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3S라는 것이 있다. Sports, Screen, Sex. 군사독재정권이 국민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도입했다던 3S.

그 3S 중에서도 연고지별로 팀을 나누어 경기를 치루는 야구는 여러모로 그 기능을 톡톡히 해냈다. 지역별로 나뉘어 서로의 팀을 응원하는 시스템은 지역감정 내면화의 일등 공신이었고, 국민들의 삶에 대한 불만의 열기를 배출시키는 데도 결코 손색이 없었다. 유럽의 훌리건들의 행동 저리가라 할 굵직한 사건들도 있었으니 바로 상태팀 선수의 버스를 불태우는 사건이었다. 이렇듯 프로야구는 80년대 초반의 사회를 반영하는 축소판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의 시작 당시 열기는 2002 월드컵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동그란 종이딱지에는 선수들의 이름과 연봉이 적혀 있었고, 저녁때면 동네 슈퍼마켓 앞 평상에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삼진아웃 당한 타자를 죽일놈 살릴놈 해가며 열심히 응원했었다.

그런 '프로' 의 세계에 유독 별쭝맞은 팀이 하나 있었으니 삼미 슈퍼스타즈이다. 내가 기억하기로도 삼미는 참 지지부진한 팀이었다. 그때 당시 내가 8살이었나, 내 또래 애들은 물론 자기 연고지 팀을 응원하긴 했으나 삼미의 독특한 캐릭터(슈퍼맨)로 연고지 팀의 경기가 없을 때엔 삼미를 응원하는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삼미는 경기에 나가면 일부러 그러는 건지 매번 지기만 했다. OB를 상대로는 16연속 지기까지 했다.

이 책은 그런 삼미슈퍼스타즈에 대한 기록이자, 그 당시 삼미를 응원했던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프로가 아니면 나가 뒈져야 정상이라는 인식이 야구와 더불어 국민들의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박민규는 아프리카의 가공의 야구단을 얘기하면서 이를 희화화 하는데, 순위가 이미 결정된 팀이고 이기고 있는데도 감독과 코치는 선수들에게 쪽지를 건낸다. '총체적 위기상황' 이니, '전 선수가 융합해야 하느니' 하는 쪽지들인바, 선수들은 영문은 모르지만 어쨌든 그 실체없는 위기상황을 내면화 하고 죽어라 달리고 죽어라 배팅하고, 삼진이라도 당하면 아주 죽을 맛이 된다. 엄청난 점수차로 이기지만, 선수 중 아무도 그 위기의 실체를 파악한 사람도 없고, 순위는 그대로이고, 감독은 골프를 치러간다. 그것이 우리의 80년대였다. 파이를 크게 만들어서 나누어야지 지금 나누면 죽도 밥도 안된다는 논리로 국민들은 죽어라 일만 했는데, 이제 나눌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90년대에 들어서자 IMF가 터졌다.

박민규는 그런 웃기지도 않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삼미슈퍼스타즈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팀을 통해 날렵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당신들의 승률, 바로 1할 2푼 5리는 정상이라고 말해준다. 왜냐면 우리는 프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민규의 이 책은 이런 점에서 무척 위험한 책이다. 이기는 팀이나 응원할 것이지 엉뚱하게 맨날 졌던 삼미슈퍼스타즈가 정상이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해 버렸기 때문이다. 예전의 안기부가 있었다면 잡아갔을 것이다. 다운시프트적 결론에 실망하긴 했지만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삼미슈퍼스타즈와 인천 얘기에 간만에 유쾌하게 읽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0510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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