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광 아토다 다카시 총서 2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1935년 도쿄에서 출생하여 와세다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한 아토다 다카시는 1979년 <뻔뻔한 방문자>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나폴레옹광>으로 제81회 나오키상을 공동 수상한다.(같은 회 수상작은 다나카 고미마사의 <로교쿠사 아사히마루 이야기>와 <미미의 일>)

<나폴레옹광>에는 블랙유머, 미스터리, 환상소설 등 다양한 장르가 13편 수록되어 있는데, 그들 모두는 공포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나폴레옹광>은 반전 카드를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독자의 상상 속에 공포를 심어 넣는다. 아토다 다카시의 반전 카드는 능수능란하여 독자는 카드를 본 순간 자신이 지금까지 읽은 내용을 다시 되짚어 보게 되고, 최초에 읽었던 이야기들이 전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경험을 한다. 

<뻔뻔한 방문자>는 미스터리로써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지만 계급사회가 아님에도 계급이 대물림되는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글을 읽는 지배계급은 협박이라 느낄만 하고, 자신의 주변이 모두 정상인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뒤틀린 밤>은 쓸쓸한 인생 유전이다. 결혼을 앞둔 주인공에게 나타난 여성은 아마도 자신의 결정을 가로 막는 도덕성을 무화시키기 위한 자의식의 산물일 것이다. 결국 또 다른 삶을 찾아가지만 다른 여성을 만나 같은 생을 반복하거나, 목공소의 소년의 생에서 반복될 것이다. 도망칠 곳은 없다.

<그것의 이면>과 <창공>에서는 평온해 보이는 일상생활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공허와 거짓, 무기력을 보여주며 그것을 벗어난 '일탈' 을 그리고 있다. 


o 나폴레옹광 

 

화자는 나폴레옹과 관련된 두 명에 관해 회상한다. 한 명은 미나미사와 긴페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자수성가형 타입의 사업가인데 꽤 많은 특허로 돈에는 부족함이 없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가 못말리는 나폴레옹광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렸을 적에 나가세 호스케의 <나폴레옹전>을 읽고 강력한 계시를 받은 후 나폴레옹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수집하며 그 값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손에 넣곤 했다. 현재는 4층 짜리 개인박물관을 소장하여 그곳에서 생활하는 실정이다.

또 한명의 인물은 무라세라는 사람이다. 무라세는 시골에서 화자를 찾아온 사람인데, 화자가 언젠가 발표한 나폴레옹에 관한 수필 때문이었다. 무라세는 자신이 아무래도 나폴레옹이 환생한 것 같다고 말한다. 자세히 보니 그는 나폴레옹과 매우 흡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무라세는 가끔씩 떠오르는 장소와 인물들이 너무 낯설었고 우연한 기회에 그것들이 나폴레옹과 연관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환생에 관한 권위자인 F.M.윌리스의 이론과도 너무 잘 맞아 떨어졌다. 화자는 미나미사와 긴페이야 말로 무라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소개장을 써준다. 무라세는 미림보시(복어를 미림에 재워 말린 건어물)을 매달 보내주겠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미림보시는 오지 않았다.

얼마 후 나폴레옹 자료가 필요해서 미나미사와 긴페이를 방문한 화자는 무라세에 관해 묻는다. 미나미사와는 무라세와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화자는 문득 미나미사와의 박물관과 어울리지 않는 책이 꽂혀있던 광경이 떠오른다. 그 책의 제목은 <동물 박제 만드는 법> 이었다. 미림보시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고 있다.

 

o 뻔뻔한 방문자

 

아침 10시경, 우키다 마키코의 집에 노파가 방문한다. 마키코는 그녀를 곧 알아본다. 그녀는 하츠에라는 이름으로 1년쯤 전 자신이 유키에를 출산한 직후 고열로 시달려 아이를 돌보기 어려울 때 10일 정도 잡역부로 일한 여자다. 하츠에는 별다른 용무도 없으면서 마키코의 집을 가끔 방문했고 이제 그만 나가주었으면 하는 눈치에도 유키에가 예쁘다는 둥 하면서 나가지 않으려 했다.

