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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 1 - 개정판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1월
평점 :
소설의 각 장은 <세피로트 나무>의 각 단계를 차용하고 있다. 세피로트는 수(數), 혹은 구체(球體)를 뜻하며 하느님이 드러내고자 하는 열 가지 속성을 가르킨다고 한다. 각 속성은 다음과 같다. 1.케테르(왕관) 2.호흐마(지혜) 3.비나(지성) 4.헤세드(사랑) 5.디인(정의) → 게부라(악, 푸코의 진자) 6.라하밈(신심) → 티페렛(아름다움과 조화, 푸코의 진자) 7.네짜(영원) 8.호드(위엄) 9.예소드(토대) 10.말후트(왕국)
유대교 신비주의 전통에 따르면 세상은 지상계(地上界, 즉 지상의 왕국인 <말후트>)에서 시작하여 거룩한 원리인 <케테르>로 회귀한다고 하는데, 소설은 반대로 <케테르> 장(章)에서 시작되어 <말후트>장에서 끝나며, 5번과 6번이 바뀌어 있다. 역자 이윤기는 이것이 작가의 세계관을 반영한 듯 하다고 각주에서 간략하게만 밝히는데, 이는 '꾸며 낸 계획' '실제'에 영향을 미치는 전반적인 줄거리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언급은 피한 듯 하다.
소설은 국립공예원에서 주인공 까소봉이 푸코의 진자를 보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까소봉은 이틀 전 벨로로부터 한밤중에 전화를 받는다. 벨보는 자신의 컴퓨터인 '아불라피아(13세기 유대신비주의자. 토라의 무한 치환을 통한 성서해독에 평생을 메달린 인물 아브라함 아불라피아에서 따온 이름)'를 열어보라며 <계획>은 진짜였다고 말한다. 암호를 말하려던 찰나에 벨보는 누군가의 습격을 받은 듯 전화는 끊기고 만다.
까소봉과 벨보의 인연은 1972년말 술집 필라데에서 시작된다. 가라몬드 출판사의 편집장인 벨보와 역시 출판사에서 일하는 디오탈레비, 성당기사단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던 대학생 까소봉은 친해지고 어느날 필라데에서 성당기사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성당기사단에 관한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가 까소봉이 연구한 것인데 이는 논문을 준비를 위한 것으로 사실에 근거한다. 둘째가, 전직 대령 아르덴티의 이야기로 그가 한 장의 문건을 발견하여 해독한 성당기사단 계획에 관련된 것이다. 세번째가, 벨보,까소봉, 디오탈레비가 아르덴티의 불완전한 <계획>을 재구하는 내용이다.
까소봉의 성당기사단 이야기
제1차 십자군 원정으로 성지(聖地)에 기독교 왕국이 건립된다. 보드웽 2세가 예루살렘을 다스릴 무렵인 1118년, 위그 드 파양이 이끄는 아홉 청년이 <그리스도의 가난한 군병>이라는 조직을 결성하는데 이들은 순례자 보호를 자처하였고, 이에 왕과 예루살렘 유지들은 그들에게 돈을 걷어주고 옛 솔로몬의 성전을 은서지(隱棲地)로 제공한다. 훗날 성당기사단으로 알려지는 이들이다.
교단(敎壇)이 막강해지니 가입하는 자가 늘고 이에 성지에 파견되지 않는 성당기사단도 생길 지경이었다. 이들은 회교도들과 싸웠으나 상호존중하였고 이러한 동아리의식은 성당기사단의 몰락을 재촉하게 되는 바 훗날 종교재판관이 기소할 때 들이댄 죄목이 ‘배교적(背敎的) 회교도들과의 접촉’이었던 것이다.
성당기사단 세력이 급속히 확산될 즈음 생 베르나르가 등장한다. 그는 성당기사단을 <그리스도의 청빈 기사단>으로 둔갑시키고 그들의 행동을 영웅적 행동으로 미화한다. 또한 72항목의 종규시안을 마련하는데, 지키기에 매우 까다로운 조항들이었다.
전쟁터에서는 죽음에 대한 압박을,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는 신앙에 귀의한 도덕적 엄격을 강요받는 성당기사단은 남색이나 배교적 행위로 일탈할 개연성이 높았다.
그 즈음 성당기사단은 막대한 기부금과 재산위탁관리를 통한 수수료, 자체 무력으로 이미 다국적기업의 면모를 띠었으며 왕, 주교나 예루살렘의 고위 성직자의 간섭에서 자유로웠다.
1244년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기독교가 패배한 후, 성당기사단은 회교신비주의 교리에 경도된다. 1291년 예루살렘의 기독교 왕국이 영원히 사라졌지만 성당기사단의 재산과 기사수는 그 어느때보다 많았고 권세 역시 드높았다. 그러나 성지전투가 목적인 집단인데 성지에는 단 한사람의 기사도 없는 아이러니한 조직이기도 했다.
