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펭귄클래식 38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834년 자마이카에서 노예 해방이 이루어지자 기존 노예소유주들은 노동력을 상실하게 되고, 그 결과 농장들은 파산에 처한다. 새로운 영국인들이 자마이카로 몰려와 농장들을 헐값에 사들이고, 기존 백인들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다. 그들은 부유한 영국인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은 흑인도 아니었다. 그들의 자녀는 크리올이라 불리며 영국 본토 국민보다 열등하게 여겨졌고, 비록 피부색은 희더라도 혼혈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아야 했다.

주인공 앙투아네트 역시 아버지 코즈웨이가 사망하고 노예 해방이 이루어지자 '하얀 바퀴벌레'로 불리며 원주민의 분노와 새로 이주한 백인들의 멸시 어린 시선을 견뎌야 했다. 어느날 흑인 소녀 티아가 옷을 훔쳐가 남루한 옷을 입고 들어오자 앙투아네트의 어머니 아네트는 새로 이주해온 부유한 백인 메이슨과 결혼한다. 그러나 메이슨은 원주민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여 경솔한 언행을 일삼았고, 아네트는 끊임 없이 불안에 시달린다. 어느날 원주민들의 방화로 집이 불타고 앙투아네트의 백치 동생이 사망하자 아네트는 이성을 잃고 만다. 메이슨은 그런 아네트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그녀를 감금하고 미친 여자로 치부하고 만다. 아네트는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흑인들에게 겁탈 당하다가 결국 사망한다.

양부 메이슨이 죽으면서 재산의 반을 앙투아네트에게 남겨주자 옛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로체스터라는 남자와 결혼한다. 로체스터는 장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존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부유한 여성과 결혼하고자 했고, 아버지와 형의 권유가 있자 앙투아네트와 결혼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혼혈일지도 모르는 크리올에게 돈에 팔려 결혼했다 점을 컴플렉스로 갖게 된다. 이 때 그에게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드는데 자신이 앙투아네트의 배다른 오빠라고 주장한 그는 앙투아네트의 가계가 정신병력이 있을 뿐 아니라 앙투아네트 역시 혼혈일지 모르며 성적으로도 문란하다는 암시를 한다. 로체스터는 자신의 컴플렉스에 투서 사건이 겹치자 앙투아네트의 재산을 모조리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로부터 모든 관심을 거두어 들인다.

로체스터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앙투아네트는 크리스토핀에게 주술의 일종인 오베아를 실행시켜 줄 것을 부탁하지만 효력은 하룻 밤 동안의 폭력적인 성행위로 끝나고 로체스터는 앙투아네트를 옆방에 둔 채 아멜리라는 하녀와 불륜을 저지른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불러 달라는 앙투아네트의 요청을 묵살한 채 버사라고 부른다.

크리스토핀의 간절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로체스터는 앙투아네트를 영국으로 데리고 가 그곳에 감금한다. 앙투아네트는 광녀로 취급되고, 자신을 찾아온 양오빠에게 칼을 들고 달려들기까지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앙투아네트는 자신이 손필드 저택에 불을 지르는 꿈을 꾸다가 깨어난다.

 

소설은 <제인 에어>를 알고 있어야만 상당 부분을 이해할 수가 있다. 작가 진 리스는 <제인 에어>를 읽고 단지 영국의 시각에서만 쓰여 있음에 분개하여 <제인 에어>의 전편을 쓰기로 한다. 거기서 선택된 인물이 바로 버사 메이슨이다. 그녀는 <제인 에어>에서 제인과 로체스터가 결혼하는 데 걸림돌이며 손필드 저택에 방화를 저지르는 미친 크리올 여성으로 그려진다. 브론테는 방화의 이유를 버사 메이슨이 크리올이자 광녀이기 때문이라고 단순히 설명한다.

제인은 영국 식민지 드메라라에서 노예 착취를 통해 벌어들인 삼촌의 돈으로 경제적 자립을 획득하고 로체스터 역시 크리올인 버사 메이슨과 결혼함으로서 자마이카 노예의 피와 땀을 돈으로 환산한다. 진 리스가 도미니카를 방문했을 때 무시할 수 없는 수의 크리올 상속녀들이 영국 남자와 결혼한 후 '광녀'로 낙인 찍혔음을 알게 되는데 그 점에 착안하여 광녀 버사 메이슨의 이야기를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 담아내고 있다.

역자 윤정길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The Second Sex)>를 인용하면서 로체스터의 행위를 타자를 통한 주체의 확립이라 설명하고, 그녀를 광녀로 치부하여 감금시키고 침묵시킴으로서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고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확립하려 했다고 설명하는데 무척 공감이 간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471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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