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삶
안드레아 데 카를로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불가지론자이자 형이상학자인 주인공 지오반니의 자의식 충만한 넋두리다. 주인공이 한 여인과 여행을 떠난다. 나이 불명, 관계도 모호하다. 중간중간 문자나 휴대폰 통화를 하는 M과 G. Man과 Girl일까 생각했지만 G는 지오반니라는 이름의 남자, M은 여자이다. 70페이지 이상 읽었을 때에야 함께 떠나는 여인이 지오반니의 딸임이 밝혀지고, 2/3가량 읽었을 즈음 딸의 나이는 17세라는 것을 알려준다.

모든 것에 대해 자신의 신념과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지오반니이지만 실제 M과의 관계는 엉망이다. 주인공은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말하지만, 결국 그가 아는 것이라곤 '알 수 없다' 뿐이다. 그는 일제 지프차를 타고 160km로 달려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곳에 가면서 문명의 이기에 대해 비판하고 사물의 본질에 대해 알기 위해서 문명의 이기를 버려야 한다는 둥 모순된 태도를 취한다. 오히려 진실은 M의 입에서 나온다.

 

...휴가철도 아닌데 며칠간의 여행을 허락해 준 작은 직장, 은행 잔고가 두둑한 현금카드,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편안한 차와 연료통을 채울 기름, 지금 그곳에 당신을 가 있게 한 수많은 구체적 원인들이 없었다면 과연 당신 딸과 프랑스 해변을 마음껏 자유로이 달릴 수 있겠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겠어?

 

주인공은 그런건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형이상학적 질문에 답하는 것이 더욱 인간적이며 사물의 본질에 근접하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기 위해선 자신보다 어린 사람과 얘기해야 한다. 그래서 딸과 여행을 한다. 하지만 딸들이 아버지와 그런 대화를 하고 싶어하나? 현실에선 절대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는 주저주저 하며 딸의 반항 장면을 억지로 삽입해 밀어넣는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 전체가 틀어질 것 같다. 결국 자동차 사고를 끼워넣어 억지로 화해를 시키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작가의 역사 인식도 맘에 들지 않고, 주절 주절 떠들어대는 형이상학적인 불가지론적 태도도 맘에 들지 않았다. 더 넓게 보기 위해 인간이 직립보행 하게 되었다는 말에선 실소를 금치 못했다.

 

다만 읽으면서 끔찍했던 구절.

 

남자가 한 여자와 헤어진다. 여자는 이제 그의 단점을 모두 알고 있고 그로 인해 심신이 지쳤다. 남자는 곧 자신의 단점을 아직 모르는 새로운 여자를 찾아낸다... 그는 자신에게 형을 언도했거나 언도하려는 판사들과 채권자들을 피해 이 나라 저 나라 도망 다니는 18세기 한 범죄자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다른 나라에서 박해받고 피신한 망명자의 분위기 때문에 새로운 나라에서는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범죄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정말 훌륭한 사람으로 그를 바꿔놓는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이 돼서, 보다 깨끗하고 신뢰할 수 있는...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을 그에게 안겨준다...머지않아 그는 이전과 같은 범죄를 다시 저지르게 되고...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3100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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