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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o 연애소설
사립대 법학과에 다니는 '나'는 형법 시험이 끝나는 날, 그렇게 친하다고 할 수는 없는 한 친구로가 집으로 초대한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자신과 친한 사람은 모두 죽게 되어 '사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부모님이 죽었음은 물론이고 자신을 거두어준 친척도 친해지면 그들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혼자서만 지내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계단에서 넘어지려는 그녀를 구해주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그의 모든 얘기를 듣고 나서도 사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 역시 병으로 죽어버리고, 그는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나'는 '결국은 소중한 사람의 손을 찾아 그 손을 꼭 잡고 있기 위해서, 오직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 싱겁게 흘러가는 시간을 그럭 저럭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o 영원의 환(環)
암 말기에 이르러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나'는 죽기 전에 꼭 죽여야 할 사람이 있다. 동경하던 선배인 우에하라 아야코는 그녀가 동경하던 교수와 불륜관계에 있었고 교수로부터 돈을 건내받고 모욕을 받은 다음 날 학교에서 자살한다. 자살하기 전날 밤에 그녀는 나를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교수를 죽이겠다는 일념만은 확고하지만 몸도 추스를 수가 없다. 이런 '나'에게 대학동창 K가 찾아와서 나 대신 살인을 도와준다. K는 내가 살인을 하려고 했던 진정한 이유는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말하고 나는 반박하지 못한다.
o 꽃
뇌에 동맥류가 발견되어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의 '나'는 당장 수술을 해야 하지만 수술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있을 수 있다. 바로 역행건망이라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릴지 모르는 것이다.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했지만 여자친구의 냉담한 태도에 상처를 받고, 두려움 속에서 회사를 그만 둔 후 집으로 내려간다. 수술을 할지 말지 결정하지 못하던 나에게 아르바이트 제의가 들어온다. 도리고에라고 하는 변호사가 차를 타고 도쿄에서 가고시마까지 가는 길에 동행하는 것이다.
도리고에는 30년전에 게이코라는 여성과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었다. 이상이 높은 도리고에를 위해 게이코는 자신의 학업을 그만 두면서까지 지원하였으나 도리고에는 게이코를 먹여살려야 한다는 강박감에 오로지 돈만을 벌기에 급급하였고 둘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죽자 결국 둘의 관계는 파경에 이르렀고 도리고에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위한 변호를 시작한다. 헤어진 후 도리고에가 결국 25년에 걸친 억울한 사건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 게이코가 입원했던 호스피스로부터 유품을 가져가라는 편지가 오고 도리고에는 자신들이 행복했던 시절의 여행을 떠올리며 도쿄에서 가고시마까지 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것이다. 추억을 찾는 여행에서 과거의 행복한 기억들을 떠올린 도리고에는 호스피스에 도착하여 게이코가 가꾸어 놓은 물망초 화단을 보며 행복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자신도 말기암으로 호스피스에 입원한다.
도리고에로부터 차를 넘겨받은 '나'는 수술을 받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기억을 잃더라도 그 물망초를 보게된다면 모든 기억을 단번에 떠올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Go>라는 영화를 열번쯤 본 것 같다. 쿠보즈카 요스케의 연기도 좋았고, 시바사키 코우의 풋풋함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名前ってなに? バラと呼でいる花を別の名前にしてみても美しい香りはそのまま。이름이란건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그 향기는 그대로인데" 라는 세익스피어의 말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 나는 어렸고, 그런 이유로 내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누군가가 좋아해주길 바래서 그 말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레볼루션 넘버3>를 보고 너무나 실망을 했었다.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서 <연애소설>을 읽는다. <Go>와 같이 열광할만한 것도, <레볼루션 넘버3>처럼 실망한 것도 아니다. 나는 '이야기'에는 무척 후한 점수를 준다.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는 느낌이다.
세 편의 소설은 액자 속의 다른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쫓고 있는 것은 아픈 사랑이다. 자신 때문에 상대편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연애소설>,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던 그녀가 사실은 불륜의 괴로움 때문에 자살하고 그녀를 위해 살인을 해야 겠다고 다짐하는 <영원의 환>, 너무 사랑했지만 서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헤어진 후 서로를 잊지 못하는 <꽃>
옮긴이 김난주의 말 중에 언뜻 가슴에 와닿는 말이 있어 옮겨 적어본다. "연애의 끝은 그 대상과의 결별이며 동시에 연애를 했던 자신과의 결별이기도 하다"
피란델로의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명인 어떤 사람>에서 주인공 나는 어느날 아내가 코가 비뚤어졌다는 말에 자기 자신이 지금까지 자기가 생각해오던 자신이었는지 의문을 갖게 되고 그때부터 자신은 아무도 아닐수도 있고 동시에 십만명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쳐 자기 자신을 해체한다.
아내가 지적한 코의 비뚤어짐과 같은 경험을 실연하게 되면 겪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애가 끝나면 문득 또 다른 내가 생겨나는 것 같다. 그리고 '연애를 하던 당시의 나'와 '연애가 끝났음을 인정해야 하는 나'의 투쟁이 시작된다. 때로는 그 투쟁의 현상이 '변심'으로 나타나기도 해서 본질을 흐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투쟁의 본질이 진정한 나, 내가 되고 싶었던 나로 머물고자 하는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 순간, 연애를 하는 그 순간에, 뜻밖에도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던 경우가 많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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