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관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6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추영현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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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스터리의 3대 기서라 하면 유메노 큐사쿠의 <도구라마구라>, 나카이 히데오의 <허무에의 제물>, 그리고 오구리 무시타로의 <흑사관 살인사건>이다. 아직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도구라마구라>로 말하면 작품을 구상하고 탈고할 때까지 10년이 걸렸으며 한번 읽으면 정신이상이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괴작이라고 한다. <흑사관 살인사건>은 무시타로의 독자 한 사람이,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성서나 불경이 아닌 바로 이 책을 지니고 떠나겠다고 말한것으로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는 기서이다. 나카이 히데오의 <허무에의 제물> 역시 나머지 두 편 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하나 10년에 걸친 집필과 '안티미스터리'라는 수식이 붙어 다니는 괴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번에 읽은 <흑사관 살인사건>은 매일 50페이지씩 자기 전에 숙제를 하듯 읽었지만, 전체적인 줄거리만을 대강 꿰었을 뿐이고 세세한 내용까지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번역 및 기획 방향 자체가 아쉽다. 이 책은 일본에서 책 자체를 위한 주석과 해설을 묶은 책이 출간될 정도로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오구리 무시타로는 책 전편에 걸쳐 중세의 연금술, 범죄학, 건축학, 의학, 마술, 종교, 심리학, 그리고 정설로 굳어지지 않은 다양한 예외적 사건에 관해 백과전서식 나열을 늘어놓고 있다. 실제 존재하였거나 발표된 적이 있는지 의심이 가는 책과 인물, 사건 등까지 400페이지 넘게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에 번역자 자신이 이 책에 대한 어느정도의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도저히 매끄러운 번역을 할 수 없을 것이며, 책 자체만을 번역하여 출판할 경우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야말로 머리를 쥐어뜯다 포기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동서문화사에서 출간된 <흑사관 살인사건>은 이런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일본식 한자를 그대로 번역한 후 한자만을 괄호 안에 표기하는 식으로 대체된 것이 많아 읽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

두번째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이유의 연장으로 독자가 제아무리 백과전서식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도저히 1930년대의 책에서 나열된 견해와 이론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 당시에 획기적이고 새로운 학문, 혹은 견해였던 것이 현재에는 과거에 존재했던 하나의 견해에 불과한 것이 많고, 방대한 백과전서식 지식의 나열로 제시하는 견해들이 현재에는 학문적 검증을 통해 틀린 이론으로 밝혀져 현재의 독자는 들어보지도 못한 의견들도 많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기이한 분위기와 사고의 변주 때문인 듯 하다. 노리미즈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유와 신문, 추리를 거듭하는데 그 중 대부분이 노리미즈의 오류로 드러나거나 범인을 강박하기 위한 의도로 잘못된 추리를 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독자는 사건 해결을 위하여 일관된 사고를 진행하기가 어렵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과거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넣어 두는 성관이라는 데서 유래한 이름인 흑사관의 주인 후루야기 산데쓰는 유럽에서 의학과 마술을 연구하고 귀국한 인물이다. 귀국 직후 야기자와 박사와의 1년에 걸친 논쟁을 진행하다가 어느 순간 두 사람 모두 논쟁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그친 후 근 40여년을 칩거하고 있는 상태이다. 한편 후리야기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근친 살해자이며 성 바르톨로뮤의 대학살을 자행한 인물이 나온다.

그의 부인의 이름은 텔레즈로 사망하였고, 그와 텔레즈 그리고 건물을 설계한 클로드 딕스비는 삼각관계였다. 클로드 딕스비는 건물 설계 후 귀국하는 배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을 하고 만다. 후루야기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을 한다.

후리야기에게는 하다타로라는 아들이 한명 있고, 40년간 성관 밖을 나가지 않은 4명의 현악 연주자가 있는데 이들 모두는 후리야기 박사가 외국에서 데리고 온 인물들로 그레테 단네벨그, 오토칼 레베스, 가리발다 셀레나, 올리거 클리보프가 그들이다.

성관에서 살인이 발생하는데 단네벨그가 그 첫번째 희생자이다. 단네벨그는 오렌지에 주입된 청산가리를 먹고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특이한 점은 시체에서 시광(屍光)이 비쳐나오고 있는 점과 양쪽 관자놀이에 무늬모양의 칼자국이 있는 점이다. 죽기직전 그녀가 쓴 이름은 텔레즈인데, 텔레즈는 이미 사망한 후리야기의 부인이고, 후리야기가 그녀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인형이 있을 뿐이어서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빠지고 만다.

