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문학.판 시 2
이성복 지음 / 열림원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참 이상한 꿈을 가졌다

 

                             외로운 사람은, 또한 신비롭다.

                             그는 언제나 물기에 찬 모습.

                                -고트프리트 벤, 「외로운 사람은」

 

본래 자화자찬 아닌 외로움은 없어서, 아무도 보는 사

람 없는 걸 알면, 그 으악새 슬피 우는 울음 딱 그쳐버리

거나, 자못 심각한 표정 거두시고 헤시시 웃는다. 본래

진기명기 아닌 외로움은 없어서, 한 공주 한 왕자 하고

나서도 고색창연한 연기는 계속된다. 제 연기를 고백하

는 연기, 제 연기를 부정하는 연기. 제 연기를 모독하고

타도하고 끝내 성화聖化 하는 연기. 외로운 사람은 끝없이 풍

선을 불어댄다. 그는 제가 부는 풍선 속으로 들어가려는

참 이상한 꿈을 가졌다.

 

아침에 차를 몰고 출근을 하는 날엔 최현정의 '세상을 여는 아침'을 듣는다. 라디오니까 목소리만 듣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는 모른다. 그냥 털털한 목소리와 말투로 상상해볼 뿐이다. 목소리라는 것에서 출발하여 외모도 공상해보고 성격도 떠올려본다. 그러다가 이성복 시인의 시집을 다시 읽는다. 시인이 평소 좋아하던 다른 나라 시인들의 시에 말을 붙여보면서 '대체 나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확인' 해보고 싶었다는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에 실린 '그는 참 이상한 꿈을 가졌다' 라는 시이다.

 

자화자찬. 자기가 그린 그림을 스스로 칭찬한다. 자기가 만들어낸 외로움을 자기가 칭찬한다. 외로우니까 우는게 맞지만, 아무도 안 볼땐 자기가 만들어낸 그 외로움의 모양새와 깊이에 스스로 만족하면서, 울기보단 웃는다. 진기명기 아닌 외로움은 없으니 외로움은 거창하다. 공주도 나오고 왕자도 나오고, 나 혼자서 그 외로움의 폭과 넓이라는 무대에서 마음껏 연기를 한다. 혼자서 연기를 하니, 또 다른 나는 그것이 연기임을 알고(고백) 그렇지만 온전히 연기만은 아닌 진정한 외로움도 어느정도 있으니(부정), 그리하여 순수한 외로움이 아니라고 모독하고 타도하다가 끝끝내 성화하는 연기. 외로운 사람은 풍선을 계속 불어댄다. 내 날숨에 의해 점점 커져서 그럴듯 해지는 풍선, 그 풍선은 언젠가 펑 터져버리겠지만, 자기가 부는 풍선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 그것이 사람의 심정일까. 어린애들이 죽을것 처럼 울다가 지쳐, 이제 더 울기도 힘들지만 엄마가 쳐다보니까 억지로 억지로 울음을 짜내는...

'자화자찬 아닌 외로움은 없'다는 인식은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좋을 뻔 했다. 시인은 먼 과거엔 예언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고 하는데, 사랑도 받았을지는 의문이다. 모두가 모른 척 하기로 약속한 것을 날카롭게 꿰뚫어보고 말로 표현해 버린다면, 미움받지 않았을까.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508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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