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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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바라문의 아들 싯다르타는 아버지와 다른 바라문들로부터 훌륭한 가르침을 받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자기의 내면에 삼라만상과 하나이자 불멸의 존재인 아트만이 있음을 느끼고, 자아로부터 벗어나 초탈의 경지로 이르고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 쓰고 사문(沙門) 생활을 시작한다. 

사문 생활을 하면서 싯다르타는 명상을 하고 고통과 굶주림과 갈증과 피로와 권태를 극복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그러한 길들은 고통으로부터 잠시 동안 마비 상태를 가져올 뿐 언제나 자아로 되돌아오는 길이기에 열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그때 세상 온갖 번뇌를 극복하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정지시킨 부처 고타마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친구 고빈다와 함께 고타마를 만나 설법을 듣게 되는데 고빈다는 부처의 가르침에 귀의한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고타마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식은 말로서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는 말로서 전해질 수가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고빈다와 헤어져 세속의 삶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카말라를 만난다. 카말라를 스승으로 삼아 사랑의 기술을 배우고 상인 카마스와미와 일하면서 돈과 권력을 얻는다. 명상하고 단식하고 인내하는 것 외에는 모르던 싯다르타는 점차 세속의 삶에 젖어 자신이 깨달았던 것들을 잊기 시작한다. 환락의 밤을 보낸 다음 날 싯다르타는 정좌하고 참선을 한 끝에 자신이 유희들을 끝낼 때가 왔음을 깨닫고, 카말라와 재산을 버려두고 강가로 가서 뱃사공 바주데바의 조수가 된다.

바주데바와 더불어 소박한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고타마의 입적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나 온 카말라와 어린 싯다르타가 강가로 찾아온다. 카말라가 뱀에 물려 죽어 아들을 돌보게 된 싯다르타는 세속의 인간들이 경험하는 맹목적인 사랑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의 사랑이 어린 싯다르타에게는 속박과 강압으로 느껴질 뿐이었고 결국 아들은 시내로 도망치고 만다. 그리고 그 아들을 찾으러 간 싯다르타는 명상을 통해 세계의 단일성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다.

바주데바가 숲으로 떠나가고 홀로 강가에서 뱃사공 노릇을 하던 어느 날 옛 친구 고빈다가 찾아 온다. 그는 여전히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자신의 목표에 집착한 나머지 해탈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고빈다는 싯다르타에게 깨달음을 얻을 말을 해 줄 것을 간청하지만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말로서 전할 수 없다며 자신의 이마에 입맞춤 하라고 말한다. 싯다르타의 이마에 입맞춤 한 고빈다는 수만가지의 얼굴을 한 싯타르타를 보게 되고 그 수많은 얼굴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미소 짓고 있는 싯다르타의 얼굴에서 세존 고타마의 모습을 발견하고 고빈다는 그에게 허리 굽혀 절을 올린다.

 

종교를 생각하면 언제나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중간 고리, 그것이 성당이든 교회이든 절이든 간에,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벽돌과 각목으로 무장을 하고 패싸움을 벌이는 조계사 승려들과, 어린 아이들에게 헌금을 내야지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공포를 조장하는 교회 목사의 모습이 떠오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다 얼마 전에 읽은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서 '박해 받는 우리들이 기도를 할 때 어디 계셨느냐'

는 물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와 함께 아파하고 있었다'는 말의 울림이 오랫 동안 기억에 남았다. 함께 아파하는 신이라면, 기도에 아무런 응답이 없을지라도 기도를 올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교리를 받으러 다닌지 4주째 이다. 아직은 교리가 끝나면 어김 없이 미사는 빼 먹고 도망 나오고 있으며, 수녀님의 말씀에도 내 깜냥의 반박을 속으로 하고 있다. '불합리하기에 나는 믿는다'는 말을 속으로 되뇌어 본다.

 

<싯다르타>는 부처의 이야기를 원용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온전히 불교적인 시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소설 속 싯다르타는 인간사 번뇌를 떨치고 해탈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단일성을 깨닫고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경지로 나아간다. 싯다르타가 사물들의 변화과정이 아닌 그 자체로서 깨달음을 얻어야 하며 그때 비로소 사랑을 알 수 있다고 말하자, 고빈다는 고타마가 그것들을 미망(迷妄)으로 인식하였으며 얽매이는 것을 금했다고 말한다. 이에 싯다르타는 자신과 고타마의 가르침이 다르지 않으며, 만약 고타마가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평생 동안 중생을 돕고 가르치는 데 바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데미안>에서 선악의 양면성을 포용한 아프락사스 신 개념이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 되고 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44887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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