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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정련된 형식의 외설소설이다.
남편 효경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미흔은 그날로부터 자기 생의 기반이 없어진 여자처럼 두통과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이사간 곳에서 사설우체국(우체국에 다니는 나로선 이 단어가 자꾸 거슬렸다. 별정우체국이라고 해두자!) 국장인 규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규는 인생의 이면을 속속들이 간파해버린 사람처럼 의도적으로 삶을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다.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 과정은 물론 나로선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그 사랑의 행태는 파괴적이고 충독적이며 외설적이다. 둘은 모텔에서 한낮에 정사를 치루며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는 날 조차 고향집의 모텔을 찾아든다. 그러던 그들의 행보는 효경에게 들통이 나고, 효경은 미흔과의 관계의 무게를 확인하는 것이 의무인양 미흔을 폭행한다. 규는 이 사건 이후 소설에 등장하지 않고, 효경은 애증에 시달리는 삶을 한동안 지속하고, 미흔은 별정우체국에 취직하여 단순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작가 후기에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 아주 현실적이고 위험한 전형들... 사랑의 허구와 실재를 건드리고 싶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쾌락과 감상과 욕망의 비루함과 가벼움과 무상한 환멸을 기록하게 되었으니...', '더이상 감정적 모험은 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다짐처럼 최근 전경린의 작품을 보면 예전보다 덜 독하고, 예전보다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으며, 예전보다 사랑을 조금 믿는 것 같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작가가 적어도 이 소설을 쓰기 전까지 사랑이란 것을 진지하게 해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사랑과 욕망은 혼재되어 진정한 사랑과 진정한 쾌락이 때로 동일시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혼동을 바로잡을 건강한 삶의 전형 역시 비뚤어진 형태로 제시된다. 그리하여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구분하에 '사랑으로부터 상처 받음'과 '남성적 폭력성'으로부터 상처입음은 동일시 되고, 결국 휴게실 여자가 '가랭이 보시'하는 삶이 비뚤어지고 왜곡된 어떤 것이 아니라 이해될 수 있고 자연스러운 그것이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현실감을 느낀 장면은 효경이 미흔을 폭행하는 장면이었다. 내가 남성이고, 나도 모를 그러한 성향을 가져서는 아닐까. 그런 고민도 진지하게 해봤지만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그런 것이 바로 인생의 진실한 모습이며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비루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폭행 이후 효경과 미흔이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는 전반부의 주된 이야기보다 훨씬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전경린은 지금은 이 소설을 쓸 때보다 훨씬 더 깊어졌다. 나는 전경린의 소설을 또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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