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의 새
김성동 지음 / 책세상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소설 말미에 <간추려본 발자취> 가 실려 있는데, 이는 작가 자신의 인생 기록이다. 김성동 소설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소설에 반복적으로 녹여내는데, 그 변주의 범위가 넓지 않다.

김성동은 1947년 음력 11월 8일 충남 보령군 청라면 장현리 구렛굴에서 태어났다. 1950년 6.25가 터지면서 48년 가을 예비검속으로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아버지와 인민공화국 시절 조선민주청년동맹 위원장을 하였던 큰삼촌이 우익한테 학살 당했다. 한편, 면장을 하던 외삼촌은 좌익한테 학살 당했다. 김성동의 아버지는 아마 경성콤그룹 계열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아버지 탓에 얼떨결에 민주여성동맹 위원장 감투를 잠깐 썼는데, 이 일로 성폭행을 포함한 모진 고문을 당한 것으로 보인며 임종 시까지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할아버지로부터 진서(眞書)를 배운 김성동은 1958년 대전으로 이사를 간다. 어느 날, 사내들이 찾아와 할아버지에게 종주먹을 들이대며 '경찰에 신고는 했는지 묻는' 사건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만화에 빠져들었고, 재미 삼아 이야기를 지어보기도 한다.

입학금, 육성회비, 사친회비, 월사금을 마련하기 어려웠던 김성동은 1960년 삼육고등공민학교에 들어간다. 그곳은 검정고시를 봐야 중학교 졸업자격이 주어지는 학교였다.

1960년 3월 8일과 10일 자유당 일당독재를 규탄하는 데모에 참여하고 집으로 돌아가니 김성동의 할아버지는 不是水면 便是石이니, 夜不踏白이라는 말만 읇조린다. "물이 아니면 돌멩이니 밤에는 희게 보이는 것을 밟지 말라"는 말로, 아들들을 좌익과 우익에게 희생당한 할아버지가 이데올로기 싸움의 미친바람 앞에 위태로운 손자의 처지를 걱정한 말이었다.

1961년 5.16이 일어나자 할아버지가 대공과 형사들에게 예비 검속되었다 풀려난다. 삼육공민학교는 끝내 졸업하지 못하는데 월사금과 졸업비, 졸업앨범값을 못 냈기 때문이었다.

1964년 어머니와 누나 세 식구가 서울로 이사간다. 서라벌고등학교에 거금 8천원을 주고 '야미'로 들어갔는데, 1965년 3학년 1학기에 산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평북 정주 출신으로 오산학교를 나오고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노사(老師)를 만난다. 김성동은 <내가 학교를 그만두는 까닭>이라는 장문의 자퇴서를 내고 노사를 따라 도봉산 천축사로 간다. 공무원이 될 수 없고, 장교가 될 수 없으며, '고등고시 패스'를 해도 임관이 안되는 '삼불(三不)의 덫'에 치인 출신성분으로 해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김성동은 이를 '위장입산' 이었다고 자조섞어 이야기한다.

1966년 수계를 한지 한 해 만에 산을 내려간 뒤 여러 절을 객승으로 떠돌기 시작한다. 1974년 경기도 안성의 칠장사에서 대보살 딸들인 여대생 두 명을 만나고 이 중 한 여대생에게 설렘을 느낀다. 그녀가 노래 하나 불러보라는 말에 김성동은 염불밖에 못한다고 하자 여대생이 "노래와 염불이 어떻게 다른가요? 세상이 슬프고 세상이 괴로와서 울부짖는 중생들한테 이 소리를 듣고 잠시라도 그 슬픔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하는 것이 염불이라면, 똑같은 것 아닌가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 순간 벼락을 맞는 느낌이었다고 김성동은 술회한다. 그녀로부터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쓴 <문학을 지망하는 청년에게> 번역본을 선물 받은 김성동은 얼마 뒤 <주간종교>지의 <종교소설 현상모집> 사고를 보고 백이십 장짜리 소설 <목탁조(木鐸鳥)>를 써 공모하여 당선된다.