한편 막대한 재산관리로 소일하던 그들이 강력한 중앙 집권을 노리던 공정왕 필립에게는 눈에 가시로 보였다. 성당기사단 사령관 자끄 드 몰레와 필립왕의 1차 갈등이 있었으나 교황이 성당기사단 편을 들어준다. 이에 공정왕 필립은 중상모략을 시작하는데, 성당기사단의 이국적 차림과 무어 말씨, 동성연애 혐의, 회교암살조직 산옹(山翁)과의 관계, 이스마일파(회교 시아파 중에서도 과격하고 이단적인 조직)의 비의 관련 등이 그것이다.
교황이 1307년 공개심문회를 열자는 필립왕의 제안에 마지 못해 동의하는데 여기서 세가지 불가사의한 점이 생겨난다. 첫째, 풍전등화의 위기인데도 성당기사단은 질탕한 술잔치와 신성모독을 계속한 점. 둘째, 1307년 9월 14일 성당기사단의 검속과 재산몰수를 명한 밀지가 발효되고 한 달간 계속되는데도 10월 13일까지도 칼 한번 뽑지 않고 항복한 점. 셋째, 심문과정에서 36인의 기사가 목숨을 잃는데 저항한 기사가 한 명도 없고 모두 순순히 자백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세 번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그리스도 수난상에 침을 뱉었으며, 옷을 벗고 다른 기사의 궁둥이, 배꼽, 입술에 차례로 키스한 후 상호간음을 하고 털보우상 대가리를 경배했다는 등의 죄목으로 기소된다.
1310년 4월 550명의 성당기사들이 자백을 번복하나 공술 번복자로 50명이 처형되자 500명은 번복을 다시 번복하고 조용히 다른 교단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1314년 3월 19일 자끄 드 몰레가 화형에 처해지는데 그는 박해한 자들의 운명을 예고하고 그 예고대로 교황, 필립왕, 노가레가 그해 사망한다. 몰레의 사망과 500명의 성당기사단의 잠적 이후는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아르덴티 대령의 성당기사단 이야기
어느날 출판사를 찾아온 전직 대령 아르덴티는 자신의 원고를 출판의뢰하기 위해 방문했다며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는 성당기사단이 순순히 체포된 데에는 어떤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계획은 세계정복, 혹은 힘의 원천에 관련된 것이다. 이 계획은 성사시키는 데에 세월을 요하는 원대한 것이었거나, 막대한 재원이 필요했거나, 혹은 계획의 속성상 서서히 진행되어야 했다. 따라서 성당기사단은 지하로 숨어들기로 결정하고 일부가 순순히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자끄 드 몰레가 체포될 것을 알고 수도회의 지휘권과 밀지를 보쥬백작에게 넘겼으며 성당기사단은 이후 프리메이슨, 몬테사 수도회, 그리스도 기사단, 튜튼 기사단 등 여러가지 이름과 단체로 변모하여 왔다. 아르덴티 대령은 성당기사단의 족적을 계속 추적하던 중 중앙정부 권력이 미치지 못했던 프랑스의 프로뱅 지방이 성당기사단이 숨어들었던 장소임에 틀림 없다고 생각한다. 조사를 하던 아르덴티는 1894년의 신문에서 두 사람의 용기병(龍騎兵)이 <십일조 곡창(穀倉)>을 조사하던 중 지하 3층의 방을 발견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발견한다. 그는 용기병 중 앙골프라는 자가 무언가를 발견했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여 그의 집을 방문하고, 그의 서재에서 한 장의 문서를 발견한다. 그 문서는 암호화된 글과 일부가 지워진 글이었는데 아르덴티가 해독한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Les 36 inuisibles separez en six bandes>, 즉 <여섯 무리로 나뉘어진, 서른 여섯명의 보이지 않는 자들>.
일부가 지워진 글의 해석
a la......Saint Jean 성 요한의 (밤)
36 p charrete de fein 건초 수레 사건으로부터 36(년 되는 해)
6......entiers avec saiel 봉인으로 밀봉된 6(가지 밀지)
p......les blancs mantiax 흰 망토(를 두른 성당기사들을 위하여)
r......s......chevaliers de Pruins pour la......j.nc. (복)수하기 위한 프로뱅의 (공술 번복자들) 계획은 이러하다
6 foiz 6 en 6 places 6개소에 6곱하기 6
chascune foiz 20 a......20 a......iceste est l' ordonation al donjon li premiers 각회 20(년)씩 120(년)
it li secunzjoste iceus qui......pans 제1진은 성으로
it al refugge 다시 은신처로
it a Nostre Dame de l' altre part de l' iau 다시 강가에 있는 노뜨르담으로
it a l' ostel des popelicans 다시 포펠리칸이 묵는 곳으로
it a la pierre 다시 돌이 있는 곳으로
3 foiz 6 avant la feste......la Gran Pute. 위대한 창부(의) 잔치 전에 3 곱하기 6(666)
아르덴티는 이에 근거하여 성당기사단이 복수를 위하여 36명으로 이루어진 6개의 기사단이 120년에 한번씩 6개의 봉인을 개봉하는 계획을 세웠으며 1944년이 성당기사단 계획의 마지막 해였음을 알아냈다고 한다. 그러나 1944년은 세계대전이 있었던 시기라서 성당기사단의 계획이 실행될 수가 없었으며 <돌이 있는 곳으로>의 돌은 바로 성배(聖杯)를 뜻한다는 것이다.
