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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클로에와 두 딸아이가 시아버지와 함께 시골집으로 내려간다.
남편 아드리엥은 자신과 두 딸아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떠났다. 그녀는 전화를 잘못 걸어온 사람이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군요."라고 말하면,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것, 그런 게 인생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프랑스어에서는 어떤 사람이 버림받았을 때, 그의 '배를 묶는 밧줄이 풀렸다'라는 관용 표현이 있는데 그녀는 자신이 밧줄 풀린 배와 같고 우리가 행복한 게 당연하다고 믿는 것, 그게 바로 덫이라고 생각한다.
답답하고 고집스런 노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시아버지는 뜻밖에도 '떠난 사람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하며 아들 아드리엥을 두둔하는 듯한 말을 하고, 클로에는 이에 분개한다. 그런 그녀에게 시아버지는 자신이 한때 사랑에 빠졌던 이야기를 해준다.
그가 사랑에 빠졌던 여자는 마틸드라는 이름으로 통역일로 만났다. 그는 그녀와 함께 보낸 며칠 동안 더도 덜도 아닌 바로 그 자신이었다는 느낌을 느꼈고,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기분을 맛본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그녀와 있을 때에 무한한 행복을 맛보면서도 가정을 버릴 용기를 내지 못하던 그는 자신의 비열함과 타협하고 만다. 마틸드에게 미래에 대한 약속은 하면서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그러던 중 그의 비서가 남편에게 버림받는 일이 일어난다. 그는 비서의 처지를 동정하고 그녀의 남편을 욕하면서 자신이 마틸드를 위해 가정을 버리지 못할 것임을 알게 된다. 어느날 마틸드가 자신과 함께 하고 싶은 길고 긴 목록을 써놓은 걸 읽었을 때 그는 질투만 했을 뿐 그녀를 위해 용기를 내지는 못한다. 그리고, 몇 번의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던 끝에 마틸드가 아이를 가졌음을 말하고 그는 '누구의 아이인지' 물어봄으로서 그의 사랑은 끝이 나고 만다.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며느리인 클로에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렇게 말한다. "행복이 찾아왔었는데, 나는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것이 그냥 지나가도록 내버려두었어...... 행복하기만 하다면, 나머지 일은 어떻게든 해결되기 마련 아니겠니?", "삶이란, 네가 아무리 부정하고 무시해도, 너보다 강한 거야." "우리 형 폴은 어떤 여자 때문에 죽었지만,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지?"
그리고 클로에는 시아버지에게 "자기 자신이 되고 싶다고 해서 자기 아내와 자식을 버려도 되는 건가요?"라고 묻는다.
시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딸이 빵집에서 바게트 꽁다리를 먹고 싶다고 했을 때 고집을 부려 주지 않다가 식사 시간에 주었을 때에 딸애가 그것을 남동생에게 주어 버리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그 고집스런 딸아이는 좀더 행복한 아빠랑 살기를 바라지 않았을까?"라고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묻는다.
양희은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의 가사가 떠오르는 책이었다.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이 참 쓸쓸한 일인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 삶과는 친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애틋함이란, 그것이 없어지거나 사라질 것을 전제로 한다. 시아버지가 가정을 버리고 마틸드에게 가는 순간 애틋함은 사라진다. 그것은 사랑이 아닌 삶으로 변화한다. 사랑은 변증법적이다. 다만 변화 발전하며 상향하는 것이 아닐 뿐이다. 그것이 요즘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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