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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각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츠노시마에는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건축가가 약 20년 전 청옥부(靑屋敷)라는 건물과 십각관(十角館)이라는 별관을 짓고 세상을 피해 은거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나카무라 세이지와 그의 아내, 그 집에서 일하는 부부가 시체로 발견되는 희대의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특이한 점은 세이지의 아내 카즈에의 손목이 잘린 후 사라진 것이다. 경찰은 사건 전후로 행방이 묘연한 정원사를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어떤 확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이타의 O시에 있는 K대학의 미스터리 연구회 맴버 일곱 명이 그 츠노시마(角島)로 떠난다. 모임 맴버 중 반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회원의 친척이 그 섬을 사들였는데 희대의 살인사건이 일어난 섬이라는 점이 미스터리 연구회 회원들의 흥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일곱 명의 연구회 맴버들은 각각 엘러리, 카, 반, 포, 르루, 아가사, 올치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유명한 추리소설가의 이름을 딴 이 별칭은 미스터리 연구회의 전통으로 그 이름은 후배에게 계속 대물림 되었다.
한편 섬으로 떠나지 않은 또 다른 연구회 회원 가와미나미 다카아키와 모리스 쿄이치에게 편지가 배달된다. 발신자는 얼마 전 죽은 나카무라 세이지, 내용은 '네놈들이 죽인 치오리는 나의 딸이었다' 단 한 줄이었다. 나카무라 치오리 역시 미스터리 연구회의 맴버였다. 그런데 그녀는 작년 신년회 술자리에 참가했다가 회원들이 강권한 술이 원인이 되어 급사했다. 그러니 엄연히 말해 살해당했다는 표현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치오리가 나카무라 세이지의 딸이었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었고, 게다가 이미 사망한 세이지로부터 편지가 왔다는 것은 더욱 놀랄 일이었다. 가와미나미는 편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카무라 세이지의 동생 코지로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시마다라는 흥미로운 사내를 만난다. 가와미나미, 모리스, 시마다는 편지를 분석하며 여러가지 가능성을 검토한다. 그 과정에서 세이지의 시체가 사실은 정원사였을지도 모를 '얼굴 없는 사체' 트릭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 즈음 섬에서도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스프레이로 [제 1피해자][제 2피해자][제 3피해자][제 4피해자][최후의 피해자][탐정][살인범]이라고 적인 플라스틱 명판이 발견된 것이다. 악질적인 장난으로 치부하려던 그들의 바램과는 달리 올치가 교살된다. 동요된 맴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카가 독살된다. 범인은 버젓이 그들의 방에 플라스틱 명판을 부착하기까지 한다. 자신들 중에 범인이 있다는 생각은 서로를 못 믿게 만들었고 급기야 아가사가 히스테리를 일으킨다. 그리고 아가사는 다음 날 립스틱에 범인이 발라 놓은 청산가리로 인해 사망한다. 그리고 르루 역시 청옥부 건물 부근에서 후두부를 돌에 맞아 사망한 채 발견된다. 이제 남은 것은 엘러리, 포, 반이다. 그리고 셋이서 르루의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발자국에 관해 토론하던 중 포가 담배에 주사된 청산가리 때문에 사망한다.
엘러리와 반은 발자국을 검토한 결과 범인은 외부인이고 '얼굴 없는 사체' 설에 근거해 세이지를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고 생각한 컵이 사실은 십일각형이었다는 데에 착안하여 엘러리가 그것은 십각관의 어딘가로 이어지는 열쇠라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지하실로 들어간 그들은 부패가 거의 진행된 시체 한 구를 발견한다. 그는 사라진 정원사인 것이 분명해보였다.
그렇다면 '얼굴 없는 사체' 설은 부정된다. 세이지는 사망한 것이 맞는 것이다. 범인은 반인가, 엘러리인가.
십각관에서 희대의 대량 살인이 일어났다는 신문기사가 난다. 신문에서는 여섯 명의 사체가 불에 탄 십각관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한 명은 어디로 갔는가?
1987년에 발표된 <십각관의 살인>은 교토대학교 미스터리 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아야츠지 유키토가 학창 시절 신본격을 표방하며 발표한 수작이다. 일본 미스터리계는 본격물이 점차 사회파 작품들에 점유율을 내어주는 시기를 거친다. 사회파 작품들은 미스터리이면서도 일본 사회의 모순을 지적한다는 점에서는 그 의의가 있었지만 수수께끼 풀이의 이지적이고 명쾌한 미스터리를 지향하는 본격 마니아들에게는 불만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불만을 작가는 소설 속 인물 엘러리를 통해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나에게 있어 추리소설이란...지적인 놀이의 하나일 뿐이야...독자 대 명탐정, 독자 대 작가의 자극적인 논리 게임...'사회파'식의 리얼리즘은 이제 고리타분해...뇌물과 정계의 내막과 현대사회의 왜곡이 낳은 비극 따위는 이제 보기도 싫어...불가능 범죄의 실현, 깜짝 놀랄 트릭...이런 가공의 이야기가 좋아"
전공투가 패배로 막을 내린 후의 고도성장과 버블을 만끽하던 세대에게 사회파의 이야기는 고리타분한 과거 이야기로 비춰졌을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은 차치하고 어찌되었든 아야츠지 유키토는 신본격을 표방하며 일관된 내용의 작품을 발표해오고 있으며 나름의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십각관의 살인>의 범인은 반이다. 독자는 추리소설가의 이름을 딴 등장인물들 때문에 모리스를 곧 모리스 르블랑이라는 별칭을 가진 회원으로 오인하는데, 사실 그런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이 책은 미스터리에 대한 최소한의 소양을 갖추고 읽었을 때 트릭에 걸려들게 된다. 왜냐하면 모리스 르블랑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독자는 그런 착각 역시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죽은 치오리와 사랑을 키우던 반은 회원들이 강권한 술이 원인이 되어 그녀가 사망하자 회원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범행계획을 적은 쪽지를 초록색 병에 넣어 바다에 던진다. 그는 자신의 선악을 바다에 묻고자 한다.
완전범죄가 실현되고 해변으로 간 반의 눈에 그가 던진 초록색 병이 발견된다. 그는 초록색 병을 아이를 시켜 시마다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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