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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 제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김곰치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서울에서 잡지사 기자로 근무하는 헌직은 어머니가 성한 한쪽 눈의 시력마저 잃을 지경에 이르러 귀향길에 오르고, 기차간에서 기형도의 시 <鳥致院>이 꿈속에 틈입한다.
불면증이 있는 누나 혜희의 강권으로 입원한 제림병원에서는 '시신경이 말라 간다는', 병명이 아닌 증상만 되풀이 듣다 차도를 보지 못했고, 결국 약중독에 빠진 어머니를 퇴원시킨다. 퇴원한 어머니는 정신이 나간듯한 행동을 하여 아버지와 가족들을 공포에 질리게 한다.
부산의 종합병원과 서울의 병원을 돌며 진찰한 결과 어머니의 뇌 속에 종양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의사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책임을 덜어내려는 듯 부정적 소견만을 내놓는다.
아버지는 병원을 믿지 못하여 어머니에게 짚과 해삼을 끓인 물을 먹이는가 하면, 토마토나 마늘을 장복해보자고 권하기도 한다. 헌직은 그런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과 자신의 의존적인 대응을 반성하며 회사를 사직한 후 적극적으로 병원을 수소문한다. 그리고 부산의 종합병원에 어머니를 입원시킨 후 감마시술을 받도록 한다.
감마시술의 경과를 알아보러 가서 종양이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았다는 유예의 말을 들은 헌직과 어머니는 비가 오는 날 분식집에서 칼국수를 먹는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어머니와 보내는 이 시간, 언젠가는 추억이 될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추억도 아니고 기억도 아닌 지금 이 순간, 슬픔의 예감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소중하기만한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먹는 순간을 소리내어 외쳐본다.
새벽 한시다. 사무실이다. 월요일부터 비상당직 근무 체계로 전환 되었고, 졸지에 당직자가 되었다. 당직실에는 침대가 하나 뿐이라 잘 곳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소설은 2011년 개정판이다. 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소설을 12년만에 작가가 대폭 개작하여 천팔백매 분량을 천이백매로 줄였다고 한다.
기형도의 시 <조치원>이 꿈 속으로 틈입하면서 시작된 소설은, 누나의 책꽂이에서 같은 시를 읽으면서 끝이 난다. 기형도의 시집을 생각할 때 나는 어떤 전형을 떠올리게 된다. 가난한 집, 여자형제 중 한 명의 아들. 그 아들은 공부를 잘해 서울 유수의 대학에 합격하고, 그리고 기자가 된다. <입 속의 검은 잎>을 부끄러워 하지만 결국 데모대의 구호를 내면화 하지 못하고, 붕 뜬 존재인 아들은 자의식을 문학으로 표출한다. 부끄러움과 분노의 절충 상태.
기형도는 영화를 보다가 급사했다. 나중에서야 그 영화가 <뽕2>라는 것을 알고 웃어야 할지 어째야 할지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 헌직, 아니 작가 역시 그런 전형을 떠올리게 한다. 동맹휴업 결의 대회에서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퀸카의 엉덩이를 쫓는 것을 보고난 후 자기 검열을 통해 투쟁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떨쳐버릴 수 없는 지식인의 그 자의식과 절망감. 울며 불며 엄마를 살릴 거라며, 집나간 중이 삼십년만에 귀향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주인공 헌직. 그런 자의식과 자기 검열이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현재의 소중함을 재발견하는 것으로 눙쳐지긴 하지만, 어쩐지 뒷맛은 씁쓸하다.
페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을 떠올린다.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써내려가려 한 그 소설이 생각난 이유는, 최근 내가 국내 작가의 소설 읽기를 저어한 이유와도 연관이 있다. 근자엔 의식적으로 국내 작가의 소설을 읽으려고 애쓰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잠들기 전 가방에 국내 작가의 소설을 집어넣지만, 아침에 출근할 땐 충동적으로 외국 작가나 장르 소설을 들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모국어로 쓰여진 소설에서 나의 삶을 형성해 온 이 땅의 정서를 읽고, 공감하고, 감정의 동요를 겪는 과정을 싶고 싶지 않았었다. 그리고 12월은 마감할 게 많은 달이다.
여러 부정적인 의견을 써놓긴 했지만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은 잘 쓰여졌고, 작가가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소설시를 써야 하리라는 작가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어머니라는 소재를 취하는 모험 아닌 모험을 하면서도 갖가지 함정은 잘 피해나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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