하츠에는 그날도 마키코의 싫은 눈치는 아랑곳 없이 유키에를 안아보고 기저귀를 갈아보려 하는 등 도를 넘은 짓을 한다. 마키코는 땀냄새 풍기는 그녀가 아이를 안는 것이 싫다. 그녀는 아무래도 마키코의 집과 같은 부자집에 가정부로 들어오고 싶은 눈치다. 마키코는 자신이 우월한 계급이라는 의식을 갖고 냉정하게 거절하고 한 시간여만에 겨우 하츠에를 내보낸다.

그날 경찰이 마키코의 집을 방문하여 하츠에에 관해 이것 저것 묻는다. 마키코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질문에 답한다. 경찰에 따르면 하츠에는 살인 용의자로 쫓기고 있는 몸이라고 한다. 그녀가 죽인 것은 어린아이로 하츠에의 손녀다. 하츠에의 딸 역시 모종의 범죄를 일으켜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그녀는 경찰에게 자신의 어머니 하츠에가 작년 가을 딸을 살해한 것 같다고 진술했고 마당을 파보니 아이의 뼈가 발견된 것이다.

마키코는 경악하고 만다. 하츠에가 죽였다는 아이의 생일은 10월 7일, 유키에의 생일은 10월 8일이다. 마키코는 출산 직후 고열로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자고 있는 유키에의 얼굴 어딘가가 하츠에를 닮은 것 같다.

 

o 생 제르망 백작 소고

 

아버지의 유언은 '내후년 11월 26일 밤 8시, 제국호텔로 가서 생 제르망 백작을 만나고 에레키시에 관해 이야기 하라'는 것이었다. 아이사와는 생 제르망 백작이 실명인지, 별명인지 알 수 없었다. 인명사전에 의하면 생 제르망 백작은 1707년에서 1784년 유럽에서 활동하던 사람으로 각국 언어를 할 줄 알았고 여러 정치적 사안에 관여했다고 쓰여 있다. 특이한 점은 그가 언제나 젊은 얼굴을 한 채로 죽음을 비웃었다고 하는데 확인되지 않은 말이지만 그는 불로불사의 약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그 약의 이름이 에레키시인 것 같았다.

마침내 그날이 오고 아이사와는 제국호텔로 간다. 생 제르망 백작은 실제로 나타났고 아이사와는 놀라고 만다. 생 제르망 백작은 에레키시, 불로불사의 약은 사실 환약이나 물약의 형태가 아니라 팡세, 일종의 아이디어라고 말한다. 즉 매해 피는 꽃이 실제로는 전혀 다른 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눈에는 같은 꽃으로 보이는 것처럼 사람 역시 자손에게 선조의 기억과 아이디어가 전해진다면 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다는 괴변이었다.

'나'는 그런 간단한 이야기를 궂이 13년이나 기다렸다가 할 필요가 있었나 생각한다. 그리고 그날 아이사와의 아이가 태어난다.


o 사랑은 생각 밖의 것


딸 노부코가 망나니 같은 남자친구 때문에 회사 공금 이백만엔을 횡령한 후 갚지 못하게 되자 교헤이는 아이를 납치한다.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교헤이는 돈을 받아낼 기막힌 방법을 생각해 낸다. 자신이 키우는 개가 평소 밤이면 집을 나갔다가 새벽이면 돌아오는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아이의 부모에게 한밤중에 특정 장소에 데려다 둔 개에게 돈을 묶은 후에 풀어주라고 지시한 교헤이는 생각대로 개가 돈을 가지고 돌아오자 완전범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며칠 후에 형사가 들이닥쳐 교헤이를 체포한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는 교헤이에게 형사가 사정을 설명해준다. 그 개는 형사 집의 수컷 개와 연애중이었고 돈을 가지고 돌아오다가 형사 집에 들렀던 것이다. 형사는 개의 배에 가방이 묶여 있던 것을 보았지만 당시에는 의미를 모르다가 범행이 끝나고 알게 된 것이다. 교헤이는 '이놈도 저놈도 하필이면 멍청한 상대를 고르다니......' 하고 한탄한다.


o 그것의 이면


기타다 요스케는 최근 아내 야스코가 미묘하게 변했다고 생각한다. 야스코와 결혼한지 1년, 아내는 스물여덟살이다. 아내는 적은 월급이나마 알뜰하게 관리해왔고 부업을 하여 살림에 보태기도 했다. 집도 싼 값에 사서 불만이 없다. 그 집은 칠레에서 지진이 날 때에 뒤쪽이 붕괴되었다하여 싼 값에 나온 집이었는데 기타다는 칠레의 지진과 지반 붕괴가 아무런 관련도 없다고 생각한다.

