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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관계
피에르 쇼데르로스 드 라클로 지음, 박인철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사교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선수가 있으니 발몽 자작과 메르테유 후작 부인이다. 이 두 사람은 한때 연인관계였지만 지금은 발전적 이별 수순을 거쳐 각자 독자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메르테유 후작 부인이 정숙함을 내세워 준수한 평판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발몽은 사교계 부인들 사이에서 악명이 자자하다는 정도이다. 발몽은 이별 후에도 메르테유 후작 부인과 불장난을 계속하고 싶어했지만, 메르테유 후작 부인은 줄 듯 말 듯한 태도로 발몽의 애를 태웠다.
그러다 메르테유 후작 부인의 옛 애인 제르쿠르 백작이 어린 세실과 결혼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부인은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다. 울화가 치민 그녀는 즉시 발몽을 불러 세실의 처녀성을 앗은 뒤 타락시킨다면 포상품으로 자신의 육체를 다시 한 번 맛보게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이 시기 발몽은 정숙한 투르벨 법원장 부인을 꼬드기는데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투르벨 부인에게 발몽이 난봉꾼이라는 사실을 일러바쳐 일을 망치려 드는 이가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세실의 어머니 볼랑주 부인이었다.
이에 발몽은 세실의 신세를 망쳐 볼랑주 부인에게 복수를 하고, 아울러 처녀인 세실의 정조를 유린하는 재미도 보는 일석이조 사업에 뛰어든다. 아울러 스스로 도전과제로 정한 투르벨 법원장 부인 정복에 성공하면 메르테유 후작 부인의 육체도 차지할 수 있을 터였다.
한편, 세실이라는 처녀는 수녀원에서 지내다 와 세상 물정에 어두운 아가씨였다. 그녀는 제르쿠르 백작과 혼담이 오갔지만 메르테유 후작 부인이 우연을 가장해 소개해 준 당스니 기사에게 한눈에 반한 상태였다.
발몽은 이런 사실을 적극 활용, 세실과 당스니를 맺어주는 연락책 역할을 자처하여 환심을 산 뒤 어느 날 세실의 정조를 유린한다. 세실은 발몽에게 몸을 맡겨 점차 타락하다 끝내 임신하고 만다.
발몽은 메르테유 후작 부인의 용역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투르벨 부인을 향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처음엔 바늘 끝 들어갈 틈이 없던 투브벨 부인도 계속되는 공세에 차츰 마음이 말랑해지더니 어느 순간 유혹을 거절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다. 결국 그녀는 몸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여 발몽 곁을 떠난다.
발몽은 이때부터 깊은 병이 든 것처럼 위장하여 투르벨 부인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고 갖은 핑계를 대어 만남을 유도한다. 마침내 투르벨 부인을 다시 만난 발몽은 그녀에게 버림 받는다면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식으로 협박해 마침내 그녀를 차지한다. 저항을 포기한 투르벨 부인은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발몽에게 고백하고 만다.
이제 메르테유 부인의 용역과 스스로 설정한 과업을 모두 처리한 발몽은 그녀의 육체를 당당하게 요구하는데, 메르테유 부인은 어찌된 일인지 차일피일 용역대금 치루길 미루었다. 그러면서 발몽에게 '선수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하찮은 연애에 빠진 건 아닌지, 즉 트루벨 부인을 일종의 트로피로 여기지 않고 정말로 사랑하게 된 건 아닌지 묻는다. 자존심에 타격을 입은 발몽은 다른 여인과 육체관계를 맺는 등 선수로서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메르테유 부인은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어렴풋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팽개치고 선수로서의 자존심을 택한 발몽은 투르벨 부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충격을 받은 투르벨 부인은 수녀원으로 가버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혼절하여 횡설수설하는 등 심하게 앓는다.
그런데 메르테유 부인은 어디에 정신이 팔려 있었을까. 그녀는 다름 아닌 당스니에게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세실과 관계가 소원해진 당스니를 어르고 달래 수차례 관계를 맺었고, 이를 발몽에게 자랑까지 했다.
어느 날 발몽이 메르테유 부인을 찾아갔다가 당스니를 발견하고 오쟁이 진 남편처럼 난리친다. 발몽과 메르테유 부인은 서로를 비난하다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다. 발몽은 당스니를 다시 세실에게 보내 메르테유 부인의 자존심을 자극하고, 메르테유 부인은 당스니에게 세실을 타락시킨 불한당이 발몽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당스니가 발몽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이를 받아들인 발몽이 치명상을 입고 사망한다. 발몽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투르벨 부인 역시 수녀원에서 숨을 거둔다.
발몽으로부터 편지 묶음을 건네받은 당스니는 메르테유 부인의 실체를 알게 된다. 당스니는 모든 것을 잊고 떠나기로 결심하고, 세실도 수녀가 되기로 작정한다.
메르테유 부인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이 돈다. 결국 왕따가 되어 사교계 퇴출 위기에 처한 그녀 앞에 과거 자신이 정절을 증명하기 위해 바보를 만들었던 프라방 기사까지 나타난다.
이후 송사에 시달려 빈곤해지고 천연두에 걸려 눈알이 빠진 기괴한 몰골로 변해버린 그녀 얼굴에서 귀부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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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2년에 출판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위험한 관계>는 서간문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돈키호테> 처럼 발행인이 '사실 여부를 보증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아 놓았다.
사교계의 선수 발몽은 여인을 정복하고 가차없이 버림으로서 자긍심을 만끽하는 인물이다. 그가 느끼는 자긍심의 이면에는 나르시시즘이 자리하고 있다. 여인을 차지하는 데서 느끼는 성취감 보다, 그 여인을 버리는 자신의 가차없는 모습에 오히려 매력을 느끼는 나르시시즘 말이다.
그는 이 나르시시즘의 충족을 위해 끊임 없이 스스로 부여한 과업을 수행한다. 세실을 타락시키는 단순용역에 만족하지 않고 정조 높은 투르벨 부인을 공략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는 투르벨 부인을 버린 뒤에야 자신이 그녀를 사랑했음을 깨닫는다. 바로 이때 그의 정신과 자아가 붕괴된 걸지도 모른다. 당스니에게 치명상을 입어 육체가 죽은 것은 이 정신붕괴에 연이은 수순에 불과했을지도.
18세기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심리 묘사가 빼어나고, 이성을 공략하기 위한 공방전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어 25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세월을 견딘 걸작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작품.
작품 원제는 Les Liaisons dangereuses 인데 Liasion 의미에는 '은밀한 정사', '부적절한 성관계' 등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449077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