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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 교유서가 소설 ㅣ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송지현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김장
할머니 건강이 예전과 같지 않아 '나'와 동생이 김장에 차출된다. 동생이 일찌감치 올라가고 '외가를 통틀어 회사고 가게고 아무데도 안 가는 사람'인 나만 할머니 곁에서 며칠 더 머문다. 전쟁통에 할머니가 캔 뚜껑에 달린 고리를 줍다가 시체를 발견한 시내는 물이 말라 물줄기 몇 개가 갈라져 흐르고 있을 뿐이고, 옆옆집 손자 성철이는 그 며칠 새 목을 맸다. 하루에 자살하려는 사람 세 명을 기차로 친 삼촌의 방에서 김전일 만화를 보던 나는 끝내 범인이 누구였는지 생각해 내지 못한다. 산딸기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려던 '나'는 산딸기가 여름에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밤 맥주라도 마실까 하고 점방을 향해 걸어간다. 멀리서 보면 어둠을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난쟁이 그리고 에어컨 없는 여름에 관하여
'아주 작은 슬픔들의 결정체가 인간이다'
그 문장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을 즈음 아티스트 네트워킹 이라는 이름의 판티에서 제이를 만난다. 파리에서 학사를, 교토에서 석사를, 마드리드에서 1년간 살다 최근 귀국한 캐나다 교포 2세라던가, 영어도 불어도 스페인어도 못하고 한국어 발음도 어눌한 제이라든가, 그런 자들의 파티였다. g라는 이혼녀도 있었는데 남편과 헤어진 뒤 고양이도 유기하고 아이도 학대하는, 술주정이 심한 여자였다.
그 즈음 '나'는 에어컨 배관 구멍 사이로 난쟁이가 '......엔 날개가 없다......은 추락' 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황을 곱씹고 있었다.
프랜시스 퐁주의 시를 읽고 잠든 다음 날, 제이가 나에게 버선을 선물했다. 제이는 떠나기 전 그 선물과 함께 '미끄러져봐'라고 말했다.
나는 올여름엔 꼭 에어컨을 설치하리라 마음먹었다. 작은 것들에 잠식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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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은 애정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부초>를 쓰기 위해 그가 유랑극단을 따라 다니며 치열하게 취재한 대목 만큼은 높이 산다.
나는 책상에서 쓰여진 글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하는 관념적인 글들.
송지현의 글들을 읽다 보면 책상에서 쓴 글이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디테일에 대한 허술함에서 특히 그렇다.
6.25 전쟁 당시 할머니가 캔 뚜껑의 고리를 모으다 뜬금없이 시체를 발견하는 대목. 그 당시엔 '캔 뚜껑의 고리'도 없었지만, 도대체 어떤 경우에 전쟁중인 촌 동네 시냇가 시체 위에 '캔 뚜껑 고리가 수북이 쌓'이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삼촌은 하루에 세 번 기차로 사람을 치었다는데, 기관사가 사람을 치면 사고 충격과 후속 절차를 위해 운전 업무에서 배제된다. 그러므로 세 번을 치고 싶어도 칠 수가 없다.
소아암 환자의 생존율은 생각보다 높아서 제이 혼자 생존한 어린이가 되는 상황은 꽤나 희박한 확률이 필요하다.
<김장>에서 여성은 음식으로 이어져 있다. 그들은 가족을 먹이고, 연결시키고, 화해하는 사람들이다. 딴 돈은 기꺼이 나누어 준다. 반면에 남성들은 누군가를 죽이거나(삼촌), 자신을 죽인다(성철). 그런데 남성들의 죽음을 묘사하는 방식이 사이코패스적이다.
"오늘 아침에 산보를 갔는데 말이다. 다리 밑에 있었어."
"뭐가?"
"성철이가."
"그게 누군데? 근데 성철이가 다리 밑에 뭐하고 있었는데?"
"목메고 죽어 있더라."
손자뻘 되는 이웃이 자살을 했는데 할머니가 이를 묘사하는 방식은 다리 밑에서 재활용 쓰레기가 떨어져 있는 걸 봤다는 식이다. '나' 역시 죽은 이의 집에 김치통을 내려놓고 기껏 폐가 체험을 떠올리며 으스스할 뿐이다.
할머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인간의 죽음 앞에서 상식적인 태도를 보이지 못하는 것은 어떤 '주의'에 경도되서일까, 아니면 작가의 마음 어느 부분이 고장나서일까.
유일하게 괜찮았던 대목은 '나'의 어머니가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카페 사장과 화해하는 에피소드였다. '나'의 어머니는 카페 여사장의 손자들이 너무 귀여워 과자와 사탕을 주었다가 걸려서 만두를 받고 화해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080228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