동네 소식통인 약사가 어느 날 아내가 은행에서 외화를 환전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말에 더욱 의심이 간 요스케는 흥신소에 아내의 뒤를 캐보라고 의뢰한다. 하지만 아무런 특이점도 없었다. 어느 날 아내가 뒤뜰로 나가자 따라 나섰다가 절벽 아래의 작은 창고로 들어간 요스케는 순간 눈앞에 어둠이 펼쳐졌다가 정신이 들자 자신이 칠레에 와있는 것을 알게 된다.


o 딱정벌레의 푸가


불법택시 영업을 하다가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한 기타무라 가즈히코에게 누군가 찾아와 말을 건다. 그 소리는 자신의 차 폴크스바겐이 창밖에서 부르는 소리였다. 폴크스바겐은 자신이라도 나가서 돈을 벌어오겠다며 기타무라를 닮은 인형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한다. 과연 그 다음 날 부터 폴크스바겐은 돈을 조금이나마 벌어왔다. 하지만 병원이와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했고 아내는 차를 팔자는 말을 꺼낸다.

며칠 후 폴크스바겐이 찾아와 비밀리에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나와보라고 한다. 나가보니 차 앞유리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폴크스바겐이 하는 말은 놀라왔다. 불륜남녀를 태우고 가던 중 남자가 여자에게 아파트라도 사라며 돈을 건낸 후 먼저 내렸고 주인에게 돈이 필요할거라 생각한 폴크스바겐은 100km로 달리다가 급정거를 한 것이다. 생각대로 여자는 앞유리에 머리가 부딪혀 상처를 입고 기절했다. 차는 그 여자를 범한 후 바다로 빠드려 죽였다는 말과 함께 돈을 건내준다.

뜻밖의 돈이 생긴 기타무라는 치료가 끝난 후 제일 먼저 주차장의 폴크스바겐을 찾아간다. 하지만 차는 그런 일에 감사받을 생각은 없다는 듯, 혹은 그때 일은 묻어두겠다는 듯 아무 말이 없었다. 아이까지 낳고 단란하게 살던 기타무라는 그 여자가 죽은 오오이의 부둣가를 찾게 된다. 아내는 이상하게도 바닷가를 향해 묵념을 한다. 무엇을 하느냐는 기타무라의 말에 아내는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기타무라에게 몽유병 증세가 있었고 그때는 무척 걱정했노라는 말을 한다.


o 골프의 기원


168X년, 제임스2세가 아직은 요크공으로 불리웠던 때, 에든버러 성에 두 명의 잉글랜드 귀족이 방문한다. 한 사람은 노발공(怒髮公)으로 알려진 다혈질의 귀족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끝물의 동과공(冬瓜公)으로 부르고 싶은 밋밋한 귀족이었다.

요크공과 노발공이 골프의 기원에 대해 스코틀랜드니, 잉글랜드니 해가며 격하게 싸우자 동과공이 시합을 겨루어 이기는 쪽의 기원으로 하자는 안을 내놓는다. 이에 노발공과 끝물의 동과공이 한편이 되고  요크공이 다른 한 명을 데려와 시합을 하기로 한다. 요크공은 수소문 끝에 존 파터슨이라는 가난한 구두공이 골프에 매우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섭외한다.

시합은 요크공과 존 파터슨 팀의 승리로 돌아가고 노발공은 분을 참지 못하다가 이 모든 것이 존 파터슨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염탐하게 한다. 염탐꾼은 그가 집 안에 거울을 두고 연습을 하는데 거울 자세를 교정하는 코치를 해준다고 보고하였다. 노발공은 암살자를 사주해 존 파터슨을 살해하고 거울을 훔쳐온다. 

노발공이 거울을 보며 연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거울이 등을 좀 더 펴라느니, 팔을 좀더 굽히라느니 코치를 시작하였다. 노발공은 그 조언을 소중히 여겨 연습을 하였고 실력이 나아지는 듯도 했으나 코치하는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노발공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노발공의 인내가 한계에 달한 순간 거울을 깨버린다. 하지만 깨어진 조각 수 만큼 떠들어대었다. 노발공은 막자사발을 가져오게 하여 거울을 가루내어 창밖으로 날려버린다.

