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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자유롭게 그리라'는 화제로 도화서 생도들이 치르는 외유사생에서 하나의 그림이 화원들 사이에서 문제시 된다. 여인이 화면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것 만으로도 파격일 것인데 그 여인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승려들이 쓰는 송낙이라는 모자이다. 화원들은 이 그림이 춘화(春畵)나 다름없다며 분개하고 그림 그린자를 찾아내라는 분부를 단원 김홍도에게 내린다. 김홍도는 그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거꾸로 뒤집힌 그림을 모사하라는 과제를 생도들에게 내는가 하면 아홉개의 점을 한정된 직선으로 이어보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단원은 범인이 혜원 신윤복임을 확신하지만,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드러난 윤복의 자유분방함과 재능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윤복의 형 영복이 자신이 범인이라며 거짓 자백을 하고 형은 단청실로 자진하여 쫓겨간다. 영복은 단청실에서 조선 제일가는 조색법을 알아내어 윤복의 그림에 화려한 색을 더해주고자 한다.
그 후 정조는 10년 전에 두 화원이 피살당한 사건을 재조사하라는 명을 단원에게 내린다. 십 년 전 수석화원 강수항과 그 수종화원 서징이 당한 영문 모를 사건인데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강수항의 화실에서 범인이 그림을 훔쳐갔다는 사실과 서징이 범인을 그렸을지 모를 얼굴 없는 초상화를 남겼다는 사실을 끝으로 벽에 부딪히고 만다.
한편 윤복은 기방에서 가야금을 기막힌 솜씨로 연주하는 정향이라 기생을 알게되고 정향은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 윤복에게 마음을 허락한다. 그리고 정식 화원이 되기 위한 시험을 앞두게 되는데 홍도는 윤복에게 이갑전로(二甲傳蘆)라 쓰고 이갑전려라 읽는 해탐노화(蟹貪蘆花) 그림을 주며 '두 번의 과거에 급제하여 임금의 상을 받는다'는 뜻을 지녔다며 화원에 합격하길 기원한다. 화원이 되는 시험에서 다시 한번 윤복은 화려한 색을 사용하여 여인들이 단오날 그네를 타고 몸을 씻는 단오풍정(端午風情)이라는 그림을 그려 논란에 휩싸인다. 화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조가 손수 합격자를 가려내는데 그 명단에는 윤복이 끼어있다.
정조는 홍도와 윤복의 재주를 높이 평가하고 아꼈기에 그들에게 같은 화제로 다른 그림을 그리는 동제각화(同題各畵)의 경쟁을 시킨다. 그들이 그려온 그림들은 정조를 감탄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서로를 감탄하게도 만든다. 정조는 이들의 그림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더욱 이해하게 되고, 홍도와 단원은 서로의 재능을 더욱 정려하게 다듬는다.
입추가 지나고 임금의 용안을 그리는 어진화사가 예정되어 도화서가 들썩였으나 정조는 홍도와 단원을 어진화사를 치를 화원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한쪽으로 비스듬이 앉은 구도와 웃는 얼굴의 용안을 그린 홍도와 단원의 그림은 도화서 화원과 조정 대신들로부터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결국 윤복이 도화서를 나가 중인으로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김조년에게 몸을 의탁한다. 아버지 신한평의 화실이 자신의 잘못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는 점과 정향이 바로 김조년에게 팔려갔다는 사실 역시 의탁의 이유가 된다. 도화서를 나선 윤복의 그림은 양식을 벗어나 더욱 화려하고 파격적인 모습을 띤다.
윤복의 그림자 놀이하는 버릇을 통해 윤복이 신한평의 친아들이 아니고 죽은 서징의 자식임을 알게 된 홍도는 벽에 부딪혔던 살인사건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하고 윤복을 통해 서징이 죽기 전 종이를 만드는 공장에 드나들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얼굴이 없는 초상화는 사실 얇은 종이를 네 장 겹친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종이를 박리하자 눈을 제외한 인물의 초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대화원 강수항의 벙어리 제자가 눈을 그려넣자 서징을 살해한 범인의 얼굴이 완성된다. 강수항을 조사하던 중 우연히 강수항이 몇몇에게 자진하여 초상화를 그려주겠노라고 제안하였으나 초상화가 얼굴의 한군데가 잘못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이들은 잘 못 그려진 초상화의 잘 못 그려진 부분만을 모아 초상화를 하나 더 완성한다. 그리고 그 초상화가 죽은 사도세자의 용안을 그린 것임을 알게된다. 마지막으로 서징이 죽기전 도화서의 그림 보관소에서 특정 그림을 지목한 것으로 강수항과 서징을 살해한 범인이 다름아닌 김조년임을 안다.
