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 제127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토가와 유자부로 지음, 이길진 옮김 / 열림원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살다>

11만석의 영지를 가진 주군 히다노카미를 섬기는 마타에몬은 5백석의 녹봉을 받는 우마마와리(주군의 측근에서 말을 타고 경호하는 무사) 이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하여 낭인이 된 아버지가 다행이도 다시 벼슬을 하게 된 후, 마타에몬 역시 주군의 총애를 받아 순탄하게 승진해왔다. 아내가 병약하여 몸이 아프기는 하나 아들인 이호지가 이제 곧 성년이 되고 딸인 겐도 무사집안인 마나베 가문으로 출가시켜 그런대로 안온한 삶을 누려 왔다. 그러나 에도의 있는 주군의 병세가 심각해지자 주군의 뒤를 이어 할복할 때가 머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이런 그에게 가지타니 가로(영주의 중신으로 무사를 통솔하고 실무를 총괄하는 벼슬)가 영주가 죽은 후의 혼란과 인재의 손실을 우려하여 순사를 금지하는 밀령을 내린다. 충성심을 명령으로 막을수는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자신이 할복하면 아들의 출세길이 막히고 충성스런 신하들이 너도 나도 할복하였을 때의 공백도 우려가 되어 마타에몬은 밀령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영주가 죽은 후 순사금지령이 정식으로 내려졌음에도 할복하는 자가 줄을 잇고 사위인 마나베 역시 순사하고 만다. 가지타니 가로에 반대하는 일파의 무사들은 마타에몬에게 은근히 할복할 것을 종용하고 딸인 겐은 남편의 할복을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막아주지 않았다며 의절을 선언한다. 아들인 이호지마저 타인의 손가락질에 수치심을 느껴 할복하고,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던 아내 사와마저 병사하고 만다. 밀령을 내린 가지타니 가로마저 마타에몬을 보호해주기는 커녕 권력투쟁에 밀려 자신의 보신에 급급할 뿐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할복하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런 나날이 마타에몬을 괴롭힌다.

 

<평온한 모래톱>

80석의 녹봉을 받는 군(郡) 행정관인 소헤이는 백성들에게서 조세를 부과함으로서 난국을 타개하려는 중신들에 반대하여 소신을 펼치다가 좌절되자 벼슬을 버리고 에도로 간다. 처음 몇년간은 가지고 있는 돈으로 생활하였으나 생활이 궁핍해지고 일자리마저 얻기 힘든데다가 아내가 병까지 들자 딸인 후타에를 사창가에 팔고 만다.

그는 우연히 알게된 오리노스케라는 젊은이에게 간혹 돈을 주며 후타에를 찾아가 어떻게 사는지 알아보게 하는데, 후타에가 무사집안의 긍지를 갖고 살아가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오리노스케로부터 전해 듣고 괴로워한다. 사창가에서는 점점 빚이 늘어갈 뿐이어서 6년간의 계약기간이 끝나더라도 풀려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여 후타에를 다시 빼내오려 하지만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었고, 홍수에 집과 돈이 쓸려가버려 모은 돈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이에 예전에 모시던 주군을 찾아가 사정 설명을 하고 돈을 융통해보려 하나, 구걸을 하러 온것으로 생각한 주군은 거절하고 그렇다면 주군의 정원을 빌어 무사로서 할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가이샤쿠(할복을 할 때에 숨이 끊어지도록 목을 쳐주는 사람)도 없이 열십자로 할복을 한 그를 본 예전 주군은 무사의 긍지를 높이 사 30냥을 하사하고, 오리노스케는 그 돈을 가지고 후타에를 빼내오려 하나 일제 단속 때문에 사창가는 문을 닫고 후타에는 어디로 갔는지 종적이 묘연하다.

그 후 장사를 하면서 돈을 모으던 오리노스케는 우연히 한 남루한 꼬마 여자애를 만나게 되는데 먹을 걸 사주려는 오리노스케에게 꼬마는 배가 부르다는 거짓말을 하며 거절하고, 그 모습을 보고 후타에의 딸임을 직감한다.

 

<조매기(早梅記)>

다카무라 기조는 야심을 품고 출세를 위해 노력하여 어느정도의 위치에까지 올랐으나 아내인 도모는 병사하고 현재는 은퇴를 하여 산책으로 소일을 하고 있다.

그는 젊었을 때에 혼자 살며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불편하여 가난한 아시가루(최하급 무사) 집안의 딸인 쇼부를 집안일 하는 여자로 들인다. 쇼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원하는 대로 세상일이 돌아가지 않음을 일찍부터 깨달았기에, 다카무라의 집에 와서 일하면서도 불평하는 법이 없었고 생활비를 주어도 쓰고 남은 돈은 다카무라에게 돌려주었다. 채마밭을 가꾸고는 등 부지런하였기에 다카무라는 혼자서 생활을 꾸려갈 때보다 오히려 삶이 여유로와졌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무사집안의 다카무라가 하층계급의 딸과 부부의 연도 맺지 않고 한집안에 산다는 것을 곱게 보지 않았다.

다카무라가 위험한 곳에 주군의 뜻을 전하러 가는데 자원하고 이를 계기로 출세길이 열린다. 중신이 끊이지 않고 자신의 상관이 중매를 서기까지 하여 그는 출세할 욕심으로 도모라는 여자를 아내로 얻는다. 그동안 아내나 다름 없었던 쇼부는 도모가 들어오기 전 다카무라에게 짐이 되기 싫어 홀연히 사라지고 다카무라는 쇼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안고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산책길에서 우연히 매화나무가 있는 집을 지나던 다카무라는 그 집에서 나오는 쇼부와 마주친다. 그러나 쇼부는 끝내 자신을 숨기고 다카무라를 알아보지 못하는 척하며 '...이웃과의 작은 인연에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가난으로 맺어진 유대는 그리 쉽게 끊어지는게 아니...'라는 말을 한 후 매화 가지를 준다.

 

2002년도 제127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오토카와 유자부로는 1953년 도쿄에서 출생한 후 지바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과 괌의 호텔에서 지배인으로 근무한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라 한다. 그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린 시대소설만을 쓰기로 유명한데 "인간은 누구나 실제 생활에서 고통을 경함한다. 나는 그런 장면을 제외하고는 소설을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다. 시대소설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어리석다고까지 할 수 있는 올곧은 사람들, 정의와 인정과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것이 확실히 존재하는, 유갑스럽게도 현재의 삶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세계를 젊은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시대소설을 쓴다"고 한다.

세 편 모두 자신이 옳다고 믿고 행한 선택과 그에 따르는 고통을 그리고 있다. <살다>에서는 대의를 위하여 할복 하지 않고 살아 남는 선택을 하였으나 오히려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삶을, <평온한 모래톱>에서는 무사의 대의를 위해 스스로 벼슬을 버렸으나 오히려 이때문에 아내를 잃고 딸은 사창가에 파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조매기>는 벼슬과 야심 때문에 쇼부라는 여인을 버렸으나 끝내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사나이를 그리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는 선택한 자의 몫이다. 가급적이면 선택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나, 이 또한 선택의 일종이니 결국 인간이란 후회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다만 얼마만큼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후회가 남더라도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펴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자긍심마저 잃고 비참하게 과거만을 곱씹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674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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