그런 와중에 후리야기 산데쓰가 쓴 것으로 보이는 예언 글귀가 나오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그레테는 영광으로 빛나게 죽음을 당할 것, 오토칼은 매달려서 죽음을 당할 것, 가리발다는 거꾸로 매달려 죽음을 당할 것, 올리거는 눈을 가리고 죽음을 당할 것, 하다타로는 허공에 떠올려 죽음을 당할 것, 에키스케는 틈새에 끼어 죽음을 당할 것.

예언과 같이 관리인인 곱추 에키스케가 그 후 갑옷 사이에 끼어 죽음을 당하고, 산데쓰의 비서인 가미야 노부코가 종명실에서 기묘한 자세로 칼을 움켜쥐고 실신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또한 산데쓰의 이복 조카딸인 오시카네 쓰다코가 고대시계실에서 중독되어 미이라처럼 싸여있는 것이 발견된다. 4명의 현악 연주자들이 산데쓰가 죽기 직전 알 수 없는 이유로 양자로 입양이 되었음이 밝혀지고, 오시카네 쓰다코가 유산분배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유력한 용의자 중 한명으로 의심이 되는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사건은 한층 미궁에 빠져들고 만다.

유대인 중 한명이 범인으로 좁혀져 가는 상황이 진행되자 노리미즈의 추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유대인 올리거 클리보프가 화살에 맞아 죽을 뻔한 사건이 일어난다. 살아남은 클리보프는 그러나 죽음을 피해간 것은 아니어서 결국 연주회 중 정전 이후(눈을 가리고에 해당)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남은 사람들은 메피스토와 같은 범인의 행적에 두려움에 떨고 산데쓰만이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며 산데쓰의 죽음을 믿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산데쓰의 심장이 보통사람과는 반대로 오른편에 있어 자살이건 타살이건 그는 심장을 찔리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리미즈는 산데쓰의 묘를 파헤치는데 동의하지 않고 계속 이성의 힘으로 사건을 조사해 나갈 것을 천명한다.

연주회장의 한쪽 방에서는 오토칼 레베스가 예언과 같이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이 발견되고, 결국 산데쓰의 묘소까지 일행은 조사를 하지만 산데쓰는 시체인 채로 발견이 된다. 그리고 범인을 아는 듯한 가미야 노부코마저 권총에 맞아 살해당함으로서 결국 사건은 미해결로 끝나는 것 같다.

사건의 대략적인 전말은 다음과 같다.

후리야기 산데쓰와 야기자와 박사의 논쟁 내용은 범죄소질 유전설에 관한 것으로 그 논쟁은 실제 실험에 의하지 않고서는 결론을 낼 수 없는 국면을 맞이한다. 이에 산데쓰는 4명의 어린아이를 데려와 40년간 가두어 두고 그들을 양육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 범죄를 행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양자로 맞이한 후 유산 상속의 조건으로 성관 밖을 나갈 수 없으며 상호간에 연애 감정을 가져서도 안된다는 단서 조항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자신의 심장이 반대에 위치한 것을 이용, 자살을 가장하고 이를 지켜보려 하나 누군가의 방해로 이는 실현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실험을 성공시키기 위해 자식마저 희생시키는데 그의 실제 자식은 여자인 가미야 노부코였으며 남자인 하다타로는 후리야기 혈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즉, 하다타로는 4명의 범죄자 후손들과 비교를 하기 위한 변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를 우연히 알게 된 가미야 노부코가 산데쓰가 다시 살아날 수 없도록 방해하고 나머지 인물들을 살해한 후 자신도 타살로 위장한 자살을 함으로서 후리야기 가문이 멸종하는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단네벨그의 시광은 비소 중독에 의한 것 때문이고, 좋아하는 배가 아닌 오렌지를 먹은 이유는 산토닌 중독으로 인하여 색깔을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레베스가 자살하도록 유도한 것은 자연광과 인공광에서 서로 다른 색깔을 나타내는 보석의 성질을 이용한 것이었다.

물론 사건의 줄거리와 전말이 상기한 바와 같이 단순하지가 않다. 범인은 끊임없이 바뀌고, 바뀐 범인에 대한 추리는 그때마다 현란한 사유의 결과로 나타난다. 암호와 신경병증, 히스테리의 비상식적 양태까지 추측하고 검토하여 지목하기 때문에 그 국면에서는 동기와 과정이 모두 범인으로 귀결되지만, 실제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나 독자는 끊임없이 혼돈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폐막 두 글자를 읽은 후에도 어리둥절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또한 사건에 기이한 면들에 대한 과학적 해석이 거의 예외적인 경우(실제 실험을 하면 거의 실현되지 않을 듯한)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공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일본 미스터리의 3대 기서로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지만, 전체적인 이해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다시 들게 될지는 자신이 없다. 그만큼 복잡하기 그지없는 작품이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656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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