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서쪽
구효서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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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안정된 직장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주인공 나에게 어느날 허경주라는 서른두살의 여자가 다가온다. 어찌된 속인지는 모르나 이 여자는 주인공인 나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일까지 알고 있다. 심지어는 열여섯살 이전의 기억을 모조리 잃어버렸다는 것 까지 말이다. 여자의 내밀한 제안에 나는 응낙하고, 그때부터 나의 생활은 모든 것이 바뀐다. 심상한 아내의 질문이 두려움을 넘어 짜증으로 이어지고, 부하직원의 불손한 태도도 나를 비난하는 것만 같다.

바람을 피우기 시작한 그때부터 나는 베트남 여행 중 만난 한국인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그에게 편지를 쓴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나에게 얘기해주는데, 온통 붉은 흙으로 뒤덮인 고향 마을에서 건실하게 살아오던 아버지가 자신이 열여섯이 되는해에 '붉은신장' 이라는 까닭모를 증상에 사로잡혀 방탕을 일삼다가, 배꽃이 만발하여 붉은색이 아닌 흰빛으로 가득하는 생명의 시기에 죽어버리고, 그 후 우여곡절 끝에 예금잔고를 찾아 베트남에 와 배 두척을 산다는 내용이다.

선을 정하여 만나던 허경주는 나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어하고, 나는 허경주와는 무관하게 다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한 사내가 자신을 잘 알고 있으며, 몇해 전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형에 관한 얘기를 해주고 싶다고 하는데, 그 얘기는 베트남의 그가 나에게 해준 내용과 똑같다. 그리고 나는 예금잔고를 찾아 배 두척을 살 결심을 한다.

 

소설은 우연과 주술적인 상징에 기대어 전개된다. 소설의 시작부터 자신의 책상에는 위치를 바꾸지 않는 물건이 있다며 척추의 적출물, 천체망원경의 미니어처, 두마리의 목각 코끼리 인형, 그리고 베트남의 그가 준 작은 광물을 꼽는다. 임순만은 해설을 통해 이것이 각각 생명, 정신, 노동의 가치, 세상의 본질 이라고 분석하나, 작가와 해설가 사이에는 그런 교감이 형성되었을지 몰라도 소설을 통한 형상화도 성공하였는지는 의문이다. '붉은신장'이라는 질병도 아니고 증상도 아닌 어떤 특수한 형태의 신내림 같은 것도 그다지 와닿지 않으며, '우연히' 만난 한 사내가 내가 16세 이전에 만났을 뿐인데도 단숨에 알아보는 상황 설정도 억지스럽기만 하다. 이야기들이 우연에 기대다 보니 자꾸만 주술적 상징으로 몰아가지만, 그렇다면 공감이 가야 하는데 억지스럽기만 하다. 특히나 베트남의 그의 이야기가 형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못을 박았으니, 그렇다면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내가 그렇게 살아갈 것을 예감하는 환상인지, 아니면 중년 남성이 일탈한 후엔 그런 삶을 살기 마련이라는 하나의 상징인지 그저 모호하기만 하다. 애드리안 라인의 <야곱의 사다리>처럼 환상과 알수없는 상징들이 현실을 통해 해석되고 이해되는 그러한 과정이 너무 부족하다.

 

구효서의 <라디오 라디오>를 꽤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 고른 소설이었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구효서를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작가가 소설만 써서는 입에 풀칠도 하기 힘들고, 그래서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일이 보통 결심으로는 되지 않는데 자신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가가 소설만 쓴다고 소설이 더 훌륭할 리는 없다. 카프카는 공무원으로 살면서 평생 자기직업을 괴로워했다고 하는데 부조리한 삶에 대한 통찰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지는 않았을까. 이외수의 <들개>에서는 새파랗게 젊은 작가 지망생이 폐교로 찾아들어가 속세와 단절을 끊고 아무런 호구책도 없이 글만을 쓰겠다는 내용이 나온다. 뼈를 깎는 고통이 있을지는 몰라도, 과연 그런 상황에서 쓴 글이 독자와 어떤 접점을 만들어낼까. 공감이 잘 가지 않는 모호한 내용의 소설이 만들어진 것이 그 실체없는 '전업작가'의 길을 걸어서는 아니었을지. 하지만 아직 단정하긴 이른 것 같다. 구효서의 소설은 몇 권 읽어보지 못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523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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