한편 김조년은 정향이 자신에게 마음이 없다는 사실과 윤복이 그림을 통해 자신을 도발하는 것을 눈치채자 홍도와 윤복을 그림대결에 끌어들인다. 윤복이 이겼을 경우에는 정향을 자유롭게 해 줄 것이라는 것과 홍도가 이겼을 경우에는 윤복이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풍문을 잠재워 주기로 하는 이 내기에 김조년은 막대한 재산을 내깃돈으로 건다. 하지만 누가 이기든 양쪽다 상처 투성이가 될 뿐이다. 김조년은 판을 키우고자 하나 유독 박안식 대감만 내기에 참여하지 않는다. 김조년은 박안식 대감을 찾아가 내기에 참가하게 만들고 대결은 성사된다. 하지만 김조년의 예측과 달리 내기는 무승부로 끝나고 마는데 홍도와 윤복은 그림에 무수한 비밀을 숨겨 어느 한쪽이 이길 것 같은 상황이 되면 그림의 비밀을 밝혀 판세를 뒤집음으로서 끊임없는 균형을 이루도록 해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림은 무승부가 되고 박안식이 돈을 건 경우는 무승부였으며, 무승부가 될 경우 김조년은 내기에 참가한 자들의 내깃돈을 모두 물어주기로 하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박안식은 마지막 발악을 하며 정향을 내놓지 않으려 하지만, 윤복과 정향이 불이 잠깐 꺼진 사이 서로 옷을 바꿔입고 밖에서 보이는 그림자에 현혹된 문지기는 정향을 놓치고 만다. 그리고 김조년은 살인죄로 의금부에 끌려간다.
여인으로 돌아온 윤복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린 후, 홍도를 떠난다. 그리고 윤복의 소식은 홍도에게 풍문으로만 들려올 뿐이다.
드라마는 못 보았지만 드라마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원과 혜원의 그림을 이야기 속에 녹여내어 그림을 읽고 해석하는 과정이 흥미롭고, 사도세자의 용안을 그린 초상화를 둘러싼 살인 사건 역시 추리소설 못지 않는 탄탄한 구조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 대결에서 두 화원이 그림에 숨겨둔 비밀들 역시 작가는 솜씨 좋게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너무 잘 들어맞고 해석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된걸까. 기록된 것이 거의 없는 혜원의 삶을 작가의 가정과 상상 속에서 풀어내어 하나의 가설을 제시하고 이야기로 풀어나가니 독자는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난데 읽어나갈수록 하나의 가정으로 출발한 이야기가 추리소설을 능가할 만큼 맞아 떨어지고 마치 동시대의 일처럼 읽히다보니 '과연 역사가 이렇게 딱딱 맞아떨어져도 되는 것일까', '역사 자체의 안개와 같은 모호함은 어찌된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다 보니 너무나 구성이 조밀하고 나무랄데 없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는 '이것은 소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로군' 하는 생각을 갖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역사소설의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피해가는 것 역시 작가의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윤복이 기생 정향을 애틋해 하는 설정은 윤복이 남성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한 트릭으로서는 그 기능을 다했다 할 것이지만, 실상 윤복이 여성이라 했을 때는 고개가 갸웃해 진다. 홍도가 윤복을 마음에 두면서 왜 그럴까 괴로워 한 것은 실상 윤복이 여성이기 때문에 해소가 되지만, 윤복이 여성임에도 정향을 향한 정념에는 과도한 면이 있다. 윤복이 아들로 행세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성에 대한 동성애적 성향이 나타났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것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왜냐하면 권말에 윤복은 자신의 초상을 그리고 여성으로서 스스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물론 동성애적 성향에서 여성성으로 복귀하는 과정으로 억지로 짜맞출 수도 있겠으나 성긴 느낌을 받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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