까소봉, 벨보, 디오탈레비의 새로운 <계획>
아르덴티의 원고는 이들에 의해 실없는 가짜로 치부되었으나 아르덴티가 모텔에서 석연치 않게 죽임(혹은 사라짐)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후 까소봉은 브라질로 떠나 그곳에서 아글리에라는 자를 만나는데, 그는 성당기사단에 관련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은비학에 대해서도 정통하며 자신이 죽지 않는 생 제르맹이라 자칭한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까소봉은 벨보, 디오탈레비와 함께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며 성당기사단과 관련한 일련의 출판물을 기획한다. 온갖 <유령 떨거지들>의 원고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어 아글리에도 여기에 가세하여 최종 검토를 맡는다.
원고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들 셋은 장난삼아 성당기사단의 계획을 좀 더 그럴싸하게 만드는 지적 유희를 거듭하게 된다. 성당기사단의 비밀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를 재해석해가며 그들은 마치 절대진리라도 발견한 듯 한 착각에 빠진다. 해명되지 못했던 사소한 역사적 의문들은 '성당기사단의 계획'이라는 만능열쇠로 술술 풀려간다.
이 과정에서 성당 기사단의 회합이 끊어진 것이 교황 그레고리우스의 월력 개혁으로 인한 각국 조직간 날짜 착오 때문이라거나, 그들이 최종 목적이 성배가 아니라 지구자기력을 조정할 수 있는 지하 위치를 발견하는 데 있다거나, 푸코의 진자가 특정한 날짜와 시각에 가르키는 지점을 알 수 있는 지도의 존재가 필요하다거나 하는 세부 내용을 만들어나간다.
한편 까소봉 아내 리아는 아르덴티가 발견한 밀지가 사실은 상인이 쓴 거래명세표에 지나지 않는다며 다르게 해석한다.
리아의 밀지 해석
a la......Saint Jean 생 장 가(街)에
36 p charrete de fein 건초 한 수레, 값은 36수우
6......entiers avec saiel 도장이 찍힌 포목 6필은
p......les blancs mantiax <블랑 망토(흰 망토)>가에
r......s......chevaliers de Pruins pour la......j.nc. 종쉐에 쓰일 십자군 장미
6 foiz 6 en 6 places 다음 여섯 곳에 여섯 송이짜리 여섯 다발.
chascune foiz 20 a......20 a......iceste est l' ordonation al donjon li premiers 한 다발에 20드니에, 합계 120드니에. 배달할 순서 첫번째 여섯 송이짜리 다발은 성채로
it li secunzjoste iceus qui......pans 상동(上同), <포르 오 뺑> 거리로
it al refugge 상동, <에글리즈 드 루뻬주(피난처 교회)>로
it a Nostre Dame de l' altre part de l' iau 상동, 강 건너 <노뜨르담 교회>로
it a l' ostel des popelicans 상동, 카타리 교단 건물로
it a la pierre 상동, <삐에르 롱드>거리로
3 foiz 6 avant la feste......la Gran Pute. 그리고 여섯 송이짜리 세 다발은 축제 전에 유곽 거리로......
까소봉은 이 해석에 '하나님 맙소사, 세상에 이럴수가!'라고 경악하지만, 이미 계획을 가지고 장난질을 시작한 이후 너무 멀리 와버렸음을 깨닫는다. 벨보는 자신의 어린시절부터의 트라우마를 이 <계획>에 집착함으로서 해소하려 하고, 디오탈레비는 <계획>을 만들어가며 언어를 재조합한 저주로 자신의 몸 속 세포가 재조합(암세포) 되었다. 또한, 아글리에를 위시한 성당기사단 비밀에 골몰하는 자들은 <계획>을 실제로 믿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결국 벨보는 아글리에를 위시한 집단에 의해 푸코의 진자에 메달려 살해당하고 까소봉은 영원한 도피자 신세가 되고 만다.
<푸코의 추>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을 95년도에 상권만 읽은 후 포기했다가 이번에 <푸코의 진자>로 개역된 판본을 읽게 되었다. 역자 이윤기의 번역에 얼마만큼의 수고가 들어갔는지 느낄 수가 있었다.
작년 10월경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배경인 멜크 수도원에 가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사진인데 내부 촬영에 플래시 사용 금지라서 많이 담지 못한게 아쉽다. <장미의 이름>은 영화로 보고난 연후에 책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가 있었는데, <푸코의 진자>는 영화화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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