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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 전12권 ㅣ 황석영 대하소설 1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대학 다닐때 동아리 사람들 사이에 대하역사소설로 제일 인기가 있었던 것은 단연 <태백산맥>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데, 나는 남들이 모두 읽는다는 이유로 <태백산맥>을 읽지 않고 송기숙의 <녹두장군>을 읽었다. 그리고 인기가 있었던 것이 바로 황석영의 <장길산>이었는데, 마찬가지 이유로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었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후 <장길산>을 헌책방에서 사다가 읽게 된다.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어릴 적 치기어린 자의식에 대한 씁쓸한 회환이 아닐까 한다.
장길산은 17세기 말 숙종 때 해서지방의 구월산을 거점으로 하여 활빈도를 표방, 전국적인 활약을 하던 인물이다. <장길산>에 묘사된 당시 사회상황을 보면 신분사회는 붕괴되고 상업자본이 새로운 세력으로 대두되는 시기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총포의 유통으로 인해 기존의 단병접전에 의지하던 전투 양상이 원거리 전투로 바뀌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을 우리나라에 있어 자본주의적 맹아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에 민중의 의식 역시 신분제사회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 '법률로 부터'의 자유를 인지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장길산>은 이러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광대 장길산 자신의 개인적 한과 울분을 민중의 시대적 염원으로 인식하는 단계까지 나아가 전국적 녹림당을 규합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의 초판년도가 1976년이니 꼭 내 나이만큼 오래된 소설이다. <장길산>의 문제의식과 시대를 70년대 남한사회에 투영하게 된다면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정권에서 몰랐을리 없다. 그래서인지 <장길산>을 읽다보면 뭔가 억눌려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저 이문구의 <오자룡>과 같이 직접적 탄압으로 필화 사건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을지라도, <장길산> 역시 수많은 외압 속에서 씌여졌을 것이다.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초반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각기 연계를 갖고 매끄럽게 이어져 나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묘옥의 경우 초반에 비중있게 등장하여 줄거리의 근맥을 이루는가 하더니, 후반부에 겨우 끼워넣기 식으로 등장하고 우대용 등 수적패들은 나중에 있었는지도 모를 인물들이 되버리고 만다. 또 검계와 살주계, 그리고 산지니 얘기는 작은 에피소드로 처리해도 되었을 것 같은데 무척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신문 연재의 땜빵용 얘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결국 초반부에는 <수호지>처럼 각 인물들의 출신과 사연을 들어가며 흥미를 돋우더니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인물들이 제각각 놀다가, 종장에 가서는 관군과의 변변한 전투도 없이 길산과 최형기의 개인적 대결로 마무리된다.
장길산은 임꺽정과 달리 역사적으로 죽음이 기록된 바는 없다고 한다. 결국 장길산은 잡혀 죽지 않았거나,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활빈당의 다수가 장길산을 표방하였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이렇듯 역사적 상상력이 허용하는 범위가 꽤나 넓은데도 후반부로 갈 수록 흥미가 떨어짐을 느꼈던 것은 작가의 역량 문제인지, 당시 권력의 외압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15년을 기다려 읽은 <장길산>은 썩 흡족한 느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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