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번하자. 싫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명호 씨의 디스 담배를 훔쳐 피우면서 명호씨도 숙경씨의 담배를 피우니 괜찮다며 자위하는 주인공 준호는 수능 시험을 치른 고3이다. 명호씨는 외삼촌이고 숙경씨는 엄마, 그리고 아버지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명호씨는 서울대 법대를 나왔지만 10년째 일정한 직업 없이 인문학적 소양을 쌓거나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며 소일하고 있고, 숙경씨는 동네 미장원 아줌마에서 시내 번화가로 가게를 옮기면서부터 헤어 디자이너가 되었다.

친구 영석과 경식이 미아리에 가서 동정을 떼고 와 어른 행세를 하자 준호 역시 여자친구 서영과 한번 하는 일에 골몰한다. 시도 때도 없이 한번 하자는 준호의 요구에 서영이 번번히 거절하다가 마침내 응낙한 날은 정작 사전 지식과 경험 부족으로 실패하고 만다.

수능 성적이 발표되자 집안에 서울대 출신만 있는 영석은 재수를 하러 가고 경식은 중장비 학원에 등록한다. 서영은 특차로 일류대에 붙었고 준호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숙경씨는 건강하게 자라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하고, 명호씨는 준호에게 야설로 썼던 글을 소설로 고쳐 써보라고 권한다. 준호는 야설을 고쳐 써보고, 그 일이 뜻밖에도 재미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 공부해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서영과 원서를 내러가기 전, 진지한 대화를 하려던 준호의 입에서는 엉뚱한 대사가 튀어나온다. 한번 하자.

 

아침 나절에 읽기 시작했는데 속도감 있게 읽혔다.

1989년에 제작된 에릭 로샹 감독의 영화 <동정(同情) 없는 세상>을,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 의례로서의 '동정(童貞) 떼기'로 재치있게 치환하여 그린 성장기 소설이다. 소설은 한껏 밝은 이미지로 가득하다. 서울대학교 법대를 나왔지만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용히 지켜보며 할 도리를 구하는 현자 스타일의 명호씨, 아들이 잘 자라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대학생 아들이 아니어도 좋다는 숙경씨, 그리고 편모 슬하에서 컸지만 자신이 어떻게 자라야 할지 숙고하고 올바른 결정을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 준호 등. 

얼마 전 김려령 원작의 <완득이>를 영화로 보았는데, 굳이 한 쪽에 점수를 주라면 <완득이> 쪽에 점수를 주고 싶다. <동정 없는 세상>에서의 밝은 에너지는 작가의 가치관과 바람이 빚어낸 밝은 가정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어떤 질곡이나 모순은 없다. 작품이 가볍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닐까. 반면, <완득이>에서는 부조리하고 아픈 현실을 딛고 일어서려는 밝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5838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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