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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무 살 생일 날, 그녀는 롯폰기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원래는 친구가 대신해 주기로 했지만, 감기가 도져 몸져 눕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레스토랑에는 사십 대 중반의 플로어 매니저가 있었는데 그는 저녁 여덟 시가 되면 어김없이 6층의 사장실로 식사를 가지고 갔다. 사장의 식사는 언제나 '치킨일 것, 그 외에는 어떻든간에 상관이 없는' 메뉴였다.
그런데 그날은 매니저가 갑작스런 복통으로 병원에 가는 바람에 별 수 없이 그녀가 저녁을 가지고 6층으로 올라갔다.
사장은 작달막한 사람이었는데 말쑥하게 차려입은 채였다. 그는 그녀에게 약간의 호기심을 품고 몇 가지 질문을 하다가 그녀가 오늘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장은 그녀에게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얼마간 장난스런 기분으로 사장에게 맞춰주었다. 사장은 소원을 듣더니 다른 소원, 즉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미인이 되고 싶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어도 괜찮은지 다시 묻는다.
그녀는 '하지만 그런 것은 만일 실제로 이루어져버리면 그 결과 나 자신이 어떤 식으로 변해갈지, 상상도 안되고 감당을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미 말한 소원을 고수하기로 한다.
사장은 힘차게 손바닥을 따악 하고 맞댄 뒤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그 뒤로 그녀는 사장을 볼 수 없었고, 다음 해에는 그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어 인연이 끊어진다.
'나'는 그녀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 질문은 그 소원은 이루어졌는가 였다. 그녀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 소원은 시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두 번째 질문은 그 소원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녀는 남편과 딸, 개와 함께 살며 아우디를 타고 일 주일에 두 번 친구들과 테니스 치는 인생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내 입장이었다면 어떤 소원을 빌었을 것 같으냐고 되물었다. '나'는 스무 살에서 너무 멀리 와서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당신은 틀림없이 벌써 소원을 빌었을 걸' 이라고 말했다.
그림은 독일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카트 멘시크가 그렸는데 팝 아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소설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녀가 빌었던 소원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남는다.
소설에서는 두 가지 힌트가 나온다. 첫 번째는 소원에서 시간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아직 단정할 수 없다는 것, 두 번째는 보통의 사람들이 바라는 부자라든가, 권력이라든가, 외모라든가 하는 것과 관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의문이 샘 솟는다. 지금 그녀가 대화하고 있는 '나'는 그녀와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이다. 그녀는 중산층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데 '나'와 과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상대편의 과거에 대해, 특히나 '스무 살 생일이라는 특별한 날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라면 이성, 특히나 호감을 품고 있는 상대가 아닐까?
다시 힌트로 돌아가 그녀는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지만 소원이 이루어졌다고는 하지 않았다. 즉, 자상한 남편과 귀여운 아이들, 그리고 윤택한 삶이 그녀의 소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쩐지 로맨틱하면서도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만드는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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