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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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때, 보일러가 고장난 방에서 살았다. 어느해 겨울이던가 전기장판에 온몸을 이리저리 뒹굴려 가며, 추위에 떨며 생각했었다. 꼭 그럴싸한 '방'으로 이사가리라. 그러나 7년간 그 '방'에 살았고, 직장에 다니고 있는 현재도 나의 거처는 '집'이 아니라 '방'에 가깝다. 김애란 소설의 촛점은 '집'이 아니라 '방'이다. 김애란의 소설집을 벼르고 별러 산 이유가 그것이다.

가끔, 내가 지방의 그곳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대학을 다녔더라면 나의 인생이 어떠했을까 생각해본다. 그랬더라면 나의 인생도 '집'을 중심으로 이어져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난 인천으로 올라왔고, 나의 인생은 '방'을 중심으로 이어져가고 있다. '집'은 어쩐지 완결된 느낌, 안정된 느낌을 준다. 거기엔 가족이 있고, 돌아가면 불이 켜있을 것 같다. 그러나 '방'은 조금 쓸쓸하다. 돌아가면 불은 꺼있고, 내 소유의 무엇인가를 정해진 위치에 놓아둘 수도 없다. 잦은 이사와 이런저런 말썽들. 그런 신산한 느낌들은 쫓기는 듯한 느낌으로 자리잡는다.

김애란 소설은 이러한 '방'의 느낌을 정말 잘 살린 소설이다. 게다가 이 '방'들의 주인공은 현재, '집'으로 표현될만한 곳으로 가기 위해 '방'을 거쳐가는 중이다. '집'의 완결성, 정착성을 획득하기 위해 '방'의 주인공들이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은 취직이다. 정규직으로,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을 얻는 순간, 그들은 '방'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재의 그들은 그러한 정규직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중이므로, '방'에서 살며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학원 강사'등을 하고 있거나, 시험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시험을 준비해본 사람들은 알리라. 합격 이후의 달라진 상황들에서 한껀 고양된 감정을 맛보다가 추리닝 차림의 후줄근한 내 모습을 보고, 영원히 이런 상태가 계속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에 시달리는 그 달뜬 상태를. 그러나 그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기에 연애도 하고, 미래도 설계하고, 남들 하는 것은 다 하고 있거나 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슬프다. 피난민 살림은 언제나 '임시'에 불과하므로, 정말 구체적인 소망과 계획은 전부 보류되기 때문이다.

김애란 소설을 좋아하게 된 이유로 과도한 자의식의 배제이다. 젊은 작가, 게다가 순전희 나의 편견 상의 개념이지만 '여성 작가'가 이런 자의식을 절제한 글을 본 것은 오랫만이다.

아직은 젊기에 군데 군데 어색한 상황이나 표현도 눈에 띈다. <도도한 생활>에서 피아노를 삼촌과 여주인공 둘이 들어서 지하로 옮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경험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피아노는 전문인력이 아니라면 장정 둘이 위로 들어올리는 것도 버겁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에서는 '5급공무원시험준비'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역시 간접적인 경험에서 기인한 것 같다. 5급공무원시험이 바로 고시이며, 행시나 사시 등 시험의 종류로 구분해 부르거나 고시준비라 부르지 '5급공무원준비' 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그리고 막상 공무원이 되면 5급이라는 말 자체를 거의 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김애란의 소설의 미덕은 엄청나게 많다. <성탄 특선>에서 가벼워보이는 문체를 구사할 때 조차 기지가 번득여 결코 경박해보이지 않고, <칼자국>에서는 언뜻 김주영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원숙함마저 내비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052308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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