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수도 포트 오브 스페인에 있는 빈민가 거리이다. 작가인 나이폴은 1932년 트리니다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후 1948년 해외 유학 장학금을 취득했고, 1950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작가로 활동하며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고 200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다분히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미겔 스트리트>는 총 17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전반부의 16개 장은 미겔 스트리트에 사는 인물들에 할애되어 있고, 마지막 17장은 자신이 트리니다드를 떠난 경위를 적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정상 궤도에서 조금 벗어난 인물들로 그 중 생활인(生活人)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들은 저마다 주도면밀하게 짜여진 함정에라도 빠진 듯 실패를 거듭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보다는 탈출을 꿈꾼다. 그러나 그들의 탈출 역시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남자들은 오쟁이진 남편이기 일쑤이고 여자들은 상시적으로 남편에게 구타당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변변한 항의조차 하지 않는다. 신문을 통해 얻은 지식을 자랑하다가 사기를 당한 후에 복권에 당첨이 되었는데도 당첨 사실이 신문에 났다는 이유로 믿지 못하는가 하면, '기계의 천재'는 멀쩡한 자동차를 수리한답시도 망가뜨리기 일쑤이다. 마을의 천재는 번번히 시험에서 떨어지고 시인과 예술가들은 트리니다드에서 자신을 이해할 사람이 없다며 조악한 자신들의 기예를 한탄하기 일쑤이다.
등장 인물들의 반복되는 실패는 결국 주인공 자신이 '트리니다드에서는 술이나 마셔야지 그 밖에 할 일이 있겠어요?'라는 자조적인 말로 대변된다.
트리니다드는 흑인과 인도인이 백인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왔지만 한국이나 중국의 식민지배 양상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었다고 한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인종들이 외부로부터 유입되었기 때문에 민족적인 구심점이 없었고 이런 이유로 피지배민족끼리 대결 양상을 띠었고, 자조적인 분위기가 만연해 '트리니다드'라는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희박했다고 한다. 그 결과 도덕적인 부패와 권태, 무기력이 국가 전체를 짓눌러 범죄행위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문제의 해결보다는 탈출을 염두에 둔 생활방식이 주조를 이루었다고 한다.
<미겔 스트리트>를 읽으면서 이문구의 <우리동네>가 생각났다. 그리고 <우리동네>가 얼마나 훌륭한 작품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작품 속에 담긴 해학과 비판의식, 그리고 연작소설을 이끌어가는 뚝심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한동안 한국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 구체성, 내가 딛고 선 이 땅의 이야기가 주는 현장감이 싫었다. 밥벌이의 고단함을 소설 읽기에서 다시금 맛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한국소설로 돌아가야 하리라. <미겔 스트리트>에서 탈출에 성공한 사람이 없듯이, 나의 탈출 시도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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