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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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지진아로 살아가던 주인공이 어느날 자살을 하려던 찰나 슈퍼맨이 그를 구한다. 영웅들이 모여사는 곳에 가서 무한히 그들을 동경하던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영웅 '바나나맨'이 된다. 황인종이라서 겉은 노랗지만 속은 백인종처럼 하얀 바나나맨. 하지만 그는 딱히 이렇다할 임무도 맡지 못하고 슈퍼맨이나 원더우먼 심부름이나 할 뿐이다. 슈퍼맨은 지구 곳곳의 '정의를 모르는' 족속들을 힘으로 처단하고, 배트맨은 무지막지한 돈의 힘으로 한껏 권력을 과시한다. 헐크는 온순한 외모로 회의를 주관하나 그의 뜻대로 회의가 흘러가지 않을 경우 헐크로 변할 것을 알기에 회의 참가자들은 모두 고분고분하다.

 

브레튼우즈 체계가 확립되고 전세계가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되어 가는 것을 만화 속 영웅들로 치환하여 그려내고 있다. 한 때 이런 글들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무협지 형식이나 만화를 차용해서 정치권이나 세계경제를 비판적으로 비꼬는 글들이었다. 때때로 재기발랄한 글들을 써서 동료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던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글이 소설로 버젓이 출판되어 문학상까지 수상했을 줄은 몰랐다. 영화 <장미빛 인생>에서였던가, 무협지를 썼는데 그게 하필이면 정치권을 비아냥대는 내용으로 읽혀 도망다니던 작가지망생이 생각났다.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나오는 아프리카 어느 야구단 이야기를 읽을 때 박민규는 참으로 말을 재미나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가 학교 다닐 때에 운동권 언저리를 기웃거렸을 것이나 그쪽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겠다는 혼자만의 상상을 해봤다. 남한 사회를 반봉건 사회로 보는 듯 한 시각은 좀 맘에 들지 않았고,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도 다운시프트적인 대안을 제시해서 좀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건 소설이지 사회과학책은 아니지 않은가. 너그럽게 넘어가자.

 

박민규 소설은 흡입력은 있으나, 한번 손에서 놓으면 다시 집어들어지지는 않는다. <핑퐁>은 술술 읽혔으나 일이 바빠 잠시 읽기를 중단한 뒤 그길로 작파한 상태고, <지구영웅전설>도 중간쯤 읽다가 감사자료 제출로 바빠 중단했더니 쉽게 손이 가지 않았었다. '썰을 잘 푸는' 소설들이 좀 그런 듯 하다. 엠티 가서 밤 늦은 시간의 술자리 얘기는 그때 들어야 재미있지 다음날 아침, 정신 멀쩡할 때 들으면 재미없는 것처럼 말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3128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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