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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을 뛰어넘는 사람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97
페터 슈나이더 지음, 김연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작가인 주인공 '나'는 서독에 살고, 때때로 동독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자친구 레나는 동독 출신으로 '나'와 처음엔 '지각한 내용의 판단을 두고서만 다투었으나, 나중에는 지각작용 자체를 두고 싸우'는 상태이다. 서독으로 이주한 동독출신 작가 로베르트, 동베를린에 거주하는 작가 포머러와 교류하는데 그들과 '나' 사이엔 보이는 장벽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벽도 존재하고 있다.
'나'와 친구들의 대화 속에는 장벽을 뛰어넘는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집주인 샬터는 아프리카에서 오기로 한 연인(하지만 오지 않을 것임에 분명한)을 기다리며 동베를린의 공짜 전화를 쓰다가 마침내 동베를린으로 넘어가버린 사람이고, 카베라는 사람은 삶이 권태로워서 열다섯번이나 장벽을 넘은 인물이다. 서독에서 개봉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세명의 젊은이가 열두 번이나 서쪽으로 장벽을 넘는가 하면, 동독에 복수를 하려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양쪽 비밀경찰의 끄나풀이 되고 결국 자기가 어느쪽 간첩인지 헤깔리게 된 발터 볼레의 이야기도 나온다.
이 와중에 열두번이나 서독으로 영화를 보러 갔지만 매번 동독으로 돌아온 점으로 보아 조국에 대한 확고한 충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는 동독 변호사의 말이나, 존재하지 않는 국경을 넘은 것을 처벌할 법률이 없어 정신감정을 실시하는 것 외에는 처벌을 못하는 서독측의 입장 등 희극적인 요소들이 생겨난다.
장벽을 넘는 사람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만 넘는 것이 아니라 서쪽에서 동쪽으로도 넘는다.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권태와 부조리를 참지 못하는 것은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이다.
남북분단의 상황에 처해 있는 남한 독자인 나로서는 동-서독을 가로지르는 장벽을 DMZ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한동안 어리둥절 했었다. 이러한 혼란은 역자 해설을 읽어보고 나서야 해소되었는데, 분단도시 베를린은 1961년 까지는 상호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워 매일 5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아무 문제없이 서로 넘나들었다고 한다. 동베를린 사람이 서베를린의 극장이나 디스코텍을 방문하였고, 서베를린에서 일하고 장을 보는 것이 일상해 속했는데 1961년 8월 12일 당시 동독의 국가원수 발터 울브리히트가 동-서 베를린 간의 국경을 닫으라고 명령함으로서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었다는 것이다. 이 분단 상황은 1989년 11월 9일까지 계속된다. 이러한 사정으로 동독에서는 장벽을 국경으로 간주하여 엄중히 감시한 반면에 서독은 장벽을 국경으로 인정하지 않아 기껏해야 불법적으로 세워진 장애물로 치부하였다고 한다. 이는 장벽을 넘는 행위에 대한 처벌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동독에서는 범법행위로 처벌한 반면 서독에서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거나 치기로 인한 행동으로 치부하였던 것이다.
주인공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머리속의 장벽을 허무는 일은 눈에 보이는 장벽을 허무는 데 드는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릴 것이고 바람에 있어서는 동독 작가인 포머러와 자신 모두 국가로부터 거리를 취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들을 교육시킨 체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내가 시민으로 살고 있는 국가(서독)가 과연 내 조국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진다. 만일 국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독일인이라 대답할 것인데, 그것은 동독도 서독도 아닌 한 나라의 역사와 모국어를 지칭하는 차원일 뿐이라고.
결국 장벽의 동쪽과 서쪽 어느곳도 자신의 조국이 아니라 한다면, 장벽을 뛰어 넘거나 장벽 위에 서 있는 것이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가 될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68세대 작가인 페터 슈나이더는 예술의 선동적 기능을 강조하던 입장을 포기한 대신 문학적 공간에 현실의 정치적 사건과 이데올로기를 투사하며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새로운 문학관을 표명하였다고 하며, 베를린 삼부작으로 불리는 <렌츠>, <에두아르트의 귀향>, <장벽을 뛰어넘는 사람들>을 써내며 68학생운동에 관한 나름의 정리작업을 해왔다.
책을 다 읽은 후 <1968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의 독일 함부르크 편을 다시 들춰보게 되었다. 서독의 급진적인 학생들은 토론할 권리, 질문할 권리, 의견 차이를 드러낼 권리를 위해 투쟁하며 '자유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는 경찰폭력과 검거로 이어졌고 1967년 6월 벤노 오네조르크(Benno Ohnesorg)라는 학생이 사망하기에 이른다. 학생세력은 거세게 반발하였고 체제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었다. 당시 학생들이 나누어준 변형된 주기도문이 인상 깊어 적어둔다.
우리의 자본이시여,
서방 세계에서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투자가 임하옵시며,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월 스트리트에서도
이익을 내고 이윤을 증가시켜 주옵소서.
우리에게 일용할 자본의 회전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의 채권자들에게 신용을 베푸는 것처럼
우리의 신용을 늘리게 하옵소서.
우리를 파산하지 않도록 하옵시고,
노동조합의 위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지난 200년 동안 이 세계의 절반은 권세 있는 자들과
부유한 자들의 것이었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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