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누군가를 만나 사랑할 수 있을까
임영태 지음 / 창해 / 2000년 2월
평점 :
절판


한하기는 10년째 목장을 운영하며 조용히 생활하고 있다. 아내는 아이를 잃고 난 뒤 자살 시도 끝에 정신을 놓아 버렸다. 둘 사이에 대화는 거의 없었다. 젊었을 적 이상과 꿈은 스러져 가뭇 없어진 지 오래고, 정념도 갈망도 없는 나날의 반복되었다. 그것이 한하기에게 남은 인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손찌검으로 결혼생활에 파경을 맞게 된 차영서가 우연히 목장에 들게 된다. 둘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끌렸다.

한하기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피를 돌게 하고 근육을 부풀게 함을 느낀다.

한하기는 사춘기 소년처럼 얼굴 붉혀가며 차영서를 그리워했고, 말로 내뱉어지지 않는 내밀한 의사를 읽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차영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이라는 제약 때문에 사소한 어긋남이 생기고 관계의 지속이 어려워지자, 한하기는 약사라는 사소한 단서 하나를 쥐고 서울 동네를 이 잡듯 뒤지기까지 한다.

마침내 다시 만난 둘은 앞으로의 인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다. 각자 신변을 정리한 뒤 만나기로 한 날, 떠나려는 한하기에게 아내가 인사를 건낸다. 불구가 되어 의사표시도 온전하게 하지 않던 아내의 '잘 갔다오라'는 그 말에 한하기는 멈춰선다. 그리고 자신이 꿈 꾸었던 다른 생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직감한다.

미안하다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수밖에 없다는 한하기의 말에 차영서가 고속도로를 타고 떠난다. 발작적으로 한하기는 그 뒤를 쫓는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어쩌려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한하기는 트럭의 속도를 높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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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어느 마을에 립 밴 윙클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사냥을 나갔다가 네델란드인(유령)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논 뒤 잠에 든다. 깨어나 집으로 돌아와 보니 20년의 세월이 흘러 미국은 독립이 되어 있었고 자신은 백발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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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워싱턴 어빙이 1819년에 쓴 단편 <립 밴 윙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그저 신비로운 이야기로 여겼다. 그런데 나이를 먹은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새로운 사랑에 대한 알레고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처가인 립 밴 윙클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누군가와 새로운 사랑을 꿈꾸다) 돌아와 보니 미국은 독립이 되어 있고(모든 것이 달라져 있고), 자신은 백발이 된(더 이상 정념을 불태울 수 없는) 상황.

문제는 립 밴 윙클이 만난 사람들이 유령(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고, 되돌아온 그는 더 이상 누군가를 만나 사랑할 수 없는(호호백발) 상태가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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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소설은 이디스 워튼의 <이선 프롬>의 결말을 복기하게 만든다. 얽어맨 인연을 끊어내려 했으나 또 다른 수렁에 빠지고 만다는 음울한 결말의 걸작. 그것이 사랑이 변질되어 가는 필연적 속성이라면 인간의 삶은 얼마나 불가해한 것인가.

그런 음울한 생각 끝에 양희은의 노래를 차용한 <다시 누군가를 만나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으면서 제목 앞에 '죽기 전에'를 붙여도 이야기가 되려나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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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어 가며 읽었던 구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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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깨달음이란 결국 한번은 비약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걸 내가 느끼게 된 것은 그 오랜 후였습니다. 육화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일종의 관통이 있어야 된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 한순간에 중심을 질러 이 세계의 배후, 생의 핵심과 대면합니다. 이를테면 시적인 비약이지요. 바로 그때, 한 사람이 서늘히 전율하면서 제 생의 중심에 도달합니다.(89-9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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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호수라는 지명이 옛이야기 속의 이상한 마을 이름처럼 느껴졌다.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나올 수 없다는 마을.(120-1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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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꿈틀거림, 세포가 새로 생성되고 근육의 힘줄이 다시 팽팽해지고 있는 듯한 기분을 한하기는 느꼈다. 자기 안의 무언가가 빠르게 재배치되며 새로운 물질로 변형되고 있었다.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실제적인 진행으로 한하기는 그것을 느꼈다. 그건 분명 육체의 거듭남이었다. 어떤 소멸과 어떤 생성의.(1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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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서라는 여자가 자신에게 다가온 또 하나의 운명인 것은 분명했다. 그 운명을, 운명으로 만들 것인가 스쳐보낼 것인가. 그 선택은 이제 한하기가 자기 삶에 어떤 색깔을 칠하고 싶은가에 달려 있었다.(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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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만드는 의미는 언제나 실제의 의미를 쫓아가지 못합니다. 의미가 극적일수록 말은 제한적이에요. 우리 삶 중에 어떤 순간들에 대해서는 그래서 말을 아껴야 하지요. 그 순간에 담겨 있는 진정으로 신성한 의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요. (1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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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노래(1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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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없는 행위는 그 맹목성만으로 진실이 된다. 사랑이 바로 그렇다. 사랑은 사랑이어서 스스로 진실인 것이다. (2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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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야하는 말이에요(2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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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rainsky94/224439894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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