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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4월
평점 :
사십 년 동안 <라 파스 신문>의 전신 편집자로 일해왔고, 일요 칼럼을 쓰고 있는 화자 '나'는 아흔 살이 되는 날, 자신에게 처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사랑의 밤을 선사하고 싶어한다. 포주인 로사 카바르카스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바램을 말하자, 로사 카바르카스는 열네 살의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온다.
여자아이는 단추공장에서 일한 피로에 쥐오줌풀을 섞어 만든 음료의 취기가 겹쳐 정신 없이 잠을 자고, '나'는 그녀의 잠든 모습만을 바라보다가 새벽에 방을 떠난다. '나'는 그녀를 '델가디나'로 부르기로 한다.
한때 '나'는 한 여인과 결혼 약속까지 잡았지만 결혼식 전날 창녀들과 밤을 세워 놀고 당일엔 결혼이라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혼식장에 나가지 않는다. 그 후로도 514명의 여인과 관계를 가져온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 대해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델가디나'를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보수적인 논조를 유지하던 나의 칼럼은 그녀를 향한 연애 편지 형식으로 바뀌고, 그녀와 만나는 매음굴의 방을 책과 그림, 꽃으로 장식한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듯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카바르카스의 집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나'는 시체 유기에 협조한다. 하지만 매음굴은 닫히고 카바르카스도, '델가디나'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카바르카스가 '델가디나'를 제공하고 무죄 방면을 도모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되돌아온 '델가디나'는 예전의 어린 여자아이가 아니라 성숙한 육체를 가진 여자가 되어 돌아왔고, '나'는 창녀라고 외치며 방안의 집기를 모조리 부순다.
두달 간 그곳을 찾지 않던 '나'는 결국 '델가디나'라는 사랑을 이대로 잃어버릴 수 없다고 느끼며 다시금 그곳을 찾아간다. 로사 카바르카스와 속임수 가득한 대화를 나눈 후, 자신이 '건강한 심장으로 백 살을 산 다음, 어느 날이건 행복한 고통 속에서 훌륭한 사랑을 느끼며 죽도록선고 받았다'고 느낀다.
1950년대 콜롬비아 바랑키야를 배경으로 쓰여진 이 책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자전적인 경험이 다분히 담겨 있다고 하는데, 마르케스는 '동굴 그룹'으로 알려진 엔리케 스코펠, 환초 히네테, 알레한드로 오브레곤, 알바로 세페다 사무디오, 헤르만 바르가스, 알폰소 푸옌마요르, 라몬 비녜스 등과 주로 창녀촌에서 모이곤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창녀들을 통해서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고, 자신들의 의견을 교환하였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1982년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파리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잠자고 있던 아름다운 여인을 일곱 시간 동안 지켜보며 구상하게 되었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의 집>에서 그 모티프를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김훈의 <화장> 역시 <잠자는 미녀의 집>과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은 행복한 사랑이 아니라 버림받은 사랑임을 알게 된" 화자, "섹스란 사랑을 얻지 못할 때 가지는 위안에 불과한 것" 이라며 '델가디나'를 지켜보는 것 만으로 새로운 삶을 상상하는 모습에서 사랑의 요체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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