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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1995년, 대학교 2학년 때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뒷맛이 좋지 않았었다. 당시의 나는 인간의 자유란 '투쟁'을 통해서 '쟁취' 될 수 있는 것으로만 여겼던 때였다. 딱딱한 사고의 틀에 책들을 꿰어 맞추던 때였고, <그리스인 조르바>는 라쌀레의 조합이론쯤에 경도된 작가가 현실을 도피하는 내용으로 매도하였었다.
며칠 전 이웃에 사는 친구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싶다고 지나가는 말로 얘기하기에 나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을 꺼내보니 누렇게 변색이 되어 종이가 나달나달 하다. 새로 살까 하다가 역자가 이윤기임을 확인하고 조심조심 한장씩 넘겨가며 읽었다. 회사 끝나고 집에 돌아와 자기 전까지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다.
화자인 나는 그리스 독립투쟁을 위해 떠나는 친구와 헤어진 직후 크레타 섬에 갈탄광을 하나 세내어 들어온다. 나는 갈탄광에서 자신도 노동에 참여하고 수익은 노동자들과 공평하게 나누는 일종의 노동자조합 공동체를 이루어 '책벌레 족속들과는 거리가 먼 노동자, 농부 같은 단순한 사람들과 새 생활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으며, '내 삶의 양식(樣式)을 바꾸려고' 결심한다. 이런 그에게 수프를 기가 막히게 잘 만든다며 조르바란 사람이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말한다. '초인(超人)에 관한 야망과 충동에 사로잡혀...한계를 정하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인간적인 것과 신적(神的)인 것을 가르..'며 살아온 화자에게 조르바의 삶의 태도는 모든 면에서 신선하다. 그는 녹로를 돌리는데 방해가 된다며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내었으며 '침대에서 자신을 부르는 여자의 청을 거절할 남자는 신이 용서치 않는다며' 여관 주인인 과부 오르땅스에게 집적댄다. 케이블을 사러 갔던 도시에서는 창녀에게 7천 드라크마를 쏟아부어 노닥거리는가 하면 수도승에게 수도원을 방화하도록 조장하기도 한다. 독신(瀆神)을 주저하지 않고 오로지 현재에만 집중하는 그에게는 하나님이나 악마나 동일할 뿐이다.
말라르메를 읽던 어느날 나는 '그토록 나를 매혹하던 시편들이...지적 광대놀음, 세련된 사기극'임을 깨닫고, '충분히 먹고 마시고 사랑한 것도, 충분히 살아본 것도 아닌 상태에서 모든 것을 비운 공(空)의 상태인 부처에 너무 일찍 경도된 자신을 반성한다.
모든 것에 감탄하고 처음 본것처럼 신선함을 가지고 세상을 대하는 조르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되 스스로 부끄럽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살아가는 조르바의 삶이지만 나에게 있어 조국과 애국심은 여전히 깨어지기 힘든 영역이었다. 어느날 조르바에게 전쟁에 참가한 적이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 셔츠를 벗어던지고 총알과 칼로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상반신을 보여주며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준다. 비정규군으로 전쟁에 참여하였던 어느 날, 그리스인을 살해하는 불가리아 신부를 죽이게 된다. 얼마 후 다섯명의 아이들이 구걸하고 있는 것을 보고 누구냐고 묻는 조르바의 질문에 바로 얼마전 자신이 살해한 신부의 아이들임을 알게 된 조르바는 아이들에게 보급투쟁을 위한 돈을 모조리 털어준다. 그는 그 일 이후로 '조국으로부터 구제받고, 신부들로부터 구제받고, 돈으로부터 구제받아... 해탈의 길을 찾고 인간이 되었다' 고 말한다. 그는 '터키 놈, 불가리아 놈, 그리스 놈...하며 사람의 목을 따고 마을에 불도 지르고 강도질, 강간을 하며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하였'는데 그 이유가 '불가리아 놈, 아니면 터키 놈' 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 짓는다. "내 조국이라고 했소? 당신은 책에 씌어져 있는 그 엉터리 수작을 다 믿고 있소? ...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나는 그 후 마을의 과부에게 느끼는 자신의 욕망을 어느날 실현함으로서 형이상학의 세계에서 내려온다. 하지만 상사병에 걸려 죽은 청년의 아버지에 의해 과부는 다음날 처참히 살해당하고, 오르땅스 부인 역시 감기가 심해져 죽어버린다. 갈탄광이 수지를 맞추지 못해 벌채한 나무를 케이블로 실어 바다로 내려보내 수출하려는 계획도 실패하고 빈털털이가 된 나는 조르바로부터 해변에서 춤을 배운 후 다음날 헤어진다.
화자가 서른 다섯쯤의 일이며 작가 자신의 자전적 기록임으로 보아 이 책의 배경은 1919년부터 1922년까지의 그리스-터키 전쟁과 1929년 세계 대공황 사이로 보인다. 조르바가 읽었던 책은 '뱃사람 신밧드' 한 권 뿐이었다고 하지만 그는 전쟁이 누구 때문에 일어나는지, 제국주의자들의 이성없는 욕심에 희생되었던 것이 누구인지 스스로 체득한 것이다.
조르바의 경험을 읽으면서 김남주의 시 <예술지상주의>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부르조아 새끼들의 위선이 거만이 구역질나서 보들레르는/자본의 시궁창 파리 한복판에 악의 꽃을 키웠다/랭보는 꼬뮌 전사의 패배에 절망하여/문명의 절정 빠리를 떠났다/...대한민국의 순수파들 절망도 없이/광기도 자학도 없이 예술지상주의를 한다/..." 체험을 통해 남이 주입한 사상이 아닌 스스로의 머리와 가슴으로 삶을 살아가는 조르바, 그런 조르바를 보면서 형이상학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내려와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화자의 이야기 덕분에 일주일 내내 행복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고, 나도 조금은 더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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