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 ㅣ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 6
이문구 지음 / 돌베개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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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는 또래보다 늦되는 축이라 책 읽는 재미를 안 것이 나이 열두서너 살 어간이었다고 회상한다. 동네에 책 읽기 좋아하는 양반이 있어 그 집에 가서 <유충렬전>, <옥단춘전>, <임경업전>, <장화홍련전> 따위 육전소설을 빌려다 유창하게 읽었는데, 마을꾼들이 듣고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우스운 대목에서는 열두 가지 소리로 웃고, 욕할 대목에서는 욕해가며 들었다.

그러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제대로 된 소설책을 접했다. 그 뒤 고대소설에서 현대소설로 취향을 옮기게 되었다.

이문구는 소설의 재미가 줄거리에 있는 것이 있고, 말이나 문장에 있는 소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20살 때 읽은 채만식의 <태평천하>를 후자에 속하는 작품 중 백미로 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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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 아버지는 해방 이후 남로당 보령군 총책을 맡았다가 전쟁 중에 사망한다. 두 형 역시 이문구가 아홉 살 때 사망했고 어머니는 6년 뒤에 돌아가셔서 사실상 가장 노릇을 해야했다.

이문구는 중학교를 마친 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궂은 일을 하다 훈장질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한다. 그리고 평생을 스승으로 생각하고 모신 김동리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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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는 이문구의 문체를 매우 특이하게 여겨 시험문제로 이문구의 글을 출제하기도 했으나 칭찬에는 매우 박했던 것 같고, 추천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5년 동안 39편을 쓰고 10편을 스승에게 보여주었지만 한 장 이상을 읽어준 원고는 두 편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65년 9월 현대문학에 <다갈라 불망비>를 초천해준 직후 스승이 건낸 말은 "10원짜리 막소주 한 고뿌씩만 할까?" 였는데, 이문구는 김동리가 그날 참으로 다정했다고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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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 18년을 마치고 이문구는 귀향을 했다. 하지만 나고 자란 고향으로의 귀향은 아니다. 이문구가 살러간 곳은 화성군 향남면 행정일리, 정작 충청도 대천에서 치면 천리타관인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구는 이 곳을 자신의 동네로 여겼다.

1972년부터 쓰기 시작해 1977년에 마무리되는 <관촌수필>이 나고자란 고향 보령을 배경으로 쓰였다면, 1977년부터 쓰기 시작해 1981년에 끝이 나는 <우리동네>는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 화성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우리동네>는 우리동네 김씨, 우리동네 이씨 하는 식으로 소제목이 붙는데 유독 등장하지 않는 성씨가 박씨다. 박씨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소설을 붙잡고 기관원이 불러다 매일같이 불순한 의도가 있지 않았는지 귀찮게 하니 그 뒤로는 박씨성 가진 이를 소설에서 싹 빼버렸기 때문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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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과 대학시절, 화성에서 살던 <우리동네> 시절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 말에 대한 애정과 시류담 등이 섞여 있는 이 수필집은 한 번 읽어서는 안 되고 여러번 다시 읽어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아름다운 우리말과 방언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처음엔 갸우뚱 하며 읽은 문장도 곱씹다 보면 '맛'이 살아난다. 이문구 앞에 이문구 없고, 이문구 뒤에 이문구 없다. 우리 문단에서 이문구가 차지하는 영향력을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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