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밭 엽기전
백민석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00년 초판 발행의 <목화밭 엽기전>은 말 그대로 한창림과 박태자의 엽기적인 행각을 그린 소설이다. 

그들의 집은 과천정부종합청사와 서울대공원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과천정부종합청사가 권력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한 법적· 제도적 외형의 완성을 의미한다면, 서울대공원과 동물원은 인간의 야성을 모험과 폭력을 통해 안전하게 조절하는 공간이다.  

그들의 엽기적 행각은 시종일관 인간의 이성적 성취를 부정한다. 한창림은 절대적 힘의 우위에 있는 '삼촌'에게는 스너프필름을 찍어다 바치는 복종을 감수하는 반면, '뷰티풀 피플'의 남편이나 회계사에게는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힘을 통해 증명한다. 작가는 이들의 이런 엽기적인 행각을 그리면서 독자가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없도록 급박하게 전개시키는 한편 의도된 코믹적 상황도 간간히 끼워 넣는다. 그래서 독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구역질을 참기 보다는 오히려 한창림과 박태자의 엽기적 행각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라기까지 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들의 직업이 대학강사와 수학과외강사라는 점이다. 사회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위해 사회구성원을 가르치는 직업에 있는 그들의 본모습이 사실은 뒤뜰에 감금실을 만들어 감금·강간·살인을 일삼는 동물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90년 초 이성과 진보의 믿음은 무너지고 IMF라는 초유의 국가 비상사태까지 경험한 2000년대의 우리사회에서 작가가 이성과 진보보다는 파격과 환상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파격과 환상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폭력을 일삼던 주인공 알렉스가 지배구조의 체계적 폭력에 직면하여 완전한 인간성 파괴를 경험하게 되는 얘기에서 이미 다룬 모티프이다. 알렉스를 고문하면서 알렉스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폐인을 만드는 그 장면을 통해 감독은 구조적 폭력이야 말로 무서운 것이며 개인의 일상적 폭력은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면 여기서 독자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한창림과 박태자의 살인행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이다. '삼촌'으로 형상화되는, 이미 사회구성원에게 내면화되어 일상인들은 인식조차 하기 힘든 폭력과 한창림과 박태자가 미성년을 약취유인하여 강간살인하는 그 폭력은 분명 그 파괴력에 있어서는 다른 것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무척 유사한 그 두개의 폭력 외에 다른 폭력은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즉 '삼촌'과 닮은 것이 아니라 '삼촌'에 맞서는 폭력 말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05715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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