하지만 불교계의 어두운 면을 조망한 소설이라는 이유로 조계종 감찰원에서 출두 명령서가 날라온다. 무술승려인 감철원 간부들은 김성동을 을러대며 4대 일간지에 사과 광고를 내라고 핍박했다. 조계종은 김성동에게서 '쯩'을 빼앗아버린다. 이로써 김성동은 역사상 최초 무승적제적자가 되고 만다. 조계종은 모든 절에 '김아무개를 승적에서 제적했으니 숙식 제공을 하지 말것이며, 숙식을 제공할 경우 해종행위자로 간주하여 징계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1976년 하산한 김성동은 대한기원 기관지 <기도(棋道)> 기자 시험에 합격한다. 이듬해 <바둑>지로 기관지가 통폐합 되는데, 이때 시인이자 소설가인 송기원에 대해 듣게 된다. 누군가 '송기원은 작품 집필에 전념하기 위하여 직장을 그만둔다'고 한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김성동은 <바둑>을 그만두고 한 동안 집필에 골몰한다. 하지만 밥벌이에 쫓겨 다시 <공간>, <물가정보>, <여원> 등의 잡지사를 전전하다 <어느 호스테스의 수기> 따위 황색 기사를 써야하는 상황에 몰리자 다시 직장을 때려 치우고 산사와 바다를 떠돌다 자살기도를 하는 등 방황한다.

그러다 <한국문학>사에서 뽑는 <백만원고료 신인상>에 응모한 것이 중편 <만다라>다.

수록된 소설은 <간추려본 발자취>의 어느 대목들이 조금씩 녹아들어 있다.

<엄마와 개구리>는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처형되고, 어머니가 서북청년단과 경찰들에게 성폭행과 고문을 당해 후유증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어린 영복이의 불안과 공포를 그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별>에서도 반복되는데 예의 배앓이로 죽을 것처럼 울부짖는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를 찾아나선 영복은 홍등가에서 돌팔이 침쟁이를 찾아 데려온다. 돌팔이 침쟁이는 '어머니가 예쁘냐'고 묻고, 영복은 어머니를 고쳐주면 아버지라 불러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니 평소 어머니를 노리던 덕금이 아버지가 어머니를 병원에 데려갔다고 했다.

<먼 산>과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는 1974년 칠장사에서 만난 여대생을 소재로 쓴 소설이다. <먼 산>에서 '나'는 어설픈 중노릇을 하고 있는데 우연히 열여섯의 길인례라는 불구 처녀아이를 만난다. 그녀는 '나'에게 자고 싶다, 아이를 낳고 싶다,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진 내 아이를, 따위의 말을 했다. '나'는 그녀에게 욕정이 일었지만 끝내 견뎌내고 새벽을 맞는다. '나'는 당시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패배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는 직장을 때려 치우고 은박지에 시를 끼적이다 한 여성을 만나는 이야기다. 아마도 1974년의 기억이 꽤나 강렬했었나보다.

<假淑의 땅>은 나이만 다를 뿐 또 다른 영복의 이야기다. 팔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할머니만 남아 집을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큰 일 할' 손자를 기다리다 먼저 떠났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또 다시 예비 검속에 걸려 8년간 지내던 그곳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가 된다.

<山蘭> 역시 '절에 가 있는 영복' 버전이다. <異人을 기다리며>는 老師를 만나는 이야기이고, <燈>은 부처를 만나러 온 범죄자를 내쫓는 중들 이야기이다. 개심의 마음을 먹고 절을 찾아 왔으나 도둑으로 몰린 전과자를 보며 '나'는 그를 위해 발명을 하지 못한다. 그가 설혹 돈을 훔치러 왔더라도 '날카롭게 수입을 챙긴 사람은 일찍이 초저녁에 산을 내려가 저자의 안가로 숨어'버렸기에 허탕쳤을 것이었다.

표제작 <彼岸의 새>는 <목탁조>를 발표하여 '쯩'을 빼앗기고 보살전인 극락사와 같은 곳을 전전하며 목탁노동자로 밥을 빌어 먹고, 점술과 부적판매로 돈을 챙기는 사제불교계의 실태에 넌덜머리를 내는 저간의 사정이 적혀 있다. '보리(菩提)'라고 부르고 싶은 과거의 여대생에게 편지를 보내며 삶의 근원적 외로움과 고통을 고백하는 자전적 이야기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28347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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