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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물고기
함정임 지음 / 민음사 / 2000년 5월
평점 :
김소진의 소설을 썩 좋아한 편은 아니었다. 국어사전 한 귀퉁이에서 건져 올린 것 같은 낱말들이 긴장을 자아 내는 점이 조금 걸렸다. 하지만 기자 생활을 접고 소설만 쓰겠다고 선언한 그의 포부가 멋졌고, '전원일기'의 도시판 같은 소설 내용이 맘에 들어 발표하는 작품들을 챙겨보는 편이었다. 하지만 1997년 4월 22일, 김소진은 서른 셋의 아까운 나이에 췌장암으로 급사한다.
함정임은 김소진의 아내다. 함정임의 정체성이 '누구의 아내'라는 말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김소진의 죽음 직후 쓰여진 7편의 단편을 묶은 작품집이기에 말해두는 것이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음울하다. 미망인, 죽음, 이별, 허무, 체념과 한의 이미지가 작품 전반에 녹아 있다.
<골프 클럽 파티 - 달리는 여자>는 파리 교외의 한 골프 클럽 파티에서 화자인 미나가 승희와 재회하면서 시작된다. 승희는 대학 때 사뮤엘 베케트의 작품 발표를 하면서 알게 된 사이다. 부조리 작가로 알려진 사뮤엘 베케트를 이해하기 위해 소설 <몰로이>를 읽어보아야 한다는 대목은, 어쩐지 배우자의 죽음(부조리)을 받아들이기 위해 현실과 대상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산문정신(소설)이 필요하리라는 작가 인식이 녹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봤다.
소설 중 김소진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읽었을 때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대화가 나온다. 파티에서 한 사내가 미나에게 <아가씨>라고 부르자, 미나는 <전 아가씨가 아닌데요?>라고 답하는 부분이다. 아가씨로 보이는 미나, 그러나 미망인인 미나. 그냥 대답해도 되는데 굳이 자신은 아가씨가 아니라고 밝히는 미나. 그 단순한 대답에서 배우자 잃고 남겨진 여자의 양가적 감정이 느껴진다.
이는 <호수 저쪽>에서 이어진다. 화자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결혼한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남자의 구애가 계속되지만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 남자가 떠난 뒤 여자는 가정을 버리고 남자를 찾아 파리로 간다. 말로 자신을 설명하는 대신, 몸이 남자의 곁으로 간다. 하지만 남자는 이미 자신의 후배와 약혼한 상태였다.
표제작 <당신의 물고기>는 한 발 더 나아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에 대해 탐구한다. 소설에서 '여시오어(汝屎吾魚)' 고사가 소개된다.
(혜공은) 만년에는 항사사에 가서 있었다. 이때 원효는 여러 불경의 주소(注疏)를 찬술하고 있었는데, 언제나 혜공에게 가서 질의하거나 서로 말장난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혜공과 원효가 시내를 따라가며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돌 위에 똥을 누고 있는데 혜공이 그것을 가리키며 장난을 쳤다. 「당신이 눈 똥은 내가 잡은 물고기일 거요」 그로 인하여 오어사(吾魚寺)라 했다.
- 『삼국유사』 제4권 제5 의해 편, 이혜동진 조
<누구 물고기일 거 같아요?> 게시판에 씌어진 글을 읽고 있는데 선묘가 묻자 '나'는 <음, 물고기 마음이겠지?> 라고 답한다.
사실 소설 내용은 '여시오어(汝屎吾魚)' 화두 해석의 한 갈래로 '당신이 눈 똥은 내가 잡은 물고기야'로 해석한다. 그러니 '누구 물고기냐' 라는 물음이 가능하다. 그런데 맥락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찾아보니 이 화두는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눈다'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법보신문 등에 몇 가지 해석이 더 있어 읽어보았는데 역시나 얼른 이해되지는 않는다. 다만 살아 움직이는 생명(물고기)과 물고기를 먹고 배출되는 죽음(똥)의 대비 속에서 <가난한 마음>에 인용된 월명사의 <제망매가>가 떠오른다.
생사의 길은
예 있으매 두려워지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가지에 나서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 미타찰에서 너를 만나볼 나는
도 닦으며 기다리련다.
월명사, 「제망매가」