그 후로 그 가루는 전 세계로 퍼져 지금도 골퍼를 보면 충고의 말을 떠들고 있다.


o 뒤틀린 밤


올해 서른 살이 된 야마이 도시로는 무라키 후사코와의 결혼을 사흘 앞두고 있다. 도시로는 무라키 후사코에 대해 생각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없었으나 '아차' 하는 정도의 심리가 있다. 그것은 모든 남자들이 결혼을 앞두고 먹게 되는 마음으로 여자가 마음에 들었든, 들지 않았든 드는 공통의 심리다.

도시로가 그런 심정으로 침대에 누우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바닷가 한적한 마을의 털보 목수가 도시로에게 목공일을 배워보겠느냐고 묻고, 도시로는 아버지 직장 때문에 잠시 도쿄로 왔을 뿐이라고 답하는 장면이다. 

그후 도시로는 열심히 공부해서 알려진 대학을 졸업한 후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었다. 도시로는 자신이 결혼을 마음 먹지 않았다면 목공일을 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늦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전화벨이 울리고 모르는 여자가 '곧 집으로 가겠다'는 말을 하고 끊는다. 

잘못 걸린 전화라 생각하고 설핏 잠이 들었다 깨자 옆에 모르는 여자가 누워 있다. 그녀는 누구냐는 질문에 애매하게 답하며 결혼하기 싫지 않냐고 묻는다. 도시로는 다음 날도 여자의 방문을 받게 되고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그녀에게 더 이상 나타나지 말라고 말한다. 다음 날 결혼식을 올리고 후사코와 신혼여행에 가서 어설픈 관계를 맺고 잠이 든 도시로는 아침에 깨어나 후사코가 차가운 시체가 된 것을 발견한다. 경찰은 도시로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조사를 해나간다. 도시로가 후사코와 관계를 맺었다는 말은 경찰에 의해 간단히 부정되었다. 관계를 맺은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때 또다시 신원불상의 여자가 나타나 도시로를 경찰서에서 탈출시켜 준다. 

도시로는 바닷가 마을에 숨어든다. 농사일을 돕던 그가 목공일을 배우고 그것을 생계로 삼는다. 어느 날 소년이 목공일 하는 도시로의 모습을 쳐다보다가 도쿄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도시로는 소년이 평범한 샐러리맨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왠지 쓸쓸함을 느낀다. 목수의 딸이 도시로에게 물을 내민다. 도시로는 여자가 어디선가 본 듯 하다고 느낀다.


o 투명한 물고기


'나'는 찻집 엘 마르에 갔다가 어항 속에서 특이하게 생긴 물고기를 본다. 그 물고기의 몸은 투명해서 뼈만이 헤엄치고 있는 듯 했다. 그때 한 여자가 다가와 물고기에 대해 설명해 준다. 물고기 중 몸이 완전히 투명한 것이 트랜스페어런트, 반투명한 것은 트랜스루센트, 은색으로 빛나서 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실버다이브라고. 그러면서 트랜스페어런트 중 일부는 친해진 물고기의 몸까지 투명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나'는 그 여자와 호텔에 가서 관계를 맺는다. 여자가 유혹한 듯 하다. 여자가 샤워할 때 우연히 그 여자의 몸이 투명한 몸을 보게 된다. 장기까지 들여다보인다. 

이제 찻집 엘 마르에 그 투명한 물고기는 없다. '나'는 그녀를 만나야만 하리라고 생각한다. '나'의 몸도 이제 투명하다.


o 창공


다다노 헤이사쿠는 소심한 샐러리맨으로 이렇다할 야망도, 그렇다고 이렇다할 불만도 없이 하루 하루 살아간다. 어느 날 그 모든 것이 평소와 달리 참기 힘들었고 회사로 가는 전철이 아닌 다른 전철을 탄다.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 채 흔들리다 도착한 곳은 교외였다. 하늘은 기분 나쁠 정도로 푸르렀다. 그때 까마귀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헤이사쿠는 자신도 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헤이사쿠는 언덕의 끝까지 나아가 위를 향해 몇 번이나 손을 저어 날아오른다.

