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청소년 현대 문학선 8
김주영 지음, 정현주 그림 / 문이당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김주영에 대한 나의 평판은 대단히 호의적일 수 밖에 없다. 이문구가 극찬을 한 글을 읽고 난 후로 더욱 그러하다.

고등학교 때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TV에서 김주영의 <도둑견습>을 극화하여 방영해 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고 포복절도 했었는데 당시에는 그것이 김주영 소설이 원작인지 몰랐었다. 그러던 중 대학 선배가 <도둑견습>의 한 구절을 말하면서 꼭 읽어보라고 했었는데 그제서야 그 드라마가 김주영 소설임을 알았다.

그러던 중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와 <천둥소리>를 읽은 후로 참으로 작가다운 작가라고 흠모해 마지 않다가 <멸치>를 읽게 되었다.

주인공 대섭은, 명포수라 자처하나 실은 헛포수에 다름 아닌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 실망하여 집을 나간 어머니, 그리고 그 둘의 관계에 미묘한 선을 대고 있는 외삼촌 사이에 놓인 존재이다. 아버지와 외삼촌 모두 대섭에게 일정한 책임감을 느끼고는 있으나 그들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대섭에게 드러내 놓고 애정을 표현하는 법은 없다.

대섭의 아버지는 헛포수라는 이름을 떼어 내고 그럴싸한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선 멧돼지를 꼭 잡아야 한다. 멧돼지만 잡는다면 허명을 떨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을 나간 대섭의 어머니도 돌아오리라 생각한다. 반면 외삼촌은 멧돼지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대섭의 아버지를 신뢰하지 않기에 힘을 보태주지 않고 있다. 이 둘 사이를 오가며 관계의 회복을 바라는 대섭을 보면서 아버지와 외삼촌은 어쩌면 대섭의 바램대로 일이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드디어 멧돼지 사냥에 나선다.

결과적으로 멧돼지를 사냥해오긴 하지만 아버지가 쏘아 맞춘 것은 멧돼지의 급소가 아니었고, 멧돼지를 실제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외삼촌의 작살이다. 

이 소설에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대섭이 어머니의 행동이다. 피붙이를 떼어놓고 야반도주를 한 것이 대섭이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에서였다면, 대섭에 대한 애정은 어느정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머니는 끝내 대섭을 찾아오지 않는다. 결국 대섭은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작가 자신의 아버지가 부재했음이 문학적 근간으로 작용하는 것은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쨌거나 대섭은 어른이 될 테고 스스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멧돼지 사냥을 통해 깨닫게 된 삶의 진실은 결국 인간은 언젠가 혼자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아닐까.

 

http://blog.naver.com/rainsky94/800640104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