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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꾼 ㅣ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재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평점 :
룰레텐부르크로 여행을 온 자고랸스끼 장군 일행은 호화로운 객실을 빌려 생활하고 있으나 실상은 빚에 쫓기고 있다. 장군은 블랑슈라는 프랑스 여인에게 반해 결혼을 하고자 하나, 그녀는 장군이 곧 받을지도 모를 유산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인인 드 그리외 역시 장군에게 빚을 받기 위해 머물고 있다.
주인공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는 장군 일가의 과외선생으로 장군의 양녀인 뽈리나에게 빠져있다. 하지만 그녀는 드 그리외에게 반한 듯 보이기도 하고 영국인 미스터 에이슬리에게도 호감을 보인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할 것을 거듭 다짐하며 뽈리나의 진심을 알고 싶어 하나 그녀의 태도는 냉담하기만 하다. 하인이 된 것과 같은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알렉세이는 그런 상황 자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날 죽음을 맹세하는 알렉세이에게 뽈리나는 길거리에서 남작을 모욕하라는 요구를 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 결과 해고 당한다.
장군 일행은 모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으니 자신들에게 유산을 물려줄 할머니의 죽음이다. 그들은 할머니의 죽음을 문의하는 전보를 줄기차게 보내는데, 부음(訃音) 대신 할머니가 직접 룰레텐부르크로 여행을 온다. 실망하는 장군 일행에게 독설을 퍼붓던 할머니는 룰렛 도박에 빠져들어 거액을 잃은 후 장군에게는 한 푼도 남겨주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모스끄바로 돌아가고 만다.
할머니의 확실한 의사표시로 블랑슈는 파산한 장군을 떠날 결심을 하고 드 그리외 역시 뽈리나를 버린다. 드 그리외에게 5만 프랑의 빚을 지게 된 뽈리나는 알렉세이의 방을 찾아오고, 알렉세이는 그날 밤 룰렛 도박에서 엄청난 돈을 딴 후 뽈리나에게 5만 프랑을 건낸다. 절망적으로 몸을 맡겼던 뽈리나는 다음 날 표변하여 알렉세이에게 돈을 집어던진 후 광증이 일어 미스터 에이슬리에게로 가고 만다.
전날 도박판에 자신의 운을 맡겼던 알렉세이는 이번엔 엉뚱하게 블랑슈를 따라 프랑스로 가 두달 만에 모든 돈을 써버리고, 프랑스로 뒤따라온 장군과 블랑슈가 결혼하자 또 다시 도박판을 전전한다. 빚을 지고 감옥에 갖히는가 하면 남의 하인 비슷한 일을 하는 등 재능을 낭비하던 알렉세이는 우연히 미스터 에이슬리를 다시 만난다. 그리고 뽈리나가 사랑했던 것은 자신이었다는 것을 전해듣는다.
출판사에게 자신의 저작권을 9년간 저당잡히고 27일만에 썼다는 작품으로 작가 자신의 체험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첫번째 아내 마리야와 별거 중 여대생 아뽈리나리야 수슬로바를 만나 여행을 떠나는데, 먼저 파리로 출발한 수슬로바는 그곳에서 알게된 스페인 의대생에게 몸을 맡기고 얼마 후 버림을 받는다. 도스또예프스끼는 그녀에게 다시 사랑을 구하지만 그녀의 태도는 이중적이었으며 작가는 심한 애증을 느낀다. 또 여행 중 도박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했으며 전 부인, 형, 뚜르게네프 등 여기저기 돈을 빌려 도박에 탕진한다.
도스또예프스끼는 각 나라의 인물을 통해 러시아가 처한 상황을 묘사하는데 질서가 잡힌 독일과 고상한 형식을 갖춘 프랑스에 비해 러시아는 꼴사납고 품위가 없으며 격렬하고 성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문에 러시아인들은 부의 축적을 단순간에 이루기 위해 도박에 빠져들고, 그런 러시아인들의 성격에 들어맞는 것이 룰렛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러시아인들의 그러한 행태의 이면을 알렉세이의 다음과 같은 대사로 파악한다. "러시아인들은 그 재능이 너무 많고 다양해서 자신에게 알맞은 형식을 발견하지 못하는 거에요. 여기서 문제는 바로 형식에 있습니다. 우리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풍부한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천재적인 능력이 필요합니다"
도박과 애증, 그 두가지가 동시에 주인공 알렉세이에게 작용하여 그의 행동 방향은 예측하기가 어렵고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도스또예프스끼는 그런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도스또예프스끼에 관해 토마스 만은 "도스또예프스끼는 육체와 영혼의 고귀함보다는 불행과 악덕, 욕정과 범죄에 기독교적인 공감을 보인 작가였다"고 하였다. 인간의 마음 속에 신과 악마가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는 도스또예프스끼 소설의 주인공들을 움직이는 것은 다름 아닌 욕망이고, 이 욕망에 관해 꼰스딴찐 모출스키는 "욕망은 결코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도, 한 인간에 대한 존경도 아니다. 그것은 불합리하고 악마적이고 파괴적이다. 또한 그것은 치명적인 자기 살인 행위이다"라고 말한다.
사랑이 그 형태를 지배에의 욕망으로 변화시키는 시작은 부정, 혹은 부정에의 의혹이다. 그 순간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하지 못할 때에 사랑은 지배에의 욕구로 변화한다. 타인에 대한 욕망이 지배에의 욕구로 충족되기 위해서 나 자신의 죽음이나 상대편의 죽음, 그것이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하건 기억의 왜곡을 통한 정신적인 압살을 의미하건, 죽음 외에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는가 생각해 본다.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당에 갔다. 신부님의 말씀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용서라는 것은 있었던 일을 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았던 마음의 상처와 아픔까지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뽈리나의 진심을 알지 못하고 애증에 빠져 죽음을 수시로 입에 담게된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는 도박을 통해 그런 애증 상태를 해소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도박은 도박 자체로 알렉세이를 놓아주지 않았고, 돈을 따고 잃는 것보다 도박장으로 향하면서 느끼는 흥분 자체에 탐닉하게 된 알렉세이 이바노비치에게 들려온 소식은 뽈리나가 사랑한 것은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지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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