그날 오후 늦게 N산의 기슭에서 헤이사쿠가 주검으로 발견된다. 경찰은 그가 겨우 2~3 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두개골이 깨어진 것을 보고 알 수가 없었다.


o 이


야스히코의 아내 노리코는 이가 튼튼하고 가지런하다. 그녀는 이가 튼튼하면 머리도 좋다는 말을 하는데 꼭 틀린 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면 야스히코는 이가 부실하다. 야스히코는 태어날 아이가 이가 튼튼했으면 한다는 말을 하며 식사를 마치고 하얀 가루약을 먹는다. 그녀는 칼슘 섭취가 중요하고 자기네 집안에서는 두개골을 최고로 친다며 야스히코의 어머니 유해가 담긴 단지를 바라본다. 야스히코는 어머니가 의사의 예상보다 일찍 돌아가셨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o 광폭한 사자


스물한 살에 결혼하여 딸을 하나 낳은 쇼코는 남편이 간암으로 급사한 후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들어간다. 쇼코는 남편이 죽은 후로 자기 계발에 힘 쓴 결과 일러스트레이션과 아트 플라워, 외국어에 취미를 붙였고 특히 일러스트레이션은 전문가 수준으로 생계 수단이기도 했다. 그녀는 하루가 27~8 시간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정도로 자신의 삶에 몰입했고 계획을 세워 살아갔으며 매일 충만감을 느꼈다. 

그런 그녀에게 유부남 스도 히데키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쇼코는 그에게 빠져든다. 스도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녀는 자신의 삶이 조금씩 흐트러짐을 느낀다. 

어느 날 스도가 둘 만의 아파트를 얻는다. 스도는 쇼코에게 자고 가라고 권하고 쇼코는 꿈에서 본 일이 현실로 일어날 것 같다며 꿈 이야기를 해준다. 꿈 속에서 머리 긴 여자가 자신을 쳐다보았다는 말에 스도는 자신의 아내가 나타날 일은 없다며 걱정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커다란 트렁크에라도 숨으면 된다며 몸소 들어가보인다. 트렁크는 금속이 부딪는 소리가 나면서 강고하게 닺힌다.

얼마 후 쇼코는 사랑 따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며 사자는 가축으로 키울 수 없다고 생각난다. 어쩐지 트렁크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o 밧줄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


연재 마감을 지키지 못하고 종적을 감춘 소설가가 편집자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낸다. 소설가는 자신이 연재를 수락한 후 단 한 줄도 완성시키지 못했고, 그로 인해 열패감에 빠졌으며, 결국 이렇게 사과 편지를 보내고 있다는 내용을 써내려간다. 그러면서 자신이 잠들기 전까지 편지를 완성할 수 있을지 자문하며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언젠가 여행에 갔다가 옆방에서 어떤 여자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호기심이 동했고, 야릇한 상상을 하며 건너갔다가 기묘한 경험을 한다. 그녀는 유부남을 사랑했다가 버림받은 후 자살을 결심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해 실패했는데 그 뒤로 밧줄이 자신을 따라다닌다는 이야기를 한다. 밧줄은 자살을 결심하지 못한 사람을 도와 죽도록 만들어 주는데 자살의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을 끝까지 쫓아가 잠이 들면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소설가는 여자의 요청에 따라 불침번을 서며 여자가 잠드는 동안 지켜보기로 했는데 그도 깜빡 잠이 들고 말았고 여자는 밧줄에 목이 졸려 죽고 만다. 소설가는 경찰의 추궁이 두려워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그는 편지에 자신이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자 밧줄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 역시 죽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이제 잠을 이기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잠이 드는 즉시 밧줄은 목을 죄어올 것이다 하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런데 편지 내용을 다시 읽어보니 편지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완결된 형식을 갖추고 있었고 연재할 내용으로도 적당해 보였다. 그 증거로 밧줄이 사라진 것이다.

소설가는 그러나 한 가지 의혹에 잠긴다. 자신은 편지의 마지막 부분, 즉 편지의 내용이 원고로 적당하다는 생각을 적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죽은 여자는 밧줄이 죽인 것이 맞는가? 자신은 정말 잠이 들었는가? 하는 의혹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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