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쏭바강 외 - 한국소설문학대계 75
박영한 / 동아출판사(두산) / 1995년 7월
평점 :
절판


어느 작가의 초기작들을 읽으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경우가 누구나 있겠지만 나의 경우엔 신경숙과 은희경이 그렇다.

그들은 그들이 써야할 말들이 스스로 넘치고 넘쳐 초기에 모든 것을 쏟아낸 후, 사그러져 버렸다고 느낀다.

신경숙은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기점으로 힘이 빠져버렸고, 은희경은 '새의 선물' 이후로 심하게 얘기하자면 그저그런 만담꾼으로 그치고 만 것 같다.

반면에 전경린은 시간이 흐를수록 훌륭한 글들을 써낸다. 더 이상 남자들을 경원하지 않는 듯 하다.

 

그런데 박영한은 위에서 말한 훌륭해지느냐, 아니면 기운이 빠져버렸느냐의 범주가 아니라 전혀 다른 작가가 된 듯 하다.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은 '왕룽 일가', '우묵배미의 사랑' 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소설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가 작가가 되면, 흔히들 다른 작가들이 그렇듯, 꼭 써야 할 경험이 있었을 것이고 박영한의 경우엔 그 경험이 바로 베트남 참전이 아니었나 싶다. 베트남 전쟁과 같은 이야기를 '왕룽 일가' 의 천연덕스러운 만연체로 써내려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경험을 바탕으로 쓴 초기작이라 그런지 소설은 일관된 흐름에선 부족한 면이 있다. 전쟁의 부조리함을 느끼고는 있지만 정확한 부조리의 근원을 파해치기엔 작가 박영한의 정치적, 세계사적 식견은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이나 안정효의 '하얀 전쟁' 에 비하면 부족한 감이 있다. 따라서 부조리는 말 그대로 부조리일 뿐이다. 전쟁의 정확한 원인을 느끼고는 있으나 그걸 설명하지는 못한다. 거기에 빅 뚜이와의 연애담에 가서는 약간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박영한은 '머나먼 쏭바강', '아라베스크' 의 박영한이 아니라, '우묵배미의 사랑' 의 박영한이다. 박영한은 그 한편만으로도 나의 책꽂이에 꽂혀 있을만 하다. 일찍 타계하지 않았더라면, 2000년대의 우묵배미 이야기를 기대해 볼 수도 있었으련만...

 

1,2부 합본으로 착각하여 산 책인데 1부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대신 '지상의 방 한칸'과 '우묵배미의 사랑' 이 수록되어 있음.

 

http://blog.naver.com/rainsky94/80048513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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