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세계문학의 숲 3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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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먹어본 적이 없는 자들은 지금 먹고,

늘 많이 먹어본 자들은 이제 더 많이 먹어라.

 

작자 미상의 2~3세기경 라틴어 시 <사랑의 불면>에 나오는 "일찍이 사랑해본 적이 없는 자, 내일 사랑하라. 이미 사랑해본 자는 내일도 사랑하라"를 퀸시가 아편에 빗대어 흉내낸 시구이다.  퀸시는 직공들이 저임금 때문에 맥주나 위스키에 탐닉할 여유가 없고(그만큼 당시는 아편이 싼 가격이었다), 일단 아편이 주는 천상의 쾌락을 한 번 맛본 사람이 알코올처럼 조잡한 세속의 음료가 주는 즐거움으로 전락하리라고 믿을 수도 없다고 말한다.

 

1부

성공한 직물상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와 네 명의 후견인에게 맡겨진 퀸시는 어릴적 그리스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6세에 실력 없는 선생들을 이미 뛰어넘었음을 알게 된 퀸시는 맨체스터 그래머스쿨을 떠나 방랑길에 접어든다. 런던으로 거처를 옮긴 후 아무런 후원도 없이 극도의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이 시기에 한 변호사의 집에 기숙하게 된다. 말이 기숙이지 이불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그곳에서 열살쯤 된 거지 여자아이와 창녀 앤을 만나게 된다. 가난하지만 퀸시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헐어 먹을 것을 사주고 걱정해주는 앤과의 우정을 지속하던 어느 날, 그는 후견인들과 화해를 하고 옥스퍼드 대학의 우스터 칼리지에 진학한다. 얼마간 안정이 된 후 퀸시는 앤을 찾기 위해 돌아오지만 그녀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고, 그는 그녀의 성을 알지 못한다.

 

2부

퀸시는 옥스퍼드에서 치통을 달래기 위해 아편을 복용하기 시작한다. 아편은 아무 약종상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아편을 복용한 후 '정신 기능에 완벽한 규율과 조화'가 온 느낌을 받는다. 아편은 '냉정함을 크게 활성화'하였으며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인 모든 정신기능에 균형을 전달'하고, '심장과 자비로운 애정을 확장'시킨다. '아편에 수반되는 자비로운 감정의 확대는... 원래 공정하고 선량했던 마음의 충돌들과 싸우고 그것을 혼란시킨 뿌리 깊은 고통이 제거되면 마음이 자연히 되돌아가는 그 상태로 건강하게 회복' 되는 느낌을 준다. 그는 아편을 복용하던 초기에 무기력이나 우울과는 거리가 멀었고, 아편을 복용한 다음날에는 유별나게 기분이 좋고 의기양양하기까지 했다고 고백한다. 

상당히 오랜기간 아편을 절제하며 복용하던 그가 우울한 사건을 경험하고 이로 인해 건강이 훼손되자 아편에 의존하기 시작하고, 악몽이 시작된다. 그는 멕베드가 "더 이상 잠자지 못할 것이다(shall sleep no more)" 즉 잠을 잘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를 외친것에 비견하여, 잠이 들면 찾아오는 극심한 공포와 악몽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잠자지 않겠다(will sleep no more)" 라고 외쳐야 할 지경에 이른다.

그의 몸과 정신의 균형은 완전히 깨어져 버렸고, 아편 사용량은 급격히 늘어나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이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이라는 외적 동기로 아편을 끊기로 마음먹지만, 아편 복용량을 줄이는 동안 '하나의 존재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방식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고통'을 맛본다.

 

퀸시는 부록에서 아편을 완전히 끊은 상태에서 저 책을 쓴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1859년 겨울, 퀸시의 사망 기사를 읽은 보들레르는 "아편쟁이가 인류에게 실제적인 봉사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도대체 어쨌단 말인가. 그의 책이 '아름답다'면, 그것만으로도 그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즉 '아름다움'이 '진리'보다 더 고귀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라고 말했다고 하며, 보르헤스는 '나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책 중의 하나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보르헤스가 슬프다고 말한 것은, 무엇엔가 탐닉하고 그때문에 스스로 만든 지옥 속에서 사는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이 책에서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동물은 자신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면서 쾌락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인간은 해롭다는 이유로 어떤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기도 한다. 꽤나 오랫동안 인간본성은 환경에 의해 규정받으며 어떤 정해진 속성이란 없다고 믿으며 살아왔지만, 최근에는